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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데 들을 수 없어요”… 시각장애인 막는 ‘인터넷 사이트’란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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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20 10:30:00 수정 : 2019-04-20 11: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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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장애인 웹접근성

시각장애인 1급 조모(40)씨는 지난해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녀에게 줄 과자를 샀다가 큰일을 치를 뻔했다. 아이가 계란 알레르기가 있어 부작용이 없는 과자를 구입해야 했지만 온라인쇼핑몰에 적힌 상품설명을 제대로 읽지 못해 계란이 들어간 과자를 주문한 것이다. 온라인쇼핑몰의 상품설명은 대부분 이미지형태로 돼 있지만 시각장애인이 사이트를 이용할 때 사용하는 ‘스크린리더’는 이미지파일을 읽지 못한다. 결국 아이는 과자를 먹고 알레르기 증상을 보였고 병원에 실려 가야 했다. 조씨는 “온라인쇼핑몰이 상품정보를 대부분 이미지 형태로 제공해 시각장애인은 실제 확인하고 싶은 구체적인 상세정보를 알 수 없다”며 “생필품을 사려해도 시각장애인은 주변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확인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 온라인쇼핑몰 상품에 명시된 상품설명. 이미지 위주로 돼 있어 텍스트 부분에는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사이트 캡처

◆ 텍스트 대신 이미지…장애인이 듣지 못하는 사이트들

 

인터넷, 모바일 등을 통한 디지털 정보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가 됐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시각장애인은 사이트 내 텍스트를 읽어주는 ‘스크린리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정보를 접한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쇼핑몰들은 텍스트 대신 이미지를 적극 사용하는 추세다. 텍스트보다 화려하고 실감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이미지에 대체 텍스트를 삽입해 시각장애인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하지만 상당수 사이트는 텍스트를 외면하고 있다. 스크린리더는 이미지 파일명을 읽을 뿐이어서 장애인들은 물건의 상세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2016년 이마트, 인터파크, 티몬, 지마켓 등 대형쇼핑몰을 대상으로 ‘국내 웹접근성 기준(KWCAG2.1)’으로 웹사이트 접근조사를 한 결과 평균 60.2점을 기록했다. 인증심사 통과기준(95점)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다. 시각장애인연합회가 2017년 농심, 오뚜기, 롯데푸드 등 10개 주요 식품쇼핑몰의 웹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시각장애인이 상품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한곳에 불과했고 상품결제를 불편 없이 할 수 있는 곳은 전무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2017년 금융기관, 생활, 복지시설, 검색(포털) 등 웹사이트 1079곳을 대상으로 웹접근성을 평가한 결과 평균 61점을 기록했다.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의 웹접근성이 80.7점으로 가장 높았지만 쇼핑분야가 53.3점으로 접근성 수준이 가장 낮았다”며 “개인이 운영하는 쇼핑몰의 경우 웹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은 솔루션 사용으로 대체 텍스트, 키보드 사용 보장 등 다수 항목에서 그 준수도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들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 모여 주요 4사 온라인쇼핑몰의 웹접근성을 개선해달라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연합회 제공.

◆ “생필품을 구매하는 사이트만이라도 개선해 달라”

 

시각장애인들은 “생필품을 구매하는 사이트만이라도 개선해 달라”고 주장하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 모여 주요 4사 온라인쇼핑몰의 웹접근성을 개선해달라는 집회를 열었다. 2017년 1,2급 시각장애인 963명이 “웹접근성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이마트, 롯데마트, 이베이코리아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아서다.

 

장애인이 공공기관 사이트를 이용할 때도 불편을 겪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전자문서들이 대부분 PDF 형식으로 작성돼 스크린리더가 이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교육기관의 경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지를 전자문서를 이용해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각장애인 학부모들이 이를 읽지 못해 불편이 발생하고 있다. 국립서울맹학교 김은주 교장은 “음성지원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웹접근성 표준을 잘 지켜주면 좋겠는데 팝업창이 지속적으로 뜨는 등 이런 표준을 잘 못 지키고 있다”며 “가정통신으로 전자문서를 사용할 때가 많은 상황에서 시각장애인 부모를 고려한 부분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 갈 길 먼 웹접근성…기준 미달해도 과태료 처해진 사례 없어

 

장애인은 노인층, 저소득층, 농어민과 함께 4대 정보취약계층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장애인의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웹접근성’을 보장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이 진정을 넣으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체조사를 통해 해당 기업에 시정권고를 내린다. 이후 개선하지 않는다면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지켜지지 않으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도 웹접근성 기준을 어긴 기업이 과태료 등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11년 전 기준에 따라 ‘웹사이트’ 중심으로 짜여져 모바일, 전자문서 등 기준을 따로 규정하고 있지 못한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장애인 인터넷 이용률은 77.4%로 전년대비 2.9%포인트 상승했다. 국민전체 이용률(91.5%)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많은 장애인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실생활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기업이 ‘웹접근성’에 대한 관심을 더 쏟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안동한 팀장은 “행정안전부가 공공기관 홈페이지에 대한 웹접근성 평가를 하고 있지만 모든 관련 사이트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인권위에 웹접근성 민원이 들어와도 해당 민원만 해결하지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아 장애인들은 여전히 웹사이트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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