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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의성 마늘소녀의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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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24 21:49:05 수정 : 2019-02-25 00: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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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 銀 신화 일군 컬링/감독·코치들 부패에 ‘곤두박질’/체육계, 선수 육성방식 재검토/지도자 인식개혁 없인 공염불 꼭 1년 전인 2018년 2월을 기억한다. 국민은 매우 행복했다. 평창동계올림 여자컬링에 혜성처럼 등장한 4명의 ‘시골 소녀’ 덕분이었다. 사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 컬링은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세계랭킹 10위까지만 출전하는 이 종목에서 당시 한국의 랭킹은 8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여자컬링팀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선전을 이어갔다. 세계랭킹 1위 캐나다, 2위 스위스, 3위 러시아를 모두 꺾는 파죽지세를 행진을 벌였고 결국 조별리그를 포함해 9승1패, 7연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라 아시아 최초로 은메달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들이 뜻밖의 ‘겨울 동화’를 써내려가자 국민은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열광했다. 김민정 코치를 포함해 김은정 스킵(주장)과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로 구성된 여자 컬링팀은 모두 같은 성씨여서 팀킴(Team Kim)으로 불리며 세계 컬링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선수들은 모두 의성의 고향 친구·동창·자매로 연결돼 끈끈한 조직력을 과시했고,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의 의성여고 선후배 사이여서 ‘마늘 소녀’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팀킴의 뛰어난 경기력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스키 스타 린진 본은 잊어라, 갈릭걸스는 평창 최고의 스타’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등 외신의 찬사가 쏟아졌다.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하며 뿔테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매로 작전 지시를 내리는 김은정은 최고 스타가 됐다. 팬들은 그에게 ‘안경선배’라는 애칭을 지어줬다. 심지어 바나나를 먹을 때 조차 진지한 얼굴을 잃지 않아 ‘엄근진(엄격·근엄·진지)’으로 불리며 다양한 무표정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그가 작전 지시 때 리드 김영미에게 외치는 다양한 버전의 “영미∼”를 구분하는 해설판과 선수들 관계 정리도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들은 대회가 끝난 뒤 로봇청소기 다양한 CF에 등장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마늘 판매가 급증할 정도로 신드롬을 부른 이들의 겨울동화는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팀킴은 지난해 11월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회장 직무대행, 그의 딸인 김민정 전 경북체육회 여자컬링 감독, 사위인 장반석 전 경북체육회 믹스더블 감독이 자신들에게 인격모독, 후원금과 상금 횡령 등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순식간에 ‘잔혹동화’로 바뀌었다. 그들은 늘 팬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통곡하고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대한체육회가 합동으로 한 달 동안 특정 감사를 벌여 지난 21일 결과를 발표했는데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김경두 일가는 경북체육회 컬링팀은 물론이고 의성컬링센터까지 사유화하며 팀킴에 욕설, 폭언, 인격모독을 일삼고 소포를 먼저 뜯어 볼 정도로 사생활까지 통제했다고 한다. 각종 후원금과 포상금 9386만원도 선수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이런 감사 결과 발표되자 팬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스포츠는 썩었다” “모두 구속 수사하라” “정말 추악하고 더럽다” ‘체육계 적폐를 청산하라”라며 격분을 쏟아내고 있다. 회원단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부 관계자도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팀킴이 당한 일들은 최근 많은 종목으로 확산된 ‘스포츠 미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를 상습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재범 전 코치나 전직 유도 선수 신유용씨를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성폭행한 A 코치의 사건 모두 엘리트 스포츠가 부른 폐단이다. 성적 지상주의 스포츠 정책은 감독이 제왕처럼 군림하며 선수들을 복종하게 만들었고 선수들의 인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팀이나 선수들을 쉽게 사유화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됐기에 지도자들은 폭력과 성폭행을 일삼고 포상금까지 횡령하는 전횡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지난달 스포츠 미투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인권상담센터를 설치하는 한편, 엘리트 체육 위주 선수 육성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인권을 가장 중시하도록 지도자들의 인식이 개혁되지 않는다면 이런 대책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 뻔하다.

스포츠 팬들은 팀킴의 소식을 접하자 포상금 착취 등 이들이 당한 피해 보상이 꼭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루빨리 팀킴의 상처를 어루만질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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