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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듣고 자랄 아이들…갈등의 씨앗 심는 일본 [이슈라인]

입력 : 2019-03-27 06:00:00 수정 : 2019-03-27 11: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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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초등생부터 왜곡 영토관 주입… 국가주도 ‘교실 우경화’ / 오전 해양조사원 독도 해양조사 항의 / 오후엔 교과서 발표로 다발적 도발 / 4∼6학년 교과서 모두 영유권 주장 / 지도·사진 자료 동원 ‘독도 거짓말’ / 우호관계 내용 감소… 전쟁 미화도 / 일제 강제징용 구체적 서술 없어 / 징용 배상·레이더 공방 등 갈등 반복 / “단발성 항의 넘어 원칙 갖고 대응해야”

일본 정부가 26일 다발적인 독도 도발을 일으켰다. 오전에는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 국립해양조사원(KHOA)이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 주변에서 추진 중인 정당한 해양 조사에 대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항의했다. 이어 오후에는 문부과학성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日 영토로 표시된 독도 26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도쿄서적의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 14쪽에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표기하고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와 사진이 수록돼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일본 해상에 있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지만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습니다”라고 기술한 14쪽 본문 내용. 도쿄=연합뉴스
독도를 다케시마(붉은 색원)로 표기해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 ‘다케시마(시마네현)’로 표기한 독도 사진, “일본 해상에 있는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지만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습니다”라고 기술한 도쿄서적 5학년 사회교과서.

 

이에 따라 내년부터 일본 초등학생들은 한국 영토인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왜곡된 영토관(觀)을 공부하게 돼 장차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극우 세력의 혐한(嫌韓) 시위와 정치권·미디어의 반한(反韓) 주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왜곡 교과서를 배운 어린 학생들의 머릿속에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일보가 분석한 결과 문부과학성 검정조사심의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한 3개 출판사의 4∼6학년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9종 모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기술(記述)이나 지도·사진이 삽입됐다. 3학년 사회 교과서 1종, 도덕 교과서 1종, 초등학교 지도(3∼6학년용)를 포함하면 총 13종의 교과서·부교재(지도)에 독도 영유권 주장 기술·사진·지도가 들어있는 셈이다.

2017년 문부과학성이 개정한 초등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과 해설에 따라 교과서 기술 내용에는 다케시마(竹島·독도에 대한 일본식 명칭)가 일본 고유영토임에도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계속 항의하고 있다는 3대 핵심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이쿠(敎育)출판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는 ‘일본의 고유영토, 다케시마와 센카쿠제도(댜오위다오의 일본식 명칭)’라는 별도 페이지를 만들어 “시마네(島根)현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영토이면서 1954년부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에 대해 반복해서 계속 항의하는 것과 함께…”라는 표현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검정을 통해 독도에 대한 영유권 표현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직전 검정인 2014년에 비해서도 독도에 관한 왜곡된 내용이 양적으로 늘었고 지도와 사진 등 시각자료도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26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이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이 들어가 있다.

도쿄서적 5학년 교과서의 경우 처음에는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검정 과정에서의 문부과학성 지적 후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어서 일본은 항의를 계속하고 있다’라고 일본 항의 부분이 첨가됐다. 2014년 검정 때는 ‘일본 영토’나 ‘일본 고유영토’를 섞어 기술하고 일부 교과서엔 ‘불법 점거’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또 서기 5∼6세기에 주로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가 선진문화를 전파한 도래인(渡來人)과 에도(江湖)막부 시기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관련 기술 등 한·일 우호관계 내용이 감소했다. 그에 비해 임진왜란, 러일전쟁,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학살 등 과거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나 과오는 얼버무리거나 오히려 미화하는 대목도 있었다.

최근 한·일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선 ‘혹독한 조건 하에서 힘든 노동을 하게 됐다’(도쿄서적) 등의 표현으로 간략하게 기술했지만 주체가 누구인지는 얼버무렸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교과서 검정에 대해 “일본이 국가 주도로 초등학생에게도 우경화된 영토 교육을 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줬다”며 “국가 주도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필수 학습 가이드라인… 10년마다 개정

 

학습지도요령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학교 수업의 법령 가이드라인이다.학습지도요령이란 일본의 학교교육법에 따라 문부과학성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최소한의 필수 학습 요소를 정해놓은 기준이다. 문부과학성이 통상 10년마다 개정해 교과서 내용에 반영된다.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학교교육법 시행규칙 규정에 근거를 둔 것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내용의 세부사항을 설명한 것이다. 문부과학성이 만드는 학습지도요령의 하위 개념으로 학습지도요령보다 상세한 내용을 담는다.교과서 검정규칙 등에는 “교과서는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검정제 교과서를 제작해 학교 현장에 배포하려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정부의 검정 기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이 기준에 충실해야 한다. 학습지도요령을 개정할 때 함께 개정된다.

◆日 잇단 사실 왜곡… 양국관계 악화일로 

 

26일 ‘독도는 일본 고유의 땅’이라는 일본 초등 교과서 검정결과가 공개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 관계가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한·일 관계가 경색된 와중에 일본 정부가 영토와 역사적 사실 왜곡을 사실상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은 지난 2008년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개정하며 한·일 간 독도에 대한 ‘주장’의 차이와 관련해 이해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이후 약 10년간 일본의 교실 내 ‘영토 도발’과 관련된 논란은 교과서 검정 결과가 나올 때마다 ‘주기적 행사’처럼 반복돼 왔다. 이번 검정 결과 발표는 한·일 관계가 징용배상 판결, ‘레이더 공방’ 등으로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해당 내용 공개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외교부와 교육부 등이 대변인 성명을 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정부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한 뒤, “일본은 역사의 교훈을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세대의 교육에 있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신 교육부 대변인은 “미래 세대에 부끄러운 역사의 굴레를 씌우지 않도록 독도 영토 주권을 침해한 ‘교과서’를 즉각 수정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태호 외교부 1차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하는 등 외교적으로 가장 높은 수위의 항의 표시를 했다.우리 정부의 강력한 비판에도 당장은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반복되는 일본의 독도 도발 문제와 관련해선 외교당국 내에서도 상황 관리가 최선이라는 인식이 우선시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와 관련한 소가 제기됐을 경우 일본이 독도분쟁을 처음 야기한 1953년으로 대략 추산되는 ‘크리티컬 데이트’ 이후의 당사국 활동은 재판부 판단에 고려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정부 들어 한·일 관계에서 ‘투트랙 외교’를 기조로 ‘할 말은 한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징용 배상 판결이나 위안부 할머니 문제 등 직접적으로 우리 국민이 피해자인 경우와 달리 영토 문제에 대해선 뚜렷한 원칙이 세워지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그동안 (영토 문제와 관련) 어떤 해결 노력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일 간에 수시로 제반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고만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수십년간 이어져온 일본과의 영토 갈등에서 ‘단발성 항의’를 넘어 뚜렷한 원칙을 세우는 노력과 함께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은 나오고 있다.

 

그간 일본은 우리 기업이나 국민과 관련된 가시적인 피해 유발 행위는 하지 않았지만,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외교적 협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음 단계로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를 회부하거나 보복조치에 착수하겠다고 밝혀 새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영토 문제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라며 “일본의 독도 국제분쟁화 시도에 휘말리지 않도록 (원칙을 갖고)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김예진·홍주형·이동수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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