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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리용에서 날아든 메일 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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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8 21:20:01 수정 : 2019-03-08 2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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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연결의 역설’/‘초연결’도 결국 소그룹 잔치/ 인간 배제하는 기술은 무기/ 요즘 같은 때 ‘시학 정신’ 필요 개학이다. 예전 같지 않게 대학가가 이렇게 조용할 수 없다. ‘한유총’ 사태도, 강사법 시행 건도 한몫한 것이 아닌가 싶다. 플래카드 몇 개 나붙어 봄바람에 반응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세먼지도 기승을 부리며 연일 긴급재난문자다. 이제 신입생을 반기고 축하해주는 시대는 지난 것인가. 아니면 요즘 세대 방식의 새로운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대학가에서는 이맘때면 온갖 대자보를 흰색 전지에 삼색 매직펜으로 큼지막하게 적어 신입생을 반기곤 했다. 대학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학과, 동아리, 동문회, 총학 할 것 없이 신입생을 끌어들이기에 열을 올렸다.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유혹’의 안내문이 빼곡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올봄 대학가 분위기는 유독 다르다.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간편하게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로 필요한 연락을 대신할 것이라고 추측은 된다. 분명 시대가 바뀐 것이다. 세대 코드가 달라진 것이다. ‘초연결사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초연결사회란 네트워크로 연결된 조직과 사회(공동체)에서 이메일, 메신저, 휴대전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상호소통이 다차원적으로 확장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용어이다. 사물인터넷(IoT)의 출현으로 연결 범위는 사람과 인터넷을 넘어 모든 사물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

그래서 묻게 된다. 주변의 모든 대상을 연결 대상으로 여긴다는 요즘 세대가 진정 아무하고, 무엇에나 연결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요즘 세대들이 사용하는 말 중에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란 표현이 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모임이나 단체에는 소속되기를 꺼린다는 말로 이해된다. 결국 초연결의 의미가 관심이나 생각이 같은 소그룹 잔치에 그치고 마는 격이다.

디지털 시대는 이렇게 개인을 이웃, 사회와 고립시키는 측면이 병행된다. 한마디로 ‘연결의 역설’이 일어나고 있는 것. 소통의 수월성, 개방성, 의사표현의 자유로 디지털 시대를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온라인 정체성(online identity)’, ‘디지털 아이(digital-I, 디지털화된 나)’를 기술 의존성이 지배적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가상공간, 즉 온라인과 인터넷이라는 정보통신기술의 연결망 내에서 파편화되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고민으로 3월을 맞은 사이 박사학위 지도교수로부터 메일 한 통이 날아들었다. 지도교수와 연락한 지 10년도 넘은 것 같다. 제자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탓에 늘 죄송한 마음을 짐처럼 지고 있었는데 먼저 소식을 보내온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가스통 바슐라르’를 강의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이 메일의 요지였다.

알다시피 바슐라르는 시학과 과학을 아우른 철학자다. 바슐라르는 1980년대에 한국에서 문학비평계의 주도 이론으로 널리 활용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엔 바슐라르를 이야기하는 비평가들이 없다. 일차적 원인은 문학이 죽은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식, 즉 경제지식이 지식의 제일가치로 등극한 된 것도 상상력이나 문학을 멀리하게 하는 원인이리라.

그런데 지도교수께서 바슐라르가 중요하다는 교령(敎令)을 내린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문은 디지털의 시대, 인공지능(AI), 빅데이터의 시대일수록 시학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바슐라르는 당시 지식계의 편견인 객관성, 확실성, 과학성을 그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한 철학자였다. 바슐라르는 “시의 축과 과학의 축은 역(逆)의 관계에 있다”고 까지 했다.

최근 신화통신에서는 ‘신샤오멍’(新小萌)이란 AI 여성앵커가 뉴스를 진행했노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아이 듀’(i-Dieu, 인터넷 공간 속의 신)’라는 용어가 우연히 등장했겠는가. 이번 학기는 바슐라르의 시학 정신으로 디지털 기술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인간을 배제하는 기술은 무기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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