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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과로하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된다"…중환자실 전담 의사 쓰러져

입력 : 2019-02-27 12:05:00 수정 : 2019-02-27 14: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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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던져 중환자실에서 싸우던 오빠는 결국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돌아와. 다시 환자 봐야지” / 중환자들 헌신적으로 돌보던 신촌 세브란스병원 송주한 교수 뇌출혈로 쓰러져 / 폐 이식 클리닉 핵심 의료진으로 활약 / 2018년부터 동료 1명과 20∼30명 중환자 전담도 / 새벽 퇴근이면 다행, 병원서 지내다 며칠 만에 귀가 일쑤/ 병세 깊어진 아버지 입원 때도 환자 많아 인사만 겨우 / "대형 병원들도 인턴부터 교수까지 과로하지 않으면 정상운영 불가"
사람들은 대개 잊고 지내지만 편안하게 숨을 쉬며 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숨 쉬는 게 고통 자체인 폐질환 환자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특히 폐 이식 외에 생명을 유지할 길이 없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절박하다. 이들에게 새 숨을 불어주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하는 국내 의료진 중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폐 이식 클리닉이 ‘최고의 팀’으로 꼽힌다. 이 클리닉은 수술을 집도하는 흉부외과 의료진뿐 아니라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순환기내과, 중환자실 등의 전문 의료진으로 팀을 꾸려 고난도인 폐 이식 수술의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시행된 폐 이식 수술의 절반 가량을 도맡을 만큼 독보적이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팀의 핵심 중 한 명인 송주한 호흡기내과 교수(43·사진)가 학회에 참석했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다. 송 교수는 이후 자신이 전담했던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아직 의식을 못찾고 있다. 그는 평소 24시간 돌아가는 중환자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 곁을 지키며 헌신적으로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과 가족, 사생활은 잘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해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센터장이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송 교수가 하루 빨리 의식을 되찾고 일어나길 바라는 가족들과 세브란스병원 식구들, 그가 보살폈던 환자들의 기도와 응원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 

◆송 교수, 사명감에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중환자들 돌봐

27일 세브란스병원과 송 교수 가족 등에 따르면, 2014년 3월 세브란스병원으로 온 송 교수는 장기이식센터 폐 이식팀의 핵심 의료진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2018년 3월부터 동료 의사 1명과 함께 20∼30명 가량의 중환자를 돌보는 중환자실 전담 의사도 맡았다. 중환자실은 시시각각 생사를 다투거나 상태가 호전되다가도 갑자기 위급 상황에 빠지는 환자가 많아 격무에 시달리는 곳이다. 하지만 송 교수는 내색하지 않은 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소임을 다했다. 출근하면 다음 날 새벽에 퇴근하는 게 다행일 정도로 하루 이틀은 병원에서 지내며 쪽잠을 자는 게 다반사였다. 콜을 받으면 즉시 환자에게 달려가 곁을 지키고, 자가호흡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장비 값이 엄청 비싸고 숙련도를 요구하는 ‘에크모’((ECMO·체외막 산소화 장치) 치료도 송 교수의 몫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난해 병세가 깊어진 아버지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송 교수는 돌볼 환자가 많아 인사만 겨우 드렸다고 한다. 그의 여동생은 “주로 폐 이식 환자 등 중증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한밤 중이나 새벽에도 환자들 상태를 체크하느라 본인은 (병원에 있으면서도) 치과·비염 진료 받을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며 “그도 그럴것이 본인이 세심하게 돌보는 만큼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환자들을 살릴 수 있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것 같다”고 전했다. 

연세대 의대 출신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펠로우 과정을 밟은 범일연세내과 이동형 원장은 “대형 종합병원들조차 오래 전부터 인턴과 레지던트든, 펠로우든, 교수든 누군가 오버워크(과로)하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없는 구조”라며 “대체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서 특히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을 봐야 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전담 교수들은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을 바로 결정해줘야 하기 때문에 몸을 혹사하며 밤낮 없이 일하기 일쑤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막다른 길에 내몰린 의료구조를 바로잡지 않으면 사명감을 갖고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윤한덕 센터장이나 쓰러진 송 교수처럼 비슷한 사례가 잇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송 교수가 평소 환자분들에게 상당한 신경을 썼다”며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송 교수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빠, 일어날 수 있어. 다시 돌아와서 환자 봐야지···”

어떤 누구보다도 송 교수의 회복과 쾌유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은 가족들이다. 그의 여동생은 얼마 전 SNS에 그런 마음을 담담하게 전하기도 했다. 오빠를 추억하며 남긴 글은 주위를 안타깝고 숙연하게 했다. 송 교수가 속히 깨어나 가족의 품과 환자들 곁으로 오길 기원하며 여동생이 올린 글을 소개한다.

몇해 전 크게 아파 병원신세를 오래 지고 있는 친구를 병문안가면서 의사인 오빠에게 물었다. “(친구가) 회복할 수 있겠느냐”고. 평소 일과 관련된 일에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오빠였기에 큰 기대 없이 물었으나,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친구) 귀에 대고 크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 주면 분명히 듣고 있을 거야”라고.

그는 큰 병원에서 중환자실을 담당한다. 하지만 오빠는 모든 환자를 이렇게 돌보았던 것 같다. 수년 동안 집에서 저녁을 먹은 날이 없었고,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것도 특별한 날에나 가능했었다. 그나마 새벽이 되어서야 퇴근하면 다행이고, 병원에서 (지내다) 하루 이틀 뒤에 돌아오는 것 역시 다반사였다. 작년(10월 말)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 전에) 병세가 깊어져 아들이 일하는 병원에 입원하면, 아버지께 인사만 겨우 드리고는 본인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빴다. 주로 폐 이식을 한 환자들과 중증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깊은 밤이나 새벽이나 환자들 상태를 체크하느라 본인은 치과진료도, 비염진료도 시간을 내서 볼 수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본인이 세심하게 (환자를) 보는 만큼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환자들을 살릴수 있으니 오빠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 같다.

오빠가 나에게 해 준말은 매일 내 귓가에 맴돌고, 지금은 내가 오빠 귀에 대고 말한다. “오빠 일어날 수 있다”고. 오빠는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환자가 되어···. 작년 6월, 결국 오빠는 며칠밤을 새고, 다음날 학회를 갔다 뇌출혈로 쓰러졌고 아직 중환자실에서 그동안 못 잔 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결국 아빠의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하고 누워있는 오빠를 보며, 그리고 누워있는 아들을 차마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사무실 앞에 커피와 국화꽃 다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최근들어 (윤한덕 센터장 등) 의사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리면서 누워 있는 오빠가 더욱 생각난다. 그리고 부디 이(우리) 사회가 그리고 모든 의사들이, 오빠를 의료시스템의 희생이라 생각하지 말고 오빠가 온몸을 던져 지켜온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환자에 대한 사랑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그리고 아직도 (깨어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그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아직도 우리 오빠가 일어날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지만, 오빠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매일매일 오빠 귀에 대고 말한다.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돌아와. 다시 환자 봐야지”라고···.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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