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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신바람, 풍류도로 통일한국 이루자

통일 신라 이끈 ‘화랑도 정신’/고려시대 문화부흥시킨 토양돼/비핵화 성패 달린 2차 북미회담/평화 발판… 민족번영 이룰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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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1 20:33:28      수정 : 2019-02-14 16:43:18
우리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각 왕조는 서로 다른 민족정서와 에토스 속에 살았던 것 같다. 흔히 민속학자들은 신라는 신(神)을, 고려는 미(美:멋)를, 조선은 한(恨)을 메인스트림(주류정서)으로 살았다고 한다. 물론 신라에도 멋과 한이, 고려에도 신과 한이, 조선에도 신과 멋이 있었겠지만 그 특징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과 신라에 비해 고려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고려사나 고려가사 및 문학 등을 통해 짐작하는 정도이지만 고려시대는 의외로 문화적 풍요와 세련됨 속에 민족자긍심을 가지고 살았던 시기였다. 북방거란족과 여진족에 밀려 남쪽으로 수도를 옮겼던 중국 송나라보다 더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고려시대의 상감청자나 수월관음도 등 미술·불화들은 세계적인 고미술경매장에서 10억원을 넘는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그만큼 미적 감각과 예술성이 높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멋스러운 생활이 무너진 것은 문신들이 무신들을 업신여기고 무신의 난과 무신통치가 이루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세계 초유의 대제국인 몽골의 침략이 있고부터이다.

고려는 신라에서 형성했던 세계 수준의 불교정신(화엄과 선불교)과 불교문화를 이어받아 내우외환 속에서도 문화를 세련되게 발전시켰으며, 몽골전란 속에서도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새기는 등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편찬을 통해 국가정체성을 확실히 했다. 고려중엽에는 영토를 북방으로 더 넓히기도 했다.

고려문화의 멋은 신라통일의 바탕 위에 구축됐다. 국가통일이라는 것은 수많은 전쟁과 문화적 피폐함을 몰고 오지만 일단 통일이 달성되면 문화적 번영의 시기가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통일에 쏟은 에너지가 문화예술로 향하기 때문이다. 신라통일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통일전쟁만을 생각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상과 철학의 준비가 있었다. 국가통일은 정치외교, 군사력, 국민의 의지 등 문화가 총동원되는 국가사업이다.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신라의 통일은 군사력과 함께 ‘신바람’ 즉 풍류도(화랑도)에 의해 달성됐다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신바람은 ‘자유(自由)와 새로움(新)’의 추구로 구성된다. 외래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자기화(토착화)하는 힘이 커질 때에, 밖으로 나아가는 진취성도 강화된다. 원효의 화쟁(和諍)사상과 원광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는 그러한 면을 잘 보여준다. 불교가 싸움을 좋아할 리 없지만, 세속에서 싸울 때는 살생유택(殺生有擇)과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을 가질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조선은 고려와 신라에 비해 한(恨)의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이는 무엇보다도 지배계급이 가렴주구로 민생을 보살피지 않았기 때문이고, 엘리트관료들이 당파싸움에 빠져들어 세계사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정조시대가 실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의 실학은 실패했고, 19세기의 근대화물결을 타지 못했다. 성리학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통치철학으로 운용한 국가 전체의 모습은 점차 당파싸움과 예송(禮訟)과 내분으로 기울었고, 마지막에는 세도정치로 자발적 개항과 근대화의 기회마저 놓쳤다. 그 마침표가 경술국치였다.

조선말 유림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쇄국정치로 맞서면서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외쳤지만 문물의 흐름을 놓치는 폐쇄적·퇴행적 도덕주의는 내우외환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강제개항과 동학농민운동은 외세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외치던 ‘우리의 도덕’과 ‘우리의 주의’를 만들기는커녕 모두 외국의 것으로 대체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에겐 ‘통일에의 신바람’이 필요하다. 신바람은 오랫동안 막히고 정체된 문화를 개혁과 혁명으로 이끌어나갈 에너지원이 될 것이고, 목표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게 할 것이다.

신바람이 없이는 국가통일과 같은 거대규모의 미래지향적인 사업을 성취할 수 없다. 우리의 신바람이 의식주의 해결과 서구모방의 제도를 넘어 철학적 시선으로 스스로 선진국에의 비전을 갖게 될 때 통일한국이 실현될 것이다. 남북한은 아직도 합의된 통일철학과 통일방안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제2차 북·미회담(하노이, 2월 27∼28일)은 ‘북한의 비핵화’에 합의를 이루고 민족번영의 길로 들어설 절체절명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소속된 국가에 충성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 전체를 담고 있는 그릇이 국가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국가가 없으면 패스포트도 없고, 세계를 여행할 자유마저 잃게 된다. 국가의 은덕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한 번 국가를 잃어보면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우리 민족은 일제 때 이미 그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일까, 멋일까, 신일까. ‘한’은 과거지향적이고, 퇴행적이다. ‘멋’은 현재에 충실함으로써 기술과 예술로 세련된 문화를 만든다. ‘신’은 신바람과 자신감을 통해 문화를 미래지향적으로 이끌어간다.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한’에 빠지는 것이다. ‘한’의 이면에는 분노와 질투와 비생산성이 있다. 우리는 지금 평화통일과 함께 선진국으로 향하느냐, 다시 외세의 개입과 분열로 국난을 자초하느냐의 ‘새로운 구한말’에 서 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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