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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의 빨갱이, 박정희의 빨갱이, 홍준표의 빨갱이 [박태훈의 스토리뉴스]

입력 : 2019-03-02 07:00:00 수정 : 2019-03-02 10: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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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3·1절 기념사 "빨갱이는 일제의 색깔론" / 박정희 "나를 빨갱이로 몰다니, 정적을 빨갱이로 모는 악습을 확" / 홍준표 "창원에 빨갱이들이 많다,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데~" / 하태경 "홍준표, 미투를 빨갱이를 장사에 악용…" 등 맹공 / 이준석 "빨갱이 부정적 고착은 수십만명 죽인 김일성 때문" / 바미당 "文, 철지난 빨갱이로 오히려 색깔론 부추겨"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로 인해 때아닌 '빨갱이'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은 빨갱이를 일제가 만든 변형된 색깔론이라며 청산해야할 '친일 전재'라고 규정했다. 그러자 바른미래당은 "문 대통령은 철지난 ‘빨갱이’라는 말을 되살려내 오히려 ‘색깔론’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빨갱이'의 유래는 해석이 다양하지만 1950년대부터 상당기간 동안 '죽음보다 더한 형벌'로 우리 사회를 짓눌렀다. '공산주의자'를 뜻하는 이상으로 '빨갱이'하면 전후 맥락을 살피지 않고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국민들이 예전에 참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문 대통령 "빨갱이는 청산해야할 대표적인 친일잔재"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 "일제(日帝)는 독립군을 ‘비적(匪賊)’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고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며 "빨갱이는 진짜 공산주의자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다"규정했다.

그러면서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고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다"며 "민주화운동에도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 해방후 일제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았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선’은 우리 안을 갈라놓은 이념의 적대를 지울 때 함께 사라질 것이고 서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 이준석 "김일성으로 인해 빨갱이 부정적 인식 고착", 바미당 "왜 빨갱이 소환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문 대통령 기념사가 끝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빨갱이가 일재가 만든 색깔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빨갱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김일성 일당의 전쟁도발이 그 세대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한이 주 원인이다"라며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한국전쟁)에서 14만 9000명의 국군 전사자, 71만명의 국군 부상자, 13만명의 국군 실종자, 37만명의 민간인 사망자, 22만 9000명의 민간인 부상자, 30만명이 넘는 민간인 실종자 들과 그 가족들이 가진 한에 대해 대통령께서 무덤덤하신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종철 바미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대통령 기념사에 나온 ‘빨갱이’ 어원 풀이는 이미 철지난 ‘빨갱이’라는 말을 되살려내 오히려 거꾸로 ‘색깔론’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좌우 이념 갈등의 최대 상처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이라는 사실을 빼고서 좌우 갈등의 반쪽만을 말할 수 없음도 주지의 사실이다"라며 이 최고위원을 편들고 나섰다.

◆ 빨갱이 어원...빨치산(파르티잔), 공산주의 깃발, 무산자 계급 표현 등 다양

빨갱이 어원에 대해 일치된 견해는 없다. 다만 독립운동이나 정권탈취를 위해 싸우는 비정규군을 뜻하는 영어 Partisan 발음 '빨치산'이 빨갱이로 변형됐다는 설명에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볼세비키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의 붉은 색과 빨치산이 합쳐져 빨갱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무산자 계급을 뜻하는 벌거숭이(빨가벗은 사람)라는 말이 변형됐다는 설도 있다.

◆ 채만식 "빨갱이는 양심, 애국적인 사람"...1947년부터 '공산주의자', 1948년 여수사건 이후 고착화

빨갱이가 '공산주의자'라는 뜻을 지니게 된 것은 1947년 무렵이며 1948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여순사건을 계기로 '빨갱이 프레임'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1946년이전 빨갱이는 '공산주의자'와 다소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자료가 있다.

소설가 채만식은 1948년 10월 창비사에 쓴 '도야지(돼지)'라는 글에서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라고 이전까지의 빨갱이를 설명했다.

이러던 빨갱이가 1947년 4월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자국에 보낸 문서에 "4월 27일 이승만 환영집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박멸하라', '빨갱이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1947년 9월 12일 자 '독립신보'에 "빨갱이라는 말이 퍽 유행된다. 이것은 공산당을 말하는 것..."이라고 나와 의미변화를 겪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득중 박사는 2009년 '빨갱이'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 빨갱이라는 말이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단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존재,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이르는 말(이 됐다)"고 주장했다. 
5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박정희가 빨갱이로 몬 윤보선 후보에 분노했다는 내용을 다룬 1963년 10월 14일 동아일보. 사진=동아일보 자료참조
◆ 여순사건 여파로 체포된 박정희...이후 '빨갱이'말에 격한 반응

'빨갱이'라는 말을 극혐(극도로 혐오)으로 작용하게 만든 주인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는 여순사건 여파로 불어닥친 '군부내 좌익 소탕'에 따라 1948년 11월 11일 붙잡혀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군부인맥의 구명활동에 힘입어 군복을 벗는 것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군에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은 좌익, 즉 빨갱이라는 말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역작용으로 빨갱이를 분노의 대상, 척결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1963년 10월 5대 대통령 선거 직전 윤보선 후보가 자신을 '빨갱이'라고 몰아 세우자 격분한 박정희 후보는 "지금 테로(테러)를 당하고 있다, 그저 참고 있자니 이 나라의 원수(元首)인 나를 '빨갱이'로 몰아치니… 내가 '빨갱이'라면 이 나라가 2년 동안 '빨갱이' 치하에 있었단 말인가, 꾹 참고 있지만 선거만 끝나면... 모조리 가만히 두지 않겠다"라고 말한 내용이 당시 신문(동아일보 1963년 10월 14일자 참조)에 나와 있다. 
2018년 6월 2일 빨갱이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홍준표 당시 한국당 대표. YTN 캡처
◆ 홍준표 "창원에 빨갱이 많다" VS 洪 저격수 하태경 "빨갱이 장사꾼"

빨갱이는 한국전쟁의 깊은 상처로 인해 같은 하늘아래 살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적어도 20세기까지는 '빨갱이'로 낙인 찍히면 대한민국에서 살아 갈 수가, 선거에서 이길 수 없었다.

21세기 정치권에서도 빨갱이 논란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다.

홍 전 대표는 보수당 대표를 지낸 인물답게 '빨갱이'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6·13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6월 2일 " 창원에 여기는 빨갱이들이 많다, 성질같아서는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데~"라는 말을 해 거센 반발을 불러 왔다.
2018년 1월 4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당시 홍준표 대표가 동심까지 빨갱이 장사에 이용하고 있다며 비난하는 모습. 뉴시스
하태경 의원은 홍 전 대표가 '빨갱이 장사를 하고 있다'라는 프레임을 가동해 여러번 주목 받았다.

하 의원은 2018년 1월 4일 홍준표 당시 한국당 대표를 "영화 '1987'에 박처원이 있다면 2018엔 홍준표가 있다"며 "남북 평화 통일 바라는 그림을 상은 못 줄망정 빨갱이 그림이라고 어린이 동심까지 빨갱이 조작에 이용하는 게 제정신이냐"라고 몰아 세웠다.

하 의원은 같은 해 3월엔 "미투를 빨갱이 장사에 악용", 4월엔 "빨갱이 장사 못하니까 끝까지 (문재인 정부의 남북회담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등 틈만 나면 홍 전 대표를 공격했다.

◆ 지만원 "홍준표 주거지는 빨갱이 소굴" 등 상대 공격에 빨갱이 제 입맛대로 사용

홍준표 전 대표는 하태경 의원에게 '빨갱이 장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 받은 반면 보수논객 지만원씨로부터는 정반대 의미로 공격당했다.

5·18민주화 운동 폄훼발언 등 '극우'의 대표적 인물로 불리고 있는 지만원씨는 지난해 2월 13일 자신의 SNS에 "홍준표와 연결된 주요 인물은 모두 빨갱이다"라며 "홍준표는 공익 공간에서 떠나라"고 요구했다.

홍 전 대표는 한 쪽에선 수구골통, 다른 쪽에선 빨갱이 옹호론자로 비난받는 이상한 정치인이 됐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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