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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 분야는 노다지… 전문인력 양성 서둘러야”

입력 : 2019-01-28 21:23:38 수정 : 2019-01-28 16: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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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 상지대 명예교수의 조언 / 고전 총량 어느 정도인지 확인 시급 / 민간자료 수집 분류 목록화 등 필요 / 번역작업 기준 되는 ‘공구서’ 부족 / 같은 책 번역해도 내용 ‘들쑥날쑥’ / 전국 한문학과 대학원 진학률 10% / 인재 키울 고전번역대학원 설립 중요 / 중국, 고전을 문화패권 수단화 가속 / 우리 학문, 中의 아류 취급 우려도 “우리나라의 고전 번역 현황을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나온 상지대 곽진 명예교수의 대답에는 안타까움,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건 뭐 우리랑 비교가 안 되죠. (일본이) 너무 잘하지. 예산, 인력은 물론이고 (고전 번역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어요. 너무 부럽죠. 동양학이나 역사학을 하려면 반드시 일본을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굳이 일본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 고전 번역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개선해야 할 게 숱하다는 건 오래전의 문제인식이다. 고전은 한국적 인문학의 기초이자,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하고, 창조적 문화 콘텐츠 개발을 위한 원천 등으로 규정되지만 활용의 기초인 번역의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곽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참여한 ‘고전번역 활성화를 위한 인력양성 정책연구-고전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을 중심으로’는 이런 현실을 진단하고, 개선 대책을 고민하기 위해 진행돼, 얼마 전 국회 공청회에서 발표됐다. 지난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에서 그를 만나 우리의 고전 번역 현황과 문제점 등에 관해 들었다. 
상지대 곽진 명예교수가 지난 25일 경기도 분당의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고전 번역의 현황과 문제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곽 교수는 고전 번역의 기초적인 문제부터 진단했다.

“고전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걸 서둘러야 한다. 특히 민간자료는 수집해서 분류해 목록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지금도 많이 늦었다.”

번역이 필요한 자료들이 어떤 것이며,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곽 교수가 지목한 민간자료는 개인의 문집, 일기 등으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관찬 문서와 결합해 시대상을 반듯하게 보여주며 중앙과 국가 중심의 일방적인 연구 경향을 입체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초적인 자료다.

고전 자료를 확보해 목록화했다고 해도 충실한 번역을 위한 수단이 빈약하다. 대표적인 게 한자사전, 지도집, 인명·지명사전 등 번역 작업에서 기준이 되는 ‘공구서’의 부족이다. 그는 “이런 것이 부족하다 보니 같은 책을 번역해도 (연구자들에 따라) 내용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은 철저하게 해놓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전문성을 갖춘 인력의 문제로 수렴된다. 고전 발굴, 공구서 확충 등 어떠한 문제라도 전문 연구자들을 양성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재의 부족은 고전 번역의 미래 역시 암울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 결정적 요인이다.

곽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전국 대학의 한문학과 졸업생들의 2018년 대학원 진학률은 10.3%에 불과하다. 한문학과가 설치된 전국 9개 대학 중 한 곳은 대학원 진학자가 한 명도 없었고, 두 곳은 1명이었다. 가장 많은 곳조차 5명에 불과했다. 고전 번역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인력은 적고, 예산마저 부족하다 보니 대형 번역사업의 진행도 저조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실록 번역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가독성을 높이는 현대화 작업은 2017년까지 9.9%(861권 중 85권)에 불과하다. 실록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대표적 관찬 자료인 승정원일기는 13.9%(4772권 중 663권), 한국문집은 17.7%(5250권 중 929권)를 완료했을 뿐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계획하고 있는 문집,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특수고전 등 전체 1만2884권의 번역률은 16.8%(2165권)다. “현재 속도로 진행되면 2057년에나 완료될 것”이라는 게 곽 교수팀의 추정이다. 

“일거리를 줘야 사람이 모인다. 자료의 수집, 분류, 가공, 번역 등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이 볼 때는 고전 번역 분야에는 엄청난 노다지가 있다. 그걸 캐낼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 고전번역대학원의 설립이 그래서 중요하다. 고전번역의 마스터플랜을 짜고, 현장과 이론을 연결해 통합적으로 관리하면서 인재를 키우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우리의 상황이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훌쩍 앞서 있는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은 고전을 문화패권의 한 수단으로 보고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게 곽 교수의 설명이다. 자국 문화의 기초가 한자이기 때문에 고전의 정리와 번역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설립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문 고전을 정리하고, 연구 인력 양성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곽 교수는 “중국의 문화전략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권의 한자자료를 중화문화권에 포함하려는 패권적 시도를 내재하고 있다”며 “한자로 기록된 우리의 문화유산이 중국의 그것에 편입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아시아에서 성리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조차 중국 학문의 하위장르 정도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그는 “퇴계, 율곡의 주된 관심사가 (중국에서 시작된) 주자학이었다. 중국은 ‘우리 글로 너희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라며 “자칫하다간 퇴계, 율곡의 학문이 중국 학자들의 아류로 취급받을 수 있다. 서둘러 고전을 번역하고,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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