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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수형 생존자 18인, 70년 만에 무죄(無罪)

입력 : 2019-01-18 06:00:00 수정 : 2019-01-17 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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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공소기각’ 판결 / 내란죄 등 누명… 최대 20년 복역 / “죄목도 모른 채 단죄… 절차 잘못” / 군사재판 불법 인정 첫 사법 판단 / 99세 할머니 “큰 짐 내려놓아” 눈물
“1948년 겨울 제주, 군경이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을 잡아 죽이자 무조건 아이를 업고 도망쳤지요. 며칠을 떠돌다 영문도 모른 채 붙잡혀 전주형무소로 보내졌어요. 배에 태워져 가던 중 굶주린 아기가 죽었답니다. 죽은 아이를 목포 길거리에 두고 온 생각만 하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타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도4·3사건 생존 수형인 18명이 70년 만에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은 17일 오계춘(99) 할머니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해 가는 과거를 떠올렸다. 오 할머니는 “70년 동안 지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며 ‘이제 죄를 벗었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말했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는 임창의(99·여)씨 등 4·3사건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청구인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공소기각이란 형사소송에서 법원이 소송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4·3사건 당시 군사재판이 별다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임을 뜻한다. 이번 판결로 재심을 청구한 생존 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

기쁨의 박수 제주 4·3사건 당시 군경 당국에 의해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 및 관계자들이 17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소송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이 나오자 기뻐하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한 군법회의는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일관되게 ‘어떤 범죄로 재판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당시 제주도에 소개령이 내려진 시기 등 사정을 종합할 때 단기간에 그 많은 사람을 군법회의에 넘겨 예심조사나 기소장 전달 등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추정하기 어렵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 제기는 절차를 위반해 무효일 때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제주도4·3사건 당시 계엄령하에 이뤄진 군사재판이 불법이며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힌 수형인들이 무죄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청구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날 법정 안에는 재심을 청구한 4·3사건 생존 수형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가족, 시민단체 관계자, 기자 등 100여명이 찾아 자리를 가득 메웠다. 건강이 좋지 않은 현창용(88) 할아버지 등 2명을 제외한 청구인 16명이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갈 때 할머니들은 눈물을 훔쳤다. 특히 재판장인 제갈창 부장판사는 마지막 선고를 내리기 전에 “지난 세월 고생 많으셨다”고 말하며 부당한 군사재판으로 70년간 죄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위로했다.

제주도4·3사건은 1947년 3·1운동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 중에서도 4·3사건 수형인은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영문도 모른 채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수형인명부에는 2530명의 명단이 올라 있으며, 상당수가 행방불명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18명은 1948∼1949년 내란죄 등 누명을 쓰고 징역 1년에서 최대 20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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