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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칼럼] “참, 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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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06 20:56:14 수정 : 2019-01-06 20: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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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사회 악순환 앞에서 / 최고 가치가 된 외모지상주의 /아름다운 포장 뒤로 숨기보단 / 자존의 향기 피어오르게 해야 초고령사회로 들어가는 초입에 서 있기 때문일까. 요즘 우리 사회에는 ‘동안(童顔)’바람이 불고 있다. 어쩌면 신년모임이니 하는 게 많아 그렇게 느끼는 것인가. 누군가 인사한다. “참 젊어지셨습니다.” 나는 쑥스럽지만 답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안 늙으셨네요.” “너무나 젊으세요, 원래 동안이시니까” “감사합니다.”

제자를 만났다. 20년 만에 만나는 제자이다. 꽃을 한 다발 들고 왔다. 제자도 한결같이 말한다. “그대로이시네요, 정말 안 늙으셨어요.” 나도 질세라 대답한다. “미희도 하나도 안 늙었네, 모두 동안이네.” 우리는 제자건 선생이건 “감사합니다”와 “동안이네”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가 생각하게 된다. 정말 내가 젊어졌나. 말도 안 되지. 작년보다 한 해가 더 지났는데 어찌 더 젊어질 수가 있을까 하다가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나의 대답에 의미를 두기 시작한다.

그런데 또 고맙다니, 그건 또 무슨 요령부득의 대답인가. ‘동안’이라는 말이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일견 ‘철없는’ 아이 같은 얼굴을 말한다면 제자들은 또 새해 아침에 만난 이들은 내가 철이 없다고 말하는 셈인데, 그걸 또 고맙다고 대답하니, 우리 사회는 철없는 사람의 집단이 되는 게 아닌가. 초고령사회가 아니라 철없는 사회라고나 할까. ‘철없는’을 순수함의 의미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사회 각계의 ‘철없음’의 소모적 논쟁들, 깊은 생각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게 분명한 즉각적인 반응들. 철없는 사회는 다른 말로 하면 ‘~다움’이 결핍된 사회일 것이다. 어른은 어른다운, 젊은이는 젊은이다운. 아무튼 너도나도 젊다.

그런데 초고령사회로 들어가는 우리 사회에 왜 이런, ‘동안’이니 하는 의미 없는 말이 난무하는 것일까. 아무리 기분이 좋은 인사라 할지라도 이 ‘동안’이라는 말이 지니는 사회적 함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하기는 서양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클레오파트라는 ‘동안’을 위해 오늘의 보톡스와 같은 효과를 지니는 뱀독을, 마리앙투아네트는 태반을, 또 동양 최고의 미인 양귀비는 아기소변을 사용했다지만. ‘동안’의 사회적 함의는 외모지상주의의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노안(老顔)의 동안화(童顔化)는 인체의 온갖 부위에 칼을 대게 하고 있다. 면접을 위해 성형외과가 붐빈다니, 하긴 학자에 따라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이 다르긴 하지만 가야시대에도 자그맣고 동그란 얼굴을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돌로 이마를 눌렀다지만, 문명의 극치를 보여주는 21세기에 우리 사회는 고대 가야시대로 회귀하는 것인가. 외모지상주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최고의 가치가 됐다. 온갖 ‘동안’을 위한 주사약들, 행위들과 의심들의 행진, 그럼에도 ‘동안’은 너도나도 우선하는 가치가 됐으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

외모지상주의는 과시의 문화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 ‘과시’의 토대를 따진다면 여러 논점이 열거될 수 있겠지만, 특히 그 심리적 토대에는 자존감, 자긍심이 결핍됐다는 결론에 귀착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나’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긍심 결핍의 토대에는 또한 비교, 즉 ‘나’가 주체가 아닌 타자와의 비교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타자와 나는 항상 비교되면서 타자는 ‘나’보다 항상 우월하다. 그는 비교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예속된 그는 늘 비교를 당한다. 비교의 악순환이다. 우리 교육의 기본적인 원칙은 서열을 정하는 것이다. 상대평가가 그 서열의 무기이며 그 서열은 직장에까지, 나아가 인생에까지 관여한다.

수동적 인간이 많은 경쟁의 사회. 경쟁은 무한한 비교를 낳고 비교는 또다시 끊임없는 경쟁을 낳는다. 그 무한경쟁의 악순환 앞에서 자긍심은 존재할 자리가 없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동안’의 부정적 측면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철없는 사회’는 ‘동안’의 사전적 뜻대로 ‘순수한 철없음’의 뜻이 돼 이 사회의 곳곳에서 자존의 향기를 피어오르게 해야 할 것이다. 셀프 사진기로 자기를 아름답게 포장한 ‘동안’ 뒤에 숨으려 하지 말고.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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