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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도 모르는 고독사… ‘위험군 리스트’ 없어 예방 엄두 못내 [심층기획 - 고독사 내몰리는 중년男]

입력 : 2019-04-16 08:00:00 수정 : 2019-04-16 12: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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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그들은 왜 고립되었나 / 개인정보보호법에 정보 취합 어려움 / 현장선 “1인 가구 검색도 힘들어” 호소 / 67% “지원법 없어 전화·방문 등 제약” / ‘선한 사마리아인법’ 등 예외 필요 지적 / 재기 위한 일자리 제공 등 협업 절실 / 알코올 중독·우울증 등 전문상담 필요 / 도움 필요한 이웃, 경계 말고 신고해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네며 설 지내고 곧바로 주민센터를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는 황수남(60대·가명)씨. 오랜 시간 연락이 없어 황씨 집을 찾아간 담당 복지 플래너는 온몸을 이불로 여민 상태에서 삐죽 드러나 있는 황씨의 보랏빛 발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평소 우울증이 심해 “그만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했던 황씨 옆에는 번개탄이 놓여 있었다. 생필품 등을 가끔 전하러 가 말벗을 자처하며 황씨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이슬기(30대·여·가명)씨는 되레 죄책감에 한동안 술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겪어내야 했다. 좀 더 전문적인 피드백이나 다른 방식의 조언을 해주었다면 황씨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후회 때문이었다.

 

1인 가구가 폭증하고 실직과 가족해체로 고독사 위험에 처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고독사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기는 쉽지 않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상 제한 등으로 1인 가구에 대한 리스트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니 공익적인 목적이라 해도 데이터 간 결합으로 이들이 고독사 위험군인지를 정확히 판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전 동의를 받지 않으면 전화조차 할 수 없다. 동의 없이 ‘위험군’ 방문을 시도했다가는 되레 가택침입죄 명목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모든 게 현행법상 ‘고독사 위험 가구’ 지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은 까닭이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A씨는 15일 “우리는 아이들에게 힘들고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서둘러 신고해 도와주자는 교육을 하지 않는다. 마치 불행이 전염되기라도 하듯 피하고 보자는 교육도 고통 속에 홀로 죽어가는 우리 사회 ‘고독사’ 증가의 주요 원인인 것 같다”며 “1인 가구 급증 시대에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고독사 위험군’을 전담 관리하는 사회복지 공무원 85명(구당 3∼4명)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자주 부딪치는 애로 상황에 대해 설문 조사했더니, 정확한 ‘고독사 위험군’ 리스트 확보의 어려움을 첫손 꼽았다. 이어 법적인 제약이 지적됐다. 담당 공무원의 ‘순수한 열정’과 주민들의 ‘착함’에 무작정 기대는 것만으로는 늘어나는 ‘고독사’ 위험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으로 분석된다.

◆융통성 없는 개인정보보호법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응답률은 ‘매우 그렇다’44%(37명), ‘그렇다’34%(29명)로 78%에 육박한다. ‘리스트 확보 작업 자체에 곤란함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도 61%(52명)로 높다. 고독사 방지와 관련한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직접 전화를 하거나 방문하는 데 제약이 크다고 답한 비율도 67%에 이른다.

A 지자체 담당자는 “내부전산망에서 1인 가구를 따로 추출하기조차 힘든데, 위험군 판별을 위한 추가적인 데이터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오프라인 전입신고 시엔 어려움이 있을 때 전화나 방문상담 등이 가능한지 등을 물어볼 수 있기라도 하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전입신고를 하는 데다 새로 전입한 사람이 아니면 접근조차 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주민복지를 담당하고 있는 이혜선(가명·여)씨는 “현재 보호자 열람은 물론, 관련 개인정보를 몇 번 열람하기만 해도 경고 메시지가 뜬다. 적어도 (고독사 방지) 관련 일을 담당하는 공무원 등에게는 이에 대한 ‘선한 사마리아인법’ 등 예외조항이 따로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단전·단수 가구 등 ‘취약 가구’에 대해서는 비교적 파악이 잘되어 있는 편인데, 이러한 시스템이 1인 가구에 대해서도 정교화돼 잘 적용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자치구 공무원들의 58%(50명)가 융통성 없는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고독사 위험군 추적조사마저 어렵다고 호소한 만큼 이에 대한 법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공감대는 공고하다. 경찰서 등 고독사 관련 정보를 즉각 수합할 수 있는 기관과의 연계 작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편견

법적인 제약에 이어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문제라는 인식도 높았다. 사실상 이웃 주민들이 고독사 위험을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대상인데도 신고하기를 극히 꺼리는 경향이 심화돼 고독사 예방을 요원하게 한다는 것이다. B 지자체 담당자는 “1인 가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시점에서 학교에서부터 이웃에 대한 관심과 위기에 처한 주민 신고 활성화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며 “ ‘지금은 어떻게든 불행해 보이는 사람,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과 엮이지 말자’는 그릇된 인식을 가정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정부 차원에서 신고 활성화를 위한 대국민 홍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 46%가 심각한 편, 36%가 보통이라 응답했으며, 그렇지 않다는 답변은 18%에 불과하다. C 지자체 공무원은 “지금 시행 중인 주민 지킴이 사업 등은 규모가 너무 작아 유명무실할 때가 있다. 차라리 도시가스 검침원 등 해당 가구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의 지위를 안정화하고, 이들에게 신고의무를 부여하는 것 등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검침원 등 잠재적 신고자의 신변·지위 보장을 강화하는 게 고독사 예방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응답이 압도적인 87%에 달했다. D 지자체 담당자는 “귀찮아서일 수도 있겠고, 본인도 도급직이라는 불안정한 지위와 신변 위협 등 복합적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검침원들과 협조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라며 “이것만 해결해도 고독사 예방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치구 공무원들은 ‘고독사 위험군’에 대한 편견 자체를 깨는 작업을 전방위로 선행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각종 고독사 위험군 대상 자조 모임들이 지나치게 저소득층을 위한 모임,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모임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들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고 활성화되기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D 지자체 공무원은 “저소득층 등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요즘 1인 가구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게 이들을 위한 각종 운동모임, 여가모임 등을 활성화하면 자연스럽게 (이들이) 이웃들과 사회적 교류를 맺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부처 간 연계 강화 작업 중요

막상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해 마음의 문을 열어도 유관 부처와의 연결이 어려워 일자리 교육 및 연계, 전문적인 정신상담 등이 어렵다는 비판도 컸다. 사회복지인력이 ‘만능’이 아닌데 현재 전문가가 해야 할 일까지 떠맡아 업무가 너무 과중하다는 지적이다. 복지 담당자들은 ‘고독사 위험군’의 궁극적인 사회 재기를 위해서는 부처 간 협업이 중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E 지자체 담당자는 “복지사가 일자리 정보를 모두 가진 경우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며 “발굴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용노동부 취업정보센터 쪽과도 연계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일단 사회로 나오게 하는 것, 규칙적으로 일하고 성취감을 맛보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단순히 돈을 지원할 게 아니라 이에 해당하는 소소한 업무(공공일자리) 등을 늘리거나, 사회적기업에서의 활동을 증진하는 등 전문적인 일자리 교육과 매칭을 할 수 있는 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독사 예방을 위해서 담당 공무원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긴 문항은 ‘사회적 재기를 위한 적합한 일자리 발굴 및 제공’(10점 만점에 8.20점)이었다. 이어 ‘정확한 고독사 위험군 리스트 확보를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선’(8.13점), ‘정신건강 상담’을 할 수 있는 전문상담 인력 배양 등 필요‘(7.96점) 등이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E 지자체 공무원은 “대부분 알코올의존증, 심한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하신 분이 많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전문적인 상담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정신건강증진센터 등의 인력이 부족하고 처우도 열악한 편인데, 이런 곳의 인원이 늘어나 서로 연계해 일할 수 있다면 위험군 관리가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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