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정이 이러니 산업계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를 떠받쳐 온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철강 등 주력업종 대부분에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간판기업들조차 새해 경영계획 때 외형성장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여념이 없다. 장기불황에 시달려 온 해운·조선업계는 이미 생존을 위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24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현대차, SK, LG, 롯데 등 주요 그룹은 내년에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것에 대비해 내실 위주의 경영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비교적 선방했던 업종은 내년 영업이익 예상치를 낮추거나 단기 설비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 올해 실적이 부진했던 업종은 내년 수익성 회복과 실적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주 글로벌전략회의를 통해 ‘악화된 경영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둔화에 따른 대응과 중국 내 스마트폰 사업 실적 부진 등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는 세계 경제의 침체기 진입,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과 금리인상 등 대외여건이 어려운 데다 글로벌 시장의 경쟁 격화, 그나마 선방했던 반도체 시황의 악화 등으로 경영환경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까지 꺾이면 성장동력이 막히는 상황이어서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계획을 축소해서 짤 수밖에 없다”면서 “영업이익 예상치를 줄이거나 내년 설비투자 등의 계획이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미국과 중국 등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두 곳이 침체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돼 내년 정보기술(IT) 산업 전망은 밝지 않다”고 분석했다. 위 교수는 그러면서 “반도체의 경우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스마트폰은 제조사 경쟁이 치열하고, 교체주기도 길어지는 추세”라며 “‘갤럭시S10’에서 엄청난 혁신이 나오거나 폴더블폰이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도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업계는 초비상이 걸렸다. 올해 미·중 무역전쟁과 환율 하락 등 악재가 꼬리를 문 데 이어 내년에는 경기침체에 따른 내수부진까지 가세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내년 예상 국내 차 판매량은 179만대로 전년 대비 1.0%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해외 차 판매량도 정체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차 업계는 내년 수익성 개선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이에 따라 내년 해외시장에서 △실적 및 수익성 회복 △구조적 혁신 및 민첩성 제고 △미래 사업 실행력 강화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내년을 ‘V자 회복’의 원년으로 삼고, 미국과 중국 등 핵심시장 중심으로 판매 및 수익성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 전 세계에 권역본부 설립을 완료하고 진정한 권역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권역별 신속하고 자율적인 의사결정과 생산·판매·상품마케팅의 유기적인 협업 시스템을 통해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적기 대응하고 판매 확대와 수익 개선을 도모하기로 했다.
◆철강·조선 등도 우울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와 건설·자동차 등 전방산업 침체의 이중고 속에서 한 해를 보낸 철강업계는 내년에도 업황이 나빠질 것이란 전망에 우울한 분위기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국내 철강 생산량은 약 7648만t으로 올해(약 7551만t)보다 1.2%가량 증가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세계 철강 시장은 연 1% 미만의 수요 저성장 및 공급과잉 이슈 지속으로 철강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국내 철강 시장 또한 자동차, 건설 등 수요산업 침체로 수요 부진이 예상되고, 조강 능력은 유지돼 성장 정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포스코는 이에 따라 핵심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래 먹거리 발굴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조선업계 빅3도 좀처럼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인원 감축과 조직 개편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도 사정이 비슷하다.

새해를 맞는 건설업계도 걱정이 태산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시작된 건설 경기의 위축이 내년엔 본격적인 경착륙에 돌입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불황 극복을 위해 해외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A건설사 관계자는 “국내는 주택시장이 각종 규제랑 사업성 등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열쇠는 해외에 있다”면서 “국내 경기는 업앤다운이 있고, 결국 해외 쪽에서 활로를 개척해야 할 거 같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정책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B건설사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올해와 유사하겠으나 금리인상 등 쉬운 여건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해외 쪽에서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유통업계도 침체된 내수시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롯데는 유통부문에 있어서 ‘e커머스’ 역량을 업계 1위 수준으로 올리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롯데는 이를 위해 지난 8월 각 사별 온라인 조직과 롯데닷컴을 통합한 ‘롯데e커머스 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수익 저하에 시달리고 있는 신세계그룹도 고민이 커지고 있다. 그룹관계자는 “수익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서 “경영진이 워크숍과 임원회의 등을 하며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고 전했다.
이천종 기자, 재계팀 종합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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