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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면의 회복을 위해 시작한 집필… 독자도 치유받길” [창간 30주년 제 15회 세계문학상]

입력 : 2019-02-01 06:00:00 수정 : 2019-01-31 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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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로야’ 이봉주 “믿기지가 않아서 감히 기뻐해도 되나 어리둥절하고 책임감이 많이 느껴져요. 깊숙하고 진솔한 성찰이 담긴 글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과연 잘 표현됐나 걱정돼요. 큰 상의 기대에 부응하는 무게와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지니고, 그러면서도 가벼운 걸음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15회 세계문학상 주인공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응모한 ‘다이앤 쇼어’였다. 그동안 해외에서 보내온 세계문학상 응모작들은 끊이지 않았지만 수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사위원들이 지난 24일 저녁 긴 토론 끝에 당선작을 선정했을 때 밴쿠버는 한국보다 하루 늦은 새벽이었다. 곤히 자고 있을 시간이라 연락을 바란다는 간단한 메일만 먼저 보냈는데 이튿날 아침 걸려온 전화 속 여성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높은 톤이었다.

한국 이름은 이봉주, 서울대 독문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유럽연합상공회의소 일을 같이 하면서 박사과정 1학기까지 수료했는데 이 과정에서 심신이 지쳐 휴식을 취하러 캐나다에 갔다가 운명의 이란 출신 남자를 만나 결혼해 아홉 살짜리 딸이랑 남편과 밴쿠버에서 살고 있다. 블로그에 에세이는 써왔지만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연전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들’ 서문을 읽으면서였다.

밴쿠버에 살면서 캐나다 이름 ‘다이앤 쇼어’로 15회 세계문학상에 응모한 이봉주씨. 그는 “이 소설이 세상에 나간다면 제가 낫고 있듯이 누군가도 치유되기를 바란다”면서 “단지 그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이봉주 제공
“작가는 진정한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며 결국 진정한 독자들이 작가가 된다고 마거릿 애트우드는 언급합니다. 그전에도 글은 소소히, 순전히 일기처럼 써왔지만, 독자를 대상으로 써야겠다는 마음은 단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교통사고가 나기 바로 전에 그 책을 읽었고, 사고 후 이런저런 치료를 겪으며 확신이 들었지요. 써야겠구나, 써야 할 때구나. 제 자신의 회복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이젠 나눠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나눌 것이 생긴 것에 저는 무척 기쁩니다.”

수상작 ‘로야’에는 그가 겪은 교통사고를 계기로 성장기에 아빠의 폭력과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캐릭터로 인해 깊숙이 잠복된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치밀한 문장으로 그려진다. ‘로야’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딸 이름인데 페르시아어로 ‘꿈’ 혹은 ‘이상’을 뜻한다. 아무리 주어진 ‘원 가족’에서 고통을 겪고 성장했어도 부모 세대보다 진화된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인류의 삶에는 희망이 있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캐나다 노벨문학문상 수상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작품은 고루고루 늘 읽는 편이고, 여름엔 하루키의 작품을 영문으로 읽는다. 그는 ‘후끈한 여름에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차가운 수영장에서 고른 호흡으로 수영을 하고 나온 느낌이거나 깨끗하게 빨아 잘 개어놓은 세탁물을 보는 느낌’이어서 ‘읽다 보면 34도의 기온이 24도쯤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블로그에 쓴 적 있다. 영어는 물론 독어 페르시아어에도 능통한 그는 다른 언어로 바뀌어도 내용에는 손상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한국 작가들 작품은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제한돼 있어 목마른 편인데 이청준, 박완서, 은희경의 글과 생각들을 좋아한다.

“‘로야’가 겉으로는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누구에게나 연관된 보편적인 글입니다. 언어를 초월해도, 문화나 관습을 초월해도, 종국엔 경계를 초월해도 이해 가능한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습니다. 이 글이 세상에 나간다면 제가 낫고 있듯이 누군가도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로야’에는 딸과 남편과 꾸리는 밴쿠버의 현재 삶을 배경으로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과 자주 꾸는 꿈 이야기들이 교직된다. 성장기에 엄마는 물론 남매에게까지 가해졌던 폭력에 대한 기억과 무심한 캐릭터의 ‘엄마’가 소설 속 화자의 마음을 옥죈다. 이란에서 성장해 스무 살 때 캐나다에 온 남편과 더불어 제3국에서 다른 언어로 살아가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는 그는 남편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미 두 번째 장편 집필에 착수했다고 했다.

다이앤 쇼어, 이봉주는 “아파도 괜찮다고,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한다고, 특히 자신에게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순간 나을 수도 있고 낫지 않더라도 적어도 더 이상 아프지는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이 소설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1974년 대구 출생
△1999년 서울대 독문과 대학원 석사
△캐나다 밴쿠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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