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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치열한 유엔 외교전 벌였던 1988년…"유엔에 매달려야 하는 왜소한 처지 안타깝다" 토로한 외교관 [외교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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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31 14:42:24 수정 : 2019-03-31 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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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31일 공개한 생산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총 1620권(25만여쪽)은 주로 1988년 문서가 중심이다. 1988년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2년 전으로, 유엔 내에서 남북간 정통성 다툼이 치열하던 때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곳곳에서도 유엔 비회원국으로서 유엔 내에서 조금이라도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리 외교관들의 활동이 나타나 있다. 한 예로 1988년 9월17일 당시 주북예멘대사였던 이규일 전 대사(2016년 별세)가 1988년 10월18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전 각 대사관이 이에 대한 주재국 입장과 관련해 보낸 탐문(探聞·찾아 들음) 보고서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이 전 대사는 보고서 첫 머리에 “북예멘이 과거 이북과 단독 수교 당시에는 아국(본국) 입장에 반대하였고, 작년(1987년)만 하더라도 아무리 달래도 ‘full cooperation(충분한 협력)’이라고만 했는데 금년에는 ‘support(지지)’라는 말을 할만큼 신장된 우리나라 국력에 대해 가슴 깊이 긍지를 느끼고 있다”고 적었다.

 

이 전 대사는 그러면서 “(유엔이) 과거 43년간 우리나라 통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별로 기대할 것이 없는데도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기에 매달려야 하는 아국의 왜소한 처지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세계적 화합을 이룩하는데에 있어서는 사설 단체의 하나인 IOC(국제올림픽위원회)만도 못한 소위 유엔이라는 곳에서 La Fontaine(1621-1695, 프랑스 작가)가 말한 ‘Lion’s Share(힘 있는 자들끼리 알짜배기를 나눠 갖는다는 말)’가 아직도 판을 치고 있는 현 국제 질서가 답답하며 상임이사국이라는 제도가 뭐 (이렇게) 말라비틀어진 것인지 한심스러움”이라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보고서 말미에서 다시 보고를 받는 본국의 동료를 배려해 “나의 사랑하는 동료, 김국장 휘하에 있는 황과장에게 잠시나마 당혹케 한 점 미안하며 김 국장의 건승을 바란다”고 적었다. 30여년 전 유엔 비회원국으로서 냉전 상황에서 북한과 대결하며 본국 입장을 알려야 했던 분단국 외교관의 고충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첫 유엔무대 연설이었던 노 전 대통령의 연설 전 북한은 공산진영을 동원해 우리 측 의제를 총회에 상정하는 것을 방해했다. 유엔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미·일 비난 성명을 배포했으며, 박길연 당시 북한 주유엔대사가 직접 유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국(당시 중공으로 지칭) 외교부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 연설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논평을 했고,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는 남북 외교전이 원치 않는 남북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의 표시를 한국정부 측에 전달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미측에 ‘중·소와 사전 협조해 우리측의 유엔총회 연설시 공산권의 결석 사태를 예방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은 우리 측 대표 연설 추진 초반 유엔 회원국 지위를 갖지 못하는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SWAPO(나미비아 해방 기구)에 선례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일반 토의가 아닌 본회의 발언을 추진하라고 제안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드러나 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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