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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인생도 가지치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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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08 21:37:58 수정 : 2019-02-08 16: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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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가지 쳐야 잘 자라는 나무처럼/ 마음 속에 너무 많은 욕심과 계획/ 과감히 잘라내는 ‘고통’ 감수해야/
‘꿈의 큰 줄기’ 지키며 살 수 있어
얼마 전 정원 가꾸기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다가 ‘가지치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사실 가지치기를 하는 정원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식물들이 “아야, 아파요, 아프다고요!” 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만약 가지치기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일어난다. 가지들은 여기저기 질서도 계통도 없이 뻗어 나가 흉물스럽게 변해 버리고, 잔가지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나무에 햇빛과 영양분이 골고루 공급되지 못해 나무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고 만다. ‘가위질의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면, 정작 나무나 꽃의 성장을 망쳐버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마음껏 자랄 수 있게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멋진 정원이 되리라는 꿈은 순진한 몽상인 셈이다.

가위가 날카롭게 잘 들수록, 정원사가 과감하고 지혜로울수록, 정원은 아름답고도 조화로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절단의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나무의 열매와 꽃이 더욱 아름답고 튼실하게 생장할 수 있기 위해서 가지치기는 꼭 필요한 성장통이다. 우리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넘쳐나지만, 그 모든 열망을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버리면 마음의 큰 줄기가 튼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다. 가지치기의 날카로운 고통이 필요한 순간이다. 오래된 가지를 쳐내고 죽은 줄기는 쳐내야 어린싹이 자라날 수 있고, 잔가지 덤불에 가려 있던 큰 줄기가 햇빛과 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

정여울 작가
우리 마음도 정원을 닮았다. 정원과 숲은 다르다. 숲은 야생의 질서를 따르는 반면, 정원은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를 추구한다. 문명화 이전의 인간이 ‘숲’이라면, 문명화 이후의 인간은 ‘정원’을 닮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그 인연이나, 그 꿈을 꼭 잘라내야만’ 내가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다.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인간관계를 잘라내야 할 때가 있고, 내 안의 너무 많은 욕심의 잔가지를 과감하게 쳐내고 ‘내 꿈의 커다란 줄기를 지켜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평생 ‘너무 많은 욕심과 계획’으로 내 꿈의 큰 줄기를 가려왔다. 때로는 돈을 벌기 위해, 때로는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진정으로 꿈꾸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일중독의 악순환에 빠지기도 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아본다. 가지치기의 날카로운 고통이 폐부를 찌르지만, 이 고통을 통해 내가 더욱 올곧게 성장할 수 있기를 꿈꾼다. 잔가지와 큰 가지를 구분하는 심리학적 기준은 ‘에고(Ego)가 원하는 것’과 ‘셀프(Self)가 원하는 것’을 나눠 보는 것이다. 에고, 즉 사회적 자아가 원하는 것은 타인의 눈치를 보는 열망이다. 돈이나 인기, 명예나 권력과 이어지는 욕망은 대부분 에고의 잔가지에 속한다. 셀프, 즉 내면의 자기가 원하는 것은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지만, ‘내 안의 깊은 무의식이 기뻐하는 것’이다. 셀프는 에고의 열망을 잘라내는 고통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해내도록 이끈다. 셀프는 우리 안의 더 큰 힘을 깨닫게 만드는 궁극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가시적인 성과에 신경 쓰는 마음의 잔가지를 쳐주고 ‘내 인생의 커다란 드라마’를 상상하며 그 큰 그림을 중심으로 ‘욕망의 가지치기’를 해보자. 하루 한 시간 아무 욕심 없이 산책을 한다든지, 마음 챙김을 위한 명상을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나은 삶,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훨씬 지혜로운 스케줄 관리가 아닐까. 그리하여 우리의 가장 중요한 꿈의 줄기가 더 환한 세상의 햇살과 더 풍요로운 정신의 자양분을 듬뿍 얻을 수 있기를. 욕망의 가지치기는 에고에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셀프의 큰 줄기가 더욱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에고에 잠시 양보를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내면의 에너지가 상처를 치유하고 상처와 대면하며 마침내 상처보다 더 커다란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욕망의 가지치기는 ‘부분의 아픔’을 통해 ‘전체의 궁극적인 성장’을 꿈꾸는 몸짓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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