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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0주기 맞은 고암 이응노 화백…특별 기획 전시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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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5 15:23:59 수정 : 2019-01-15 17: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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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필묵을 서양화에 접목해 독자적 화풍을 구축했다. 추상미술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술계에 등단한 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장장 65년간 도전과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에 대한 얘기다. 지난 10일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 고암이 별세한 지 꼭 30년이 됐다.

서예를 배우며 화가의 꿈을 키운 그는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해 미술계에 발을 들였다. 193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화와 서양화를 배웠다. 1945년 광복 무렵 귀국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고암 이응노 화백의 생전 모습. 이응노미술관 제공

중년에 접어든 1958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세계미술평론가협회 프랑스 지부장의 도불 초청을 받은 것. 2년 뒤 그렇게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유럽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작품세계도 확장된다. 1970년대 ‘문자추상’이란 예술적 실험에 나선다. 한글과 한자가 가진 추상적 패턴에 주목해 추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군상’ 시리즈에 천착한다. 1980년대 들어 붓놀림을 통해 수백 수천의 군중을 제각각 형상화한 특유의 생동감이 두드러진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암은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은 게 대표적이다. 6·25전쟁 때 월북한 양아들을 만나러 독일 동베를린에 갔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2년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모진 풍파도 고암의 예술혼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감옥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간장과 된장으로 화장지에 데생을 하는가 하면, 밥풀과 종이를 짓이겨 조각을 만들었다.

1969년 석방돼 프랑스로 돌아간 뒤 1989년 1월10일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고암은 파리를 근거지로 두고 ‘한류’ 전파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64년 파리의 세르뉘시 미술관 관장과 함께 미술관에 ‘파리동양미술학교’를 만들어 프랑스인들에게 한국화와 서예를 가르쳤다. 1976년에는 이 학교 학생들의 작품 발표를 위해 ‘고려화랑’을 개관했다.

이처럼 한국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고암의 30주기를 맞아 다채로운 전시회가 열린다. 대전에 위치한 이응노미술관은 오는 18일부터 3월24일까지 ‘2019 이응노미술관 소장품 특별전’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관의 소장품 중 엄선된 15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고암의 대표작들로 그의 작품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한편, 그간 상대적으로 널리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한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대표작 군상 시리즈의 1986년 작품. 종이에 먹으로 그린 이 그림의 특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각각 다른 동작이 지닌 생동감에 있다. 이응노미술관 제공

이 중 ‘군상’ 시리즈의 1986년 작품은 같은 듯 다른 군중이 빽빽하게 들어차 역동성을 더한다. 저마다 어디론가 뛰거나 춤추는 듯한 몸짓이 살아 움직여 화폭을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은 “고암은 서예에서 출발해 프랑스에서 현대 화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며 “우리 전통을 현대화로 승화시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관장은 “특히 작가로서 올곧은 시대정신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작업량이 굉장히 많으면서도 작품의 변화, 즉 작가로서의 실험을 끊임없이 이뤄냈다”고 덧붙였다.

가나문화재단과 인사아트센터도 16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원초적 조형 본능’이란 추모 전시회를 연다.

최근 아이돌 ‘방탄소년단(BTS)’ 열풍 등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고암에 대한 세계적 관심 또한 확대되고 있다. 어쩌면 고암이 50여년 전 한국 문화 불모지에 뿌린 씨앗이 이제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 연보

1904년 / 충남 홍성군 출생

1924년 /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1935∼1938년 /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 동양화과 등 수학

1960년 / 프랑스 파리에 정착. 폴 파케티 갤러리와 전속 계약

1964년 / 파리 세르뉘시 미술관에 파리동양미술학교 공동 설립

1965년 / 제8회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1967년 / 동백림 사건으로 2년6개월간 옥고

1989년 1월10일 /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별세

2007년 / 대전 이응노미술관 개관

2012년 / 대전고암미술문화재단 출범

자료 : 이응노미술관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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