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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이 식상한 젊은 세대… 낡고 거친 ‘갬성’에 빠지다 [S스토리]

‘오래된 새로움’이 좋다… 떠오로는 ‘뉴트로’

관련이슈 :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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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2 12:00:00      수정 : 2019-01-12 15:56:40
“혹시나 찾아봤더니 역시나 있더라고요.”

충북에 사는 직장인 김모(44)씨는 얼마 전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 창고와 찬장을 구석구석 뒤졌다. 지인으로부터 1980∼90년대 음료업체들이 내놓은 ‘빈티지 컵’이 젊은 세대에서 인기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다. “돈이 된다”는 말에 유년 시절 슈퍼마켓을 하시던 부모님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업체들이 컵을 사은품으로 주는 문화가 있어서 한가득 쌓여 있었던 게 기억났어요.”
대학원생 최슬아씨가 그간 모은 빈티지 컵들. 그는 “옛날 로고가 적힌 컵에 따라 마시면 맛이 더 완성되고 만족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출처=최씨 제공
그렇게 먼지와 한참을 씨름한 그는 찬장 구석에서 빛바랜 종이 상자에 담긴 컵 20여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김씨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컵 사진을 올렸더니 금세 다 동났다”며 “솔직히 이게 왜 인기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멋쩍어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디자인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최슬아(32·여)씨는 “촌스럽지만 이상하게 멋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취미로 하나둘 빈티지 컵을 모을 때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과 영상을 올리곤 한다. 그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이 요즘 시대의 감성”이라며 “종이컵에 먹어도 맛은 똑같겠지만 뭔가 옛날 로고가 적힌 컵에 먹으면 맛이 더 완성되고 만족스러운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친구들을 집으로 부를 때면 꼭 우유는 우유 로고가 적힌 컵에, 커피는 커피 로고가 적힌 컵에 대접한다.
젊은 세대에서 빈티지 컵 등 오래된 골동품을 수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공유하는 모습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출처=인스타그램
“다들 신기해하고 ‘우리 집에도 있었던 것 같아’ 하면서 자연스레 어렸을 적 이야기들로 이어져요. 그런 게 좋은 거예요. 사실 생각해보면 직접 (컵들을) 썼던 기억이 커서 애착이 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88년생들이 ‘88올림픽’ 굿즈에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한 심리 아닐까요.”

‘오래된 새로움.’ 최근 젊은 세대의 문화·소비 트렌드에 ‘복고(復古)’가 떠오르고 있다. 오래된 철물점과 목욕탕, 공장이 카페로 변신해 인기를 끌고, 중장년층이 어렸을 때나 쓰던 고물들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복고 현상이야 과거에도 종종 있었지만 최근 이를 주로 소비하는 주체가 10·20대라는 점에서 기존의 그것과 다르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새로운 형태의 복고, 이른바 ‘뉴트로’(새롭다는 의미의 ‘뉴’와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의 합성어)라고 이름 짓고 올해 문화·소비를 이끌 키워드로 꼽고 있다.
최근 나온 영화를 과거 유행했던 영화 포스터처럼 재해석해 만든 포스터들. 출처=사우스빅
◆뉴트로, 복고의 현대적 재해석

11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뉴트로’의 핵심은 젊은 감각으로의 재해석이다. 완전히 과거의 것으로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분위기를 적절히 섞어 색다른 감성을 즐기는 것이다. 70∼90년대를 아예 겪어보지 못한 10·20대나 희미하게만 기억하는 30대 등이 주 소비층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드러나는 모습이 ‘복고’이긴 하나 그 이면에 ‘향수’나 ‘추억’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미학적 측면’에서 인기를 모으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뉴트로 현상을 2019년 트렌드로 꼽으면서 ‘단순히 과거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닌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을 건드리는 트렌드가 반영돼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부러 1980∼90년대 복고풍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영상 화질을 낮추는 등의 레트로 스타일 영상물 제작법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출처=비됴클래스
오래된 복덕방이나 영화 포스터, 인쇄물에나 나올 법한 복고풍 글씨체 폰트도 속속 나오고 있다. 출처=산돌 커뮤니케이션
지난해 뉴트로 현상을 처음 주목한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는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시대에 둘러쌓여 살아온 세대들이 뭔가 투박하고 아날로그한 것들에 끌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장년층에게 ‘앤틱’이라면 유럽산 가구 등을 떠올리지만 젊은 층은 한국의 과거에서 그 모습을 찾고 있다”며 “고풍스러운 취향의 일종으로 소비되는 점도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90년대 이후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세련화’에 대한 일종의 염증이 영향을 미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요즘 디자인에서는 보기 힘든 ‘모자람’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고도 성장 이후 촌스럽고 어설픈 것들은 급격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며 “완벽하게 만들어 놓지 않은 것들을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최근의 라이프스타일, 즉 ‘모자람이 주는 충족감’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없어서 못 구해” 대접받는 고물들

오래된 것들이 ‘힙한 것’의 동의어로 쓰이면서 쓸모 없게 여겨지던 고물들도 각광받고 있다. 청년들의 ‘갬성’(개인화된 감성이나 감성 과잉을 뜻하는 신조어)을 공략하는 카페 등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고물들을 찾아 방방곡곡 돌아다니기도 한다. 고물 특성상 발품만 잘 팔면 저렴한 비용으로도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올해 복합문화공간 창업을 준비 중인 직장인 이모(30)씨는 “창업을 전제로 요즘 유행하는 살롱 등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곳들을 여럿 가봤는데 대부분 복고풍 소품을 활용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온라인에는 ‘빈티지 쇼핑몰’, ‘온라인 골동품점’도 여럿 등장했다. 올라와 있는 상품이 과거 일상적으로 쓰던 것이 대부분이지만 가격이 만만치는 않다. 한 쇼핑몰은 접이식 철제 의자를 10만∼15만원에, 자개장과 선반을 30만∼40만원에 판매 중이지만 대부분 ‘품절’된 지 오래다.
고물상점을 컨셉으로 내세운 대전 ‘날다방’ 카페의 모습. 25년 동안 골동품을 모아온 정형호씨는 “손님들 반응이 좋다”며 “누군가에게 고물인 것이 누군가에겐 또 보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날다방 제공
대전에서 고물상점 콘셉트의 카페 ‘날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정형호(56)씨는 “25년 동안 취미로 모은 골동품들로 카페 인테리어를 꾸며봤는데 SNS에 입소문을 타는 등 반응이 좋다”며 “(골동품들이) 이제는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가치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때로 만들어진 ‘때깔’이 주는 느낌은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렵다”며 “골동품 중 비싼 것은 수백만원이 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대중문화 전반 확산 “잠깐 유행 아닐 것”

요즘 유행하는 글씨체만 보더라도 뉴트로 현상이 실감된다. 산돌 커뮤니케이션은 2014년 격동고딕체와 단팥빵체를 시작으로 개화체, 별표고무체, 격동굴림체, 시네마극장체, 프레스체, 청류체 등 복고풍 폰트를 매년 선보이고 있다. 모두 옛날 복덕방 간판이나 영화 포스터, 잡지 등에서 착안한 것들이다. 다른 곳에서 내놓은 대한늬우스체, 장미다방체, 옛날목욕탕체 등 이름부터 시대를 연상케 하는 폰트들도 인기가 높다.

식품 업계도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삼양식품은 1972년 처음 선보인 ‘별뽀빠이’ 한정판을 내놓았고, 롯데제과는 새로 출시한 ‘치토스 콘스프맛’에 90년대 포장 디자인을 그대로 적용했다. 오리온의 ‘태양의 맛 썬 오리지널’은 재출시 한 달 만에 200만봉이 팔렸다. ‘아침햇살’ 출시 20주년 기념 빈티지 컵을 내놓은 웅진식품 관계자는 “당초 1000명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한 차례 더 했다”고 전했다. 가전제품이나 의류, 운동화 업계에서도 80∼90년대 디자인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는 일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윤상철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옛것이냐 새것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독특함과 오리지널한 느낌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풍요와 다양성이 특징이 된 현대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아주 새로운 것을 접하기 어려워진 점이 뉴트로가 떠오르는 배경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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