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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왕’ 바롤로를 뛰어넘은 바르베라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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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9 13:48:17 수정 : 2019-03-09 13: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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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 스트라디바리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마치 검은색 같은 아주 짙은 바이올렛 빛 눈동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적인 매력과 단아함. 활짝 웃을때마다 살짝 피어나는 보조개. 수백가지의 향수를 섞어놓은 듯한 채취. 이런 여성이 있다면 아마 첫눈에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녀를 닮은 와인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미식의 도시이자 유명 와인산지 피에몬테에서 자라는 바르베라(barbera) 품종입니다.

 

사실 바르베라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품종이에요.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Barolo)와 ‘와인의 여왕’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를 만드는 네비올로 품종이 오늘날 피에몬테를 이탈리아의 최고급 와인의 산지로 만든 대표 품종이기 때문이죠.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최소한 10년이상은 장기 숙성시켜야 그 와인이 가진 매력을 제대로 뿜어내기 시작한답니다. 이 때문에 오래 숙성시키지 않아도 마시기 좋은 바르베라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마시는 가벼운 와인 정도로만 알려져 있답니다. 

 

네비올로보다 색이 훨신 이쁘고 산도는 아주 높으며 레드 베리 같은 과일의 느낌이 많이 납니다. 하지만 단점도 지녔어요. 레드와인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탄닌이 약해 와인을 만들면 탄탄한 느낌이 없고 아주 가벼운 바디감을 지니게 되죠. 이때문에 주로 저가 와인으로 생산되는데 이탈리아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품종이 바로 바르베라입니다. 최근 생산자들은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오크를 많이 사용하는데 오크에서 숙성하면 강렬한 탄닌감과 부드러움을 좀 더 넣어 줄 수 있답니다. 

 

바르베라 다스티 마스터 클래스에서 와인을 소개하는 소믈리에

그런데 알고보면 바르베라는 매우 매력적인 품종이에요. 아주 오랜동안 잘 숙성된 바르베라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뛰어 넘을 정도의 묵직한 바디감과 풍미를 뿜어내는 멋진 와인으로 변신하기 때문이에요. 젊은 바르베라는 체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등 신선한 과일향이 뛰어나고 오크 숙성을 거치는 수페리오레는 바닐라, 견과류, 후추 등 스파이시한 향과 상큼한 산미가 느껴집니다. 숙성을 잘 거친 바르베라 수페리오레는 묵직하게 변신하는데 숲속바닥, 젖은 흙, 가죽같은 애니멀 노트, 담배, 버섯 등의 풍미가 풍성하게 어우러집니다. 

 

​브리코 파라디소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미켈레 끼아를로 바르베라 다스티
바르베라 다스티 마스터 클래스 현장

피에몬테 니짜(Nizza)에서 생산되는 바르베라를 최고급으로 치는데 니짜는 2014년 독자적으로 최고 등급 생산지 규정인 DOCG를 받았답니다. 또 알바(Alba)에서 생산되는 바르베라 달바와 아스티(Asti)에서 생산되는 바르베라 다스티도 유명해요. 기자는 최근 아스티와인협회 주최로 현지에서 열린 바르베라 마스터 클래스와  와이너리들을 둘러봤습니다. 마스터 클래스는 ‘바르베라의 혁명’을 주제로 진행됐는데 피에몬테에서 생산되는 바르베라 품종과 와인 현황 등을 심도있게 다뤘습니다.  

 

기자를 맞이하는 로베르토 바바(오른쪽)

방문한 대표적인 와이너리는 와인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바바(BAVA)입니다.  해질 무렵 택시를 타고 바바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한국에서도 3차례 만나 친분을 나눈 오너 로베르토 바바(Roberto Bava)가 반갑게 기자를 맞이합니다. 마치 대형 오크통의 뚜껑처럼 생긴 대문을 통과하자 독특한 바바의 디자인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와이너리 내부로 들어서게 됩니다.

 

출입문을 오크통으로 꾸민 바바 와이너리

바바의 역사는 16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피에몬테 아스티에서도 매우 높은 구릉지대인 몬페라토(Monferrato) 언덕의 콘꼬나토에서 포도를 재배하다 1911년부터 직접 와인 양조에 뛰어듭니다. 몬페라토는 라틴어로 몬스 페라투스(Mons Ferratus)인데 ‘비옥하고 풍요로운 산(Fertile and Rich Mountains)’이라는 뜻입니다. 대륙성 기후로 일교차가 크고 바다속이 솟아 형성된 토양으로 석회질의 풍부한 미네랄을 움켜쥐어 뛰어난 품질의 포도가 생산되는 곳이죠. 2014년 로에로(Roero)와 랑게(Langhe)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합니다. 

 

바바 와인을 재즈로 표현한 셀러의 벽 조형물 ‘재즈 월’을 소개하는 로베르토 바바
스타리디바리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1974 빈티지

현재 로베르토, 길리오(Guilio), 파올로(Paolo) 삼형제가 아버지 피에로(Piero)와 함께 와이너리를 경영하며 국내에는 하이트진로를 통해 수입됩니다. 바바가 초기부터 집중한 것은 바로 바르베라. 서자 취급을 받던 이 품종으로 최고의 와인을 빚어 바르베라의 혁명을 불렀다는 평가를 받게됩니다. 바로 아스티의 포도로 빚은 스트라디바리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Stradivario Barbera d’Asti Superiore)랍니다. 스트라디바리오는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천상의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바이올린이죠. 바바가 이 와인을 세상에 내놓자 와인전문매체와 비평가들이 극찬을 쏟아내면서 바르베라가 비로소 주목받게 됩니다. 톰 스티븐슨의 ‘소더비 와인 엔사이클로페디아’에 대표적인 바르베라 다스티 와인으로 소개됐을 정도죠. 

 

바바 테이스팅룸 현장
​바바의 와인셀러

이 와인을 시음하기 위해 로베르토를 따라 테이스팅 룸으로 들어가봅니다. 역시 바바만의 디자인을 엿볼수 있는 것들이 곳곳에 놓여 있네요. 특히 장식장 문을 양쪽으로 열면 대형 TV에서 바바 와이너리를 소개하는 동영상이 흐르고 문 안쪽으로 와인잔이 가지런하게 놓인 멋진 와인렉이 마음을 사로잡네요. 특히 레이블이 보이도록 와인을 양쪽으로 가로로 눕혀서 보관할 수 있는 셀러는 아름답다는 탄성까지 터져나오게 만듭니다.  

 

바바 대표 와인들

로베르토가 내놓은 것은 스트라디바리오 2001. 20년 가까운 세월을 견딘 와인을 입안으로 한모금 흘려 보내봅니다. 오렌지빛이 감도는 붉은 벽돌색이 세월을 말해주는 이 와인은 스파이시한 허브향들과 블랙체리 등 검은 과일향, 적절한 오크 숙성에 오는 맛난 바닐라향과 견과류 향들이 어우러집니다. 무엇보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산도가 짱짱하게 살아있더군요. 탄닌은 벨벳처럼 부드럽고 여운은 길게 이어져 아름답고 지적이면서 우아한 여인이 이미지가 저절로 떠오르게 된답니다. 한국에서 맛본 5년 미만의 스트라디바리오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 와인을 맛보도고 바르베라가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익기를 기다리면서 마시는 그저 가볍고 단순한 와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대형 숙성 탱크를 소개하는 로베르토 바바

로베르토는 “바르베라는 최소한 10년은 숙성시켜야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지닌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하고 20년 이상도 거뜬하게 버티는 와인이죠. 한국 소비자들도 10년이상 숙성된 바르베라를 한번 마셔 보세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겁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스트라디바리오는 오크배럴에서 18개월 숙성하는데 불순물을 제거하는 필터링을 전혀 거치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너무 완벽하게 필터링을 하면 와인은 깨끗해지만 와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병속에서 진화하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죠. 많은 생산자들은 와인이 상할 우려가 있어서 필터링을 거치는데 바바가 필터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만큼 와인이 세월이 흐러면 완벽한 풍미를 발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얘기입니다.  

 

바바  스트라디바리오

로베르토는 2001년산은 좀 엘레강스한 빈티지이고 1999년과 2000년 빈티지는  파워풀하다고 설명합니다. 기자는 나머지 빈티지들도 너무 궁금해서 3개 빈티지를 모두 구입했답니다. 

 

이 와인은 특별한 날 마셔야 할 까요. 아니면 와인 영화 사이드 웨이의 여주인공 마야(버지니아 매드센)의 말처럼 이 와인을 마시는 날이 특별한 날이 될까요. 와인을 오픈하는 날을 생각하니 벌써 아름다운 그녀 앞에 선 것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하네요.

 

아스티(이탈리아)=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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