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일본 대법원에는 외교관 출신이 꼭 있다…왜?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19-01-20 13:00:00 수정 : 2019-01-20 11:29:3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日 정통 외교관 출신 후쿠다 前대법관, 한국 대법원 '징용' 판결 비판 / '최고 사법기관은 국제법도 전문성 갖춰야' 논리에 따라 1947년부터 / 대법관 15자리 중 한 자리를 대사 등 지낸 중견 외교관이 고정 임명 / "한국도 대법관·헌법재판관 자리를 외교관 등에게 개방해야" 목소리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소송 판결을 놓고 일본 측의 반발이 격화하는 가운데 일본의 전직 대법관이 국내 언론에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고문을 실어 눈길을 끈다. 이 전직 대법관은 정통 법조인이 아닌 외교관 출신으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에 실무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고 사법기관에 전직 외교관이나 행정부 관료, 대학교수 등이 포함되는 건 일본 대법원의 오랜 관행이다. 한국도 최고 사법기관 구성원인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자리를 비(非)법조인한테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으나 헌법과 법률의 제약 등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정통 외교관 출신 후쿠다 히로시 전 일본 대법관이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국내 언론에 기고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외교관 출신 전직 日대법관 "한국 대법원 틀렸다"

2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전날 중앙일보에 후쿠다 히로시(福田博) 전 일본 최고재판소 판사 명의로 ‘한·일 관계 흔드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란 기고문이 실렸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우리 대법원에 해당한다. 후쿠다 전 대법관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대법원에 재직하고 현재는 일본의 한 국제법률사무소 객원 명예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후쿠다 전 대법관은 글에서 “필자는 일본 외무성 조약국의 담당관으로 한·일 협정 교섭에 참여했다”고 자신의 경력을 소개한 뒤 “한·일 청구권협정은 양국 간 그리고 양국 국민 간 청구권 문제에 대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되었으며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1965년 이래 구축해 온 한·일 간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이라며 “(한국 국민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개인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교섭 경위에 어긋나는 해석이며, 이는 한·일 양국이 협정 체결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눈길을 끄는 건 그가 1965년 당시 일본 외무성에서 일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란 점이다. 그는 말레시이사 주재 대사 등 주요 보직을 거쳐 1995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이처럼 ‘외교’와 ‘법’에 모두 정통한 민간 전문가가 스스로 나서 일본 입장을 옹호하니 일본 정부로선 ‘쾌재’를 부를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 청사.
◆지금도 외무성 국제법국장 출신 대법관이 재직중

법조인 자격이 없고 판사 경험은 더더욱 없는 외교관이 최고 사법기관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한국인의 눈에는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일본 법조계에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2년 뒤인 1947년 8월 이른바 ‘맥아더 헌법’에 따라 출범한 일본 사법부는 하급심 법원의 경우 법조인 자격을 갖춘 이가 법관이 되도록 했으나 유독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만은 ‘학식 경험자’, 즉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일정한 학문적 수준과 공직자 근무 경력 등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대법관에 임명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학식 경험자란 사법시험에 합격한 검사나 변호사는 물론 아예 법조인이 아닌 행정부 관료, 외교관, 대학교수 등까지 포괄하는 아주 넓은 개념이다.

일본 최초의 외교관 출신 대법관은 구리야마 시게루(栗山茂)다. 그는 주벨기에 대사 등을 지낸 정통 외교관으로 1947년 갓 출범한 대법원의 초대 대법관으로 합류해 1956년까지 재직했다.

이후 일본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5명 가운데 1명은 반드시 전직 외교관 중에서 충원하는 관행을 유지해오고 있다. 지금도 2017년 취임한 하야시 게이이치(林景一) 대법관이 재직 중이다. 하야시 대법관은 1974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외무성 조약국장, 국제법률국장 등을 지내고 아일랜드와 영국 주재 대사를 거쳐 대법관에 기용됐다.
한국 대법원은 대법관의 자격을 ‘법조인’으로 제한해 외교관 등이 최고 사법기관에 진출할 길을 막고 있다.
◆한국, 법조인 아니면 대법관·헌법재판관 못 돼

일본이 이처럼 정통 외교관을 대법원의 필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최고 사법기관인 만큼 국제법에 대해서도 상당한 전문적 식견을 갖춰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미묘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 대법원에 계류될 경우 동료 대법관들한테 외교 관행과 충돌하지 않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실제로 이번 기고문에서 후쿠다 전 대법관은 “국제법상 각국은 내부적인 이유로 국제법의 의무를 회피할 수 없다”며 “어느 나라든 외교는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에 속해 있는 권한”이라고 강조하는 등 국제법과 외교 분야를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드러냈다. 우리 대법원에는 부족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현행 헌법은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에게 ‘법관의 자격’을 요구한다. 그런데 법률상 사법시험 또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만 법관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결국 법조인이 아닌 사람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에 임명될 가능성이 원천 봉쇄돼 있는 셈이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관, 순수 재야 변호사, 교수, 외교관과 공무원을 두루 대법관에 임명해 대법원의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을 높이고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도 “헌법재판관 9명 중 3분의1 정도는 비법조인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말해 외교관 등이 헌재에 입성할 길을 열어줄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