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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1일 해고됐습니다”…새해부터 또 시작된 비정규직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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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03 07:30:00 수정 : 2019-01-03 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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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풀리지 않는 비정규직 문제①] 사례 분석
“(지난해) 12월 31일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천 부평에 위치한 한국지엠(GM) 공장에서 6년간 차체 용접 일을 하던 비정규직 이모씨는 새해 들어 실직자가 됐다. 얼마 전 용접업무를 맡은 하청업체가 바뀌었고 해당 업체가 이씨에 대한 고용승계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GM 측은 2교대로 돌아가던 공장을 1교대 업무로 전환했고 하청업체는 남는 인력에 대해 ‘무급 휴직’을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해고됐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비정규직에게 ‘무급 휴직’은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었다. 이씨와 같은 부평공장 하청업체 직원 13명과 인천항에 위치한 한국GM 자동차 반조립 부품(KD)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70여명은 지난달 31일자부로 해고 조치됐다.

이씨는 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김용균하고 (우리) 하청노동자하고 비슷하다”며 “계속 인원은 줄이고 노동 강도는 높아지고 회사가 약간만 어려워져 잘라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기업부터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그다음은 민간기업으로 넘어와야 하는데 공기업도 제대로 안 되고 있고 민간기업에서는 전혀 느껴지는 게 없다”고 막막해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유품. 시민대책위 제공.
◆ 새해와 함께 ‘해고’ 통보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번 정부의 제 1공약으로 ‘비정규직 제로화’를 내세우고 있고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가 숨지며 ‘비정규직 문제’가 새해 화두로 떠올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새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내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선언한 공공기관에선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정규직 전환을 압박받는 사기업에선 이를 피해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편법이 횡횡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화성에서 비정규직 학교 상담사로 일하던 김화민(42)씨도 지난해 12월 31일자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화성시 소속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2016년부터 시의 민간위탁사 소속으로 옮겨 학교 상담 일을 해왔다. 업무를 시작한지 3년차가 돼 ‘무기계약직’ 전환 얘기가 나왔지만 전환할 여력이 없던 시는 이날 사업 종료를 선언했다. 김씨는 이런 갑작스런 해고에 대해 비정규직 학교 상담사의 정규직 전환에 시와 교육청이 부담을 느낀 결과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시에서 지난해 10월쯤 ‘10개월로 쪼개기 근무를 하면 계속 일을 하게 해주겠다’ , ‘2년간 계약하고 2020년 이후 고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각서를 쓰면 (사업을 연장) 해 주겠다’라고 제안했다”며 “우리가 납득하기 힘들어하자 결국 올해부터 사업이 종료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낮은 처우에도 (학생을) 상담한다는 사명감으로 위안을 삼으며 해왔다”며 “대통령의 비정규직 없앤다는 얘기가 (정규직 전환을 안 시키려는) 편법을 만들어 내고 변질돼 어떻게 보면 더 해고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기대 부풀었지만 현실은?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도 난항을 겪고 있다. 2017년 5월 문 대통령은 당선 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그해 12월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사는 비정규직 1만명의 정규직 전환도 합의했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 끝에 결국 직접고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공사는 지난해까지 정규직 전환대상인 용역·파견노동자 9785명 중 2700여명을 임시 자회사인 ‘인천공항운영관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 고용했다.

임시 자회사 형태로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정규직 전환 후 임금, 복지, 임금체계 등 나아진 게 없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는 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임금, 복지수준 등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게 없다”며 “처우개선을 들어 정규직 전환자는 ‘0명’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년 마다 평가를 통해 근속 임금이 정해지게 됐고 3000명이상으로 추정되는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는 다시 경쟁 채용을 하겠다는 내용이 전달돼 그들은 오히려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비정규직 인원 5만 9470명 중 3만 2500명(54.7%)은 이처럼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전환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다른 공사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에서 5년간 순찰업무를 한 이모씨는 이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지난해 3월 용역업체 소속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씨는 2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전환되고 다들 좋아했지만 첫 봉급을 타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5년 전 160만원대로 받았던 월급은 140만원대로 20~30만원가량 줄었고 용역시절 나오던 교통비, 식비 등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성과급도 개인별로 차등화해서 본사직원과 차이가 상당하다”며 “용역시절 1년에 한번씩 단기계약금식으로 받았던 것은 없어져 경제 상황은 더 나빠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와 함께 일하는 33명과 전국으로 보면 190여명 가량이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지엠(GM) 부평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이 지난해 7월 사측에 해고자 복직과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 정부 비정규직 제로 선언했지만 5년간 꾸준히 증가 중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최근 5년간 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14년(8월 기준) 612만 3000명이었던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2015년 630만 8000명, 2016년 648만 1000명, 2017년 657만 8000명, 지난해 661만 4000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전체 임금근로자 대비 비중도 2014년 32.2%에서 지난해 33%로 증가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중 한명으로 비정규직을 대변하고 있는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2일 통화에서 “새 정부 들어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가 컸지만 진전이 없었다”며 “여전히 우리나라 비정규직 수가 1100만명(노조측 추정)에 달하고 이들은 일상적인 고용불안, 임금차별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지회장은 이어 “이런 구조로는 함께 잘사는 사회는 머나먼 얘기일 수밖에 없다”며 “고 김용균씨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한 업무에 내몰리고 있고 불법파견도 횡횡하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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