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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노래 부르는데… ‘진짜 가수’라 부를 수 있나 [아이돌 전성시대의 그늘]

입력 : 2019-04-20 18:00:00 수정 : 2019-04-21 15: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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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댄서와 다름없는 가수 / 멤버 수 많은 그룹 ‘노래 쪼개기’ / 음악에 대한 신념·정체성도 부족 / “일회성 소비재 ‘상품’으로 전락해 / ‘엔터테이닝 중심 산업’ 과열 경쟁”
1996년 보이그룹 ‘H.O.T.’가 데뷔한 이후 대중가요계에서는 ‘아이돌 가수 전성시대’가 열렸다. 주변이 온통 아이돌 가수뿐이니 ‘가수 = 아이돌 가수’라고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최근 ‘아이돌 가수가 가수냐?’라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아이돌 가수는 노래보다 춤에 집중한다. 성적인 것으로 인기를 얻는다. 노래에 대한 신념이나 정체성도 없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기획사와 작곡·작사가가 만들어준 것 그대로 따라 할 뿐이다. 세계일보는 아이돌 가수 전성시대 23년, ‘아이돌 가수’와 ‘가수’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아이돌 가수의 문제점 등 실체를 파헤친다. 또한 각계 전문가를 통해 ‘진짜 가수’란 무엇인지 의견도 들어본다.

 

“11명이서 3분짜리 노래를 나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4초 안에 많은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보이그룹 ‘워너원’ 출신의 윤지성이 지난 2월 2일 솔로 앨범 발매 쇼케이스에서 직접 밝힌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요즘 활동 중인 그룹 소속 아이돌 가수는 3∼4초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시간이 단 3∼4초뿐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가창 실력을 보여주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다른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 가수가 노래보다 춤이나 의상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점점 ‘가수’가 아니라 ‘춤꾼’이 되고 있다.

 

‘아이돌 전성시대’가 열린 대중음악계에서도 ‘솔로’보다 ‘그룹’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매해 수십개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고 컴백한다. 과열 경쟁이다. 이런 가운데 인기를 얻기 위해 이들은 노래보다 다른 것을 선택한다. 팬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는 다양한 멤버들을 그룹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늘어나는 이유다.

 

이달의 소녀

과거 주류를 이뤘던 3인조, 5인조를 넘어 7인조, 8인조, 심지어 12인조까지 증가했다. 지난해 데뷔한 걸그룹 ‘이달의 소녀’는 12명이다. 올해 1월에 데뷔한 걸그룹 ‘체리블렛’ 또한 10명이 한 팀이다. 신곡 ‘비올레타’로 지난 1일에 컴백한 걸그룹 ‘아이즈원’은 12명이다. 두 자릿수는 기본이 됐다. 오히려 5∼7명인 그룹이 적게 느껴진다.

 

멤버는 늘어났지만, 반대로 각자 부를 수 있는 노래의 분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통상 한 곡은 3∼4분 분량이다. 연주로만 이뤄진 부분을 제외하면 2분(120초) 내외가 가사 부분이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1명이서 10초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합창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5초 미만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인사말을 전하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가수)이 5초짜리 노래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즈원

예컨대 ‘아이즈원’의 경우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는 ‘리얼리 라이크 유’(Really Like You)라는 곡에서 ‘Cuz I’m with you’ ‘with you’ ‘Cuz I’m with you’만 노래하고 끝난다. 장원영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우리 그날 너무 많이 추웠나 봐’ ‘with you’가 전부다.

이들이 노래하는 분량은 각자 4∼5초 가량된다. 남는 시간은 군무를 하는 데 할애한다. 노래보다 춤의 비중이 더 많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노래를 포기하고 군무에 집중한 아이돌 그룹도 있다 ‘버터플라이’(Butterfly)로 지난 2월에 컴백한 ‘이달의 소녀’다.

예컨대 멤버 4명이서 ‘새로 깨어나는 / 느낌 나를 채워가는 / 눈빛 어쩌면 꿈인 것 같아 / 이 순간 Dreams, Dreams may come true’라는 7초 분량의 가사를 나눠 부른다. 한 사람당 2초 내외 노래한다. 이처럼 ‘버터플라이’는 멤버들이 2∼3개 단어를 연속해서 쪼개서 부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가창을 느끼기 힘든 구조다. 심지어 음까지 지나치게 높아 멤버들은 대부분 가성으로 노래한다.

 

한 대중음악 관계자는 “혼자서 노래하라고 하면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고는 음이 너무 높아서 부르기 힘든 구조”라며 “노래 부르는 것을 포기한 음악”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대로, ‘이달의 소녀’는 노래보다는 춤에 집중한다. 멤버들은 5명 등 소규모 그룹을 이뤄 춤을 추거나, 12명이 단체로 군무를 선보인다. 가수가 아니라 치어리더 그룹의 화려한 치어리딩을 보는 듯하다.

아이돌 가수의 이 같은 모습에 전문가들은 ‘가수’에서 ‘상품’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헌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소장은 “(아이돌 가수들이) 하나의 일회성 소비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며 “과연 그들을 ‘가수’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돌은 (‘가수’보다는) ‘퍼포먼스 그룹’에 가깝다”며 “음악적인 것에 충실하지 않고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기획사에서)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 쉽기 때문”이라며 “음악이 아닌 엔터테이닝(흥미·자극을 주는 것) 중심인 음악 산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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