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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희의문화재풍경] ‘닭 도둑’ 된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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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1 23:16:13 수정 : 2019-03-18 16: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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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한 달 사이에 닭 11마리를 훔쳐먹었다 경찰에까지 넘겨진 수리부엉이(사진)의 ‘웃픈’(?) 이야기가 알려졌다.

 

닭을 상습적으로 잡아먹은 수리부엉이를 양계장 주인이 직접 잡아서 경찰서에 넘겼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재물손괴’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만, 수리부엉이에게 책임을 물을 길이 없으니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읽으며 함께 실린 사진 속 범인의 모습에 한참 웃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웃을 일만도 아니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 수리부엉이는 야간에 사냥을 한다. 사냥한 먹이를 나무구멍에 저장하는 습성이 있어 ‘부자 새’라고도 불렀다. 그런 수리부엉이가 왜 아침녘에 양계장을 습격했을까. 자신의 서식지에서는 먹이를 구하지 못하니, 본래의 습성마저 저버리고 인간의 물건을 훔친 것이다. 배를 곯다 못해 위험을 무릅쓴 수리부엉이의 입장엔 ‘생계형 범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양계장 주인은 붙잡은 수리부엉이를 왜 경찰서에 넘겼을까. 수리부엉이는 문화재로 보호받는 천연기념물(제324-2호)이다. 폐사체의 소각까지도 허가가 필요한 천연기념물이니 살아 있는 수리부엉이에게 맘대로 분풀이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주인은 애써 기른 닭을 잃었지만 배상을 받을 길은 없다. 경찰서에 넘긴들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겠지만, 답답한 마음에 경찰을 찾지 않았을까. 이래저래 주인도 수리부엉이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문화재 보호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 주인은 수리부엉이가 꽤 괘씸했겠지만,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우리의 문화재 보호 인식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화재 보호는 치밀한 법적 체계와 이를 실행하는 전문적 정책의 영역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보호 대책은 사회 구성원들이 문화재의 가치에 공감하고, 작은 실천에라도 나서는 것이다. 이것이 ‘수리부엉이 습격사건’의 교훈이 아닐까.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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