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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자신(自身), 자신(自信), 자신(自新), 자신(自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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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7 21:10:05 수정 : 2018-12-26 16: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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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삶을 완성시키는 수양체/스스로에 대한 굳은 믿음 갖고/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정진/여정의 끝은 ‘내가 주인되는 神’ 동양학에서 ‘몸’을 말할 때 한문으로 ‘신(身)’ 자를 주로 쓴다. 몸 신 자는 흔히 남을 지칭하는 ‘대상으로서의 육체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몸’을 말한다. 수신(修身), 수양(修養)이라고 말할 때는 바로 ‘삶의 몸’을 말한다. 그래서 객관성을 중시하는 서양의 철학과는 달리 동양의 도학(道學)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불문율로 요구한다. 또 반구제신(反求諸身: 스스로를 돌아보아 반성한다)의 자세를 갖도록 독려한다.

유교에서 ‘수신평천하(修身平天下)’를 말하거나 불교에서 삼신(三身: 法身, 補身, 應身)을 말할 때 ‘몸 신’ 자를 쓰는 이유는 몸을 대상(타자)으로 보기보다는 삶을 완성시키는 수양체로 보기 때문이다. ‘몸 신’ 자의 상형은 ‘여성이 아이를 밴 모습’이다. 동양에서의 몸은 바로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 ‘몸=육체, 마음=정신’으로 보는 서양의 이분법과는 다르다. 사람의 삶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존재는 자신(自身)의 몸(身)이다. 몸이 없으면 세계도 무의미해진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원시고대문화를 보면 의식주를 제외하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인류는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에서 출발했다. 어쩌면 세계에 대한 믿음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근대적 인간이 세계에 대한 회의와 의심으로 가득 찬 것과 대조적이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은 믿을 신(信) 자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木金火水土) 중 토(土)로 본다. 신토불이(身土不二)가 그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하다. 믿을 신(信: 人+言) 자에 말씀 언(言) 자가 들어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믿음은 말과 깊은 관련성 속에 있다. 말은 무엇을 지칭(지시)하거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삶을 상징적·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다.

몸을 가진 ‘자신(自身)으로서의 인간’은 믿음을 가지는 ‘자신(自信)으로서의 인간’으로 변모를 거듭했다. 믿음의 인간은 하늘과 땅과 인간(조상)에 대한 제사·의례(儀禮)를 통해 자신의 마음과 자신이 소속한 집단을 다스렸다. 오늘날 실존주의는 인간을 ‘불안의 존재’라고 하지만 옛 사람들은 불안을 믿음과 제사로 다스렸다. 오늘날 각 종교는 이를 계승하고 있다.

문자와 글과 책으로 이루어진 인류문화는 ‘삶의 방식(제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 문화의 정체성과 그것을 지키려는 보수성을 뜻하기도 한다. 문화(文化)는 본래 변화(化)를 내포하고 있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몸은 항상 신진대사(新陳代謝)를 통해 생명을 지속하지만 한번 형성된 인간의 생각과 문화는 동일성(고정관념)을 유지하려 한다.

인간의 문화도 중력(타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구세대의 갈등도 생긴다. 신진대사의 대사(代謝)의 ‘사(謝=言+身+寸)’ 자에 말씀 언(言) 자와 몸 신(身) 자와 마디 촌(寸) 자가 들어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신진대사는 생명을 가진 몸의 총체적인 요구이며, 여러 마디(리듬)로 이루어져 있음을 뜻한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 몸인 것처럼 인류의 문화도 날마다 새롭게 생성해가는 ‘자신(自新)으로서의 인간’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앞의 세 가지 ‘자신’은 ‘자신(自神)’에서 화룡점정을 찍어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세계의 주인이 되는 자신(自神)에 이르려면 나머지 ‘자신’의 의미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 몸(身)과 신(神)은 순환가역관계에 있는, 동거(同居)하는 실체이다. 자신(自神)의 신은 내 몸에 살아 있는 신이요, 내가 주인이 되는 신이요, 내가 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이다. 자기 몸(身)에 대한 믿음(信)과 새로움(新)이 없으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신(自神)은 ‘세계에 대한 대긍정’이다.

한자로 ‘자(自)’ 자는 ‘스스로’를 뜻하지만, 부사로 읽으면 ‘∼으로부터’가 된다. 그렇게 보면 자신(自身)은 ‘몸으로부터’, 자신(自信)은 ‘믿음으로부터’, 자신(自新)은 ‘새로움으로부터’, 자신(自神)은 ‘신으로부터’가 된다. 말하자면 ‘자(自)’는 도리어 ‘다른 것으로부터’라는 이중적 의미가 된다. 세계는 모두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아니다. 이를 모두 포괄하는 말이 자연(自然)이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새로운 철학과 종교, 과학이 탄생하는 것도 자연의 순리이다. 기존의 텍스트(고전과 성경)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시대에 적응하기도 하지만 간혹 전면적인 혁신이나 개혁과 혁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근대의 종교개혁이나 산업혁명은 그 좋은 예이다. 신을 섬기던 인간이 현대과학문명의 건설과 더불어 인간신(人間神)이 되려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이때에 본래존재로서의 인간, 즉 신인간(神人間)을 환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과 세계와 사물에 신(神) 자를 다시 접두어로 붙이려면 우선 신을 심정적(‘심정의 신’)으로 공감하는 신인간이 돼야 한다. 자신(自神)은 신인간(神人間)과 동의어이다. 모든 공부는 ‘자신(自身, 自信, 自新, 自神)’의 노정에 있다. 내가 ‘세계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질 때에 부모노릇과 스승노릇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자신의 삶도 완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신’은 남에게 군림하는 남성성의 초월적인 신이 아니라, 남과 심정을 공유하는 여성성의 내재적 신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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