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면으로 압박 늘리는 美
지난달 11∼13일 서울에서 열린 방위비분담협상 10차 회의가 ‘핵심 사안에서의 이견’을 이유로 최종 타결에 실패한 뒤 미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압박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달 28일쯤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직접 청와대를 방문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 한국의 방위비 분담 방안으로 연간 10억달러에 1년 유효기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차 회의가 결렬된 지 보름이 지난 시점이다. 해리스 대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다른 방식’으로 이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킹 목사 기념비’ 방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일인 21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킹 목사 기념비를 방문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
한·미는 지난해 10차례 협상에서 총액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원칙적 입장은 한국 부담액을 2배 증가시키는 것이다. 앞선 9차에 걸친 협상에서 양국 실무 협상단은 총액 면에서 상당히 입장을 좁혔다가 미국이 10차 회의에서 요구액을 대폭 늘리는 동시에 1년짜리 계약을 요구해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2주가 지난 뒤 미국은 일방적으로 1년 유효기간과 연간 10억달러를 하나로 묶어 우리 정부에 압박한 것이다.
방위비분담금이 10억 달러로 결정되면 지난해에 비해 15% 인상되는 것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리 정부는 상징적 액수인 1조원을 넘을 경우 국회 통과도 어렵고 국민 설득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1조원도 전년(9천602억 원)에 비하면 약 4% 증액한 것으로 적은 액수가 아니라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양국은 협상 단위를 장관급으로 올린 상태지만 정상급이 아닌 이상 타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與, “美, 국회 비준 필요 인식해야”
미국에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가운데 여권은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정부를 지원하고 나섰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분담금은 국민의 소중한 세금인 만큼 어느 경우에도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증액이 이뤄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분담금협정이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국회 비준 문제를 직접 거론함으로서 미국 측에 경고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당국 간 이견이 여전한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의 국회 비준 언급은 국내 여론을 고리로 미국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 강경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침을 따라야 하는 미국 실무 협상팀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홍주형·안병수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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