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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 로시니 오페라 ‘윌리엄 텔’ 리뷰

입력 : 2019-05-12 23:00:00 수정 : 2019-05-12 20: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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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맞선 민중얘기 몰입도 높여 / 김효종 등 절창·합창단도 좋은 화음
민족을 억압하는 독재자 총독 게슬러를 윌리엄 텔이 석궁으로 응징하는 오페라 ‘윌리엄 텔’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10일부터 사흘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랐던 로시니 오페라 ‘윌리엄 텔’은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오랫동안 회자할 작품이 됐다. 국내 초연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국립오페라단은 충분한 감동을 줬다.

13세기 초 오스트리아 침략자 횡포 때문에 아들 머리에 사과를 놓고 활을 쏴야 했던 스위스 명사수 윌리엄 텔 이야기는 이번 공연에선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수립됐던 1919년, 어느 나라에서 벌어진 일로 시공간이 설정됐다. 다만 알프스 풍경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배경으로 2차대전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독일군을 연상시키는 군복 차림의 제국군과 이에 맞서는 민중들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하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을 연상시켰다.

여기에 민족의 원수인 제국군 총독의 딸과 사랑에 빠져 고뇌하는 젊은이 아르놀드와 결국 연인과 정의를 위해 아버지와 결별하고 민중 편에 서는 총독 딸 마틸드의 사랑 이야기가 더해졌다. 치렁치렁한 드레스 대신 마틸드는 낙하산을 타고 무대에 내려왔다. 총독은 2차 대전 당시 전 세계를 누빈 미군의 아이콘 윌리스 지프를 타고 무대에 등장해 결국 그 차 위에서 윌리엄 텔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이 같은 윌리엄 텔의 현대화는 본래대로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했더라면 겉돌 수도 있었을 극 몰입을 도왔다.

특히 무장 호위를 받으며 각진 군모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를 누비며 민중을 탄압하는 독재자로서 총독의 모습은 본래 ‘외세’였던 원작 속 민중의 적을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독재’로 확장시켰다.

총독 일당이 민중을 유린하는 장면에선 여배우들이 분한 세명의 신부를 성학대하는 장면 등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여과없이 표현됐다. 그 때문인지 윌리엄 텔 극 중 민중이 숨겨졌던 총을 높이 들고 자유를 외치며 봉기하는 장면 등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연상시키며 관객 감정을 충분히 고양시킬 수 있었다.

11일 공연에서 가장 큰 갈채를 받은 장면은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 투쟁에 나서려는 아르놀드가 자신의 집에서 홀로 부르는 아리아였다. 아르놀드 역은 굵은 연기에 고음을 여러번 소화해내야 해 맡을 수 있는 테너가 전 세계에 몇 안 된다. 이 때문에 매 공연 역할을 맡은 테너가 어떤 기량을 보여줄지 주목되는 배역이다. 이날은 독일에서 활동하다 12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 브레멘극장 전속 주역가수 김효종이 맡아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이 장면은 절창이었다.

아르놀드와 짝을 이룬 마틸드 역의 소프라노 정주희도 뛰어난 연기와 노래로 객석을 감동시켰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부친인 총독이 윌리엄 텔의 어린 아들마저 죽이려는 지경에 이르자 이를 단호히 제지하고 저항군에 가담하는 폭넓은 연기를 큰 성량으로 훌륭히 소화했다.

이밖에도 바리톤 김종표가 맡았던 윌리엄 텔을 위시한 여러 주역이 맹활약했지만 민중의 힘을 강조한 오페라답게 총 80여명이었던 합창단 비중이 컸다. 특히 1,2막 전개는 합창단이 이끌다시피 했는데 국립합창단과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은 연출 주문대로 무대를 꽉 채우는 연기와 함께 좋은 화음을 보여줬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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