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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정규직, 중소기업→대기업…계층이동 사다리 무너져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입력 : 2018-12-14 06:00:00 수정 : 2018-12-14 08: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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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24세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난 11일 새벽 석탄 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고인이 된 김씨는 발전소 현장설비 하청업체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석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2인 1조 근무가 원칙인데도 혼자 어둠 속에서 야간 근무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정비용역업체 비정규직 김모(당시 19세)군이 숨진 사고와 유사합니다.

당시 입사 7개월밖에 안 된 김군은 2인 1조 근무 매뉴얼과 달리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제주시의 한 음료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졸업반 이모군이 나홀로 근무를 하다 제품 적재기에 끼여 숨졌습니다.

통계청 발표기준 8월 현재 임금노동자의 33%에 달하는 661만4000명이 비정규직입니다. 새 정부 출범 후 문재인 대통령의 첫 업무지시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였지만, 현장에선 진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되풀이되는 사고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비용절감과 구조조정을 내세워 안전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기고, 최저가에 낙찰한 하청업체가 비정규직을 쥐어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특히 사고부터 철저히 원인을 밝혀 원청·하청업체 가릴 것 없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구의역 참사 때도 원청과 하청의 책임 떠넘기기 식의 촌극을 보며 국민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물론 고용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무조건적인 정규직화는 어렵다'는 기업 현장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대다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주체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라는 현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젠 전면적으로 비정규직을 보듬어야 할 때입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임금 차별을 해소해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실현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작업장 안전 강화 역시 최우선 과제입니다. 특히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한 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외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김모(24)씨의 빈소가 차려진 충남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는 12일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이날 오전 마련된 빈소엔 전날 야근을 하고 퇴근한 직장동료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정치인들의 발길도 이어졌습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전 일찍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김씨 직장동료와 노조 관계자들을 만나 사고 경위를 들었습니다. 이어 재발방지책과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을 놓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오후에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조규선 전 서산시장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으며, 송낙문·전재옥 태안군 의원도 조문하고 돌아갔습니다.

고인이 다닌 협력업체 임직원 등은 오전 일찍부터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려 했으나 직장동료 등의 저지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강문대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과 고용노동부 직원들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습니다. 이들은 조문 후 김씨 직장동료와 노조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앞으로의 처리절차 등을 이야기하고,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어려움 등을 청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들이 "형식적인 설명회 등은 필요 없다"며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등 고성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직장동료와 노조 측은 이날 오후 2시 인접한 서부발전 본사를 찾아가 정문 앞에서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씨 부모가 참석해 생전의 아들 모습을 회상하고 "우리 아들 살려내라"고 외치면서 오열해 집회 참석자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김씨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하청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은 고용이 안 됐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서류 내며 반년 이상 헤맸다"며 "대통령께서 고용 책임지겠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나는 우리 아들밖에 보고 살지 않았다. 다른 욕심도 없었는데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고 흐느꼈습니다.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3시20분쯤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운송설비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근무 도중 숨지는 인명사고 반복…'위험의 외주화' 해결돼야

'구의역 사고'가 일어난 지 2년여 만에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가 근무 도중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데 대해 전문가들은 안전 관리를 어렵게 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인명사고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씨가 맡은 업무는 현장 운전원이었습니다. 석탄운송설비 점검 야간 근무 도중 사고를 당했는데요. 2인1조 근무가 원칙인 위험 업무였지만 그의 옆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요구한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사람이 늘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미 태안 화력발전소의 동료들을 정규직 시켜주지 않아도 좋으니 죽이지만 말라고 요구했다"며 "사측은 공장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 시신만 수습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 유족들이 굉장히 화가 나 있다"고 힐난했습니다.

이번 사고는 2016년 5월28일 일어난 '구의역 사고'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 김모(19)군은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 점검에 홀로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만성적 인력부족으로 김군 역시 늘 홀로 여러 건의 작업을 도맡아야만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생명을 앗아간 사고의 근본 이유는 위험 업무의 무분별한 외주화라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하고, 외부자의 업무 수행이다 보니 정규직에 비해 잘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나아가 법 개정을 통해 위험 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실질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착수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인가요?"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히 비정규직으로 머물러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일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향하던 계층이동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박광용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10일 황인도 한은 차장, 전병유 한신대 교수와 함께 발표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 해외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엔 이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박 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중소기업에 취업한 임금 근로자가 1년 후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2004~2005년 3.6%에서 2015~2016년 2.0%로 하락했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15.6%에서 4.9%로 급락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갈수록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고착화된다는 뜻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로 본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심화됐습니다. 1980년대 초 1.1배에 불과하던 대규모사업체(종업원 300인 이상)와 중소업체 임금격차는 2014년 1.7배로 확대됐습니다.

대규모사업체 임금 프리미엄 추정치는 이 기간 중 6.3%에서 46.1%로 급등했습니다. 임금 프리미엄은 근로자의 경력, 학력, 연령 등의 요인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대규모사업체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받는 임금을 의미합니다.

비정규직 임금은 2000년대 중반 정규직의 62%에 불과했으나,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소폭 개선되면서 지난해 70%대로 상승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 노동시장의 분절성이 그만큼 강해졌고, 이에 따른 양극화도 심화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건강한 시장 형성에 치명적이라 서둘러 이를 개선해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면 생산성이 저하되고 소득불균형이 심해져 성장잠재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구조를 개선하려면 산업이나 업종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되도록 하고, 임금과 작업방식을 유연화하는 기능적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박 위원의 주장입니다.

연구팀은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의 사례를 예로 들며 장기간 사회적 논의를 거친 합의에 따라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스웨덴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구하는 연대임금정책 추진으로 임금 불균형을 크게 축소시켰습니다. 네덜란드는 여러 차례의 사회적 협약을 통해 네덜란드식 유연안정성 모델을 정립함으로써 효과를 봤습니다.

연구팀은 "우리도 이런 사례를 참고해 노사정 모두가 참여하여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비정규직법 사각지대' 법의 보호받는 기간제·파견 근로자 감소

최근 정부가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규직 비중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정규직법 사각지대'가 드러났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는 기간제·파견 근로자는 줄어든 반면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용역, 도급 등 기타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박우람·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달 19일 '비정규직 사용 규제가 기업의 고용 결정에 미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KDI 정책 포럼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02년 노사정위원회 합의에 근거하면 비정규직이란 무기계약·전일제를 핵심 요소로 하는 정규직 이외의 모든 고용 형태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지난해 8월 기준 임금근로자의 32.9%가 비정규직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중 기간제가 14.7%, 시간제가 13.4%, 용역이 3.5%, 파견이 0.9% 등입니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07년 7월 비정규직법을 시행했습니다.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통칭하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과 큰 틀에서 가장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에 제한을 두고 차별적 처우를 개선코자 한 것이 골자입니다. 기간제 근로자는 2년 이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돼야 하며, 파견 근로자 역시 2년 초과 근무 시 직접 고용돼야 합니다. 시간제·기간제·파견 근로자에 대한 차등 대우는 노동의 질·강도, 권한 및 책임의 차이 등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만 허용됩니다.

KDI가 한국노동연구원의 1~4차 연도(2005년, 2007년, 2009년, 2011년) 사업체 패널조사 자료를 사용해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기업의 고용 결정에 변화가 있었는지 관찰한 결과, 규제 대상인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고용 비중이 줄고 정규직 비중이 늘었습니다. 다만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용역, 도급 등 기타 비정규직의 비중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법 시행 이전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비중이 여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10%포인트 높은 사업장의 경우 법 시행 이후 정규직 고용 규모가 상대적으로 약 11.5%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기간제·파견직 등 법의 테두리 내에 있는 비정규직의 고용 비중은 53.3% 줄었지만, 기타 비정규직의 고용 규모도 10.1% 함께 증가했습니다.

노조가 있는 경우 이러한 역기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유(有)노조 사업장에선 법 시행 후 기타 비정규직이 16.4% 증가한 반면,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선 6.9%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정규직 증가 효과는 유노조 사업장(8.2% 증가)보다 무노조 사업장(12.6%)에서 더 두드려졌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전환에 더 소극적

노조 유무 자체보다는 이를 포함한 근로 조건의 경직성 정도가 더욱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규모가 크고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운 기업일수록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16년 9월 무작위로 선정된 50인 이상 사업체 1000곳의 최고경영자 및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사용 기간(2년)이 만료된 기간제의 무기계약직·정규직 전환 계획 및 처우 등을 설문조사한 결과, 취업 규칙 및 단체 협약 변경 등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울수록 전환 가능성이 떨어졌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이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박우람 위원은 "사용자가 평가한 근로조건 경직성 등을 통제할 때 노조 유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전환 이후의 처우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면서도 "노조가 있는 대규모 사업체일수록 근로조건 변경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 유무는 근로조건 변경 경직성을 통해 비정규직 수요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KDI는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의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비정규직 수요 자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닌, 근로 조건 자체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박윤수 연구위원은 "그간의 비정규직 정책은 주로 비정규직 사용을 얼마나 규제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사실 동전의 양면인데, 항상 정규직은 다수를 차지하고 정치적 힘도 강하다 보니 비정규직을 얼마나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만 반복돼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법적 규제만으로는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기 어렵고 법의 보호를 받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간 격차를 확대시킬 수 있다"며 "규제만이 항상 모든 해법은 아니다. 규제가 갖는 순기능과 역기능의 크기는 정규직의 유연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남용을 계속해서 규제하되 정책을 양쪽으로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전통적인 노동 유연성의 개념을 '고용'에서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으로 확장해 근로자가 필요로 하는 고용 안정성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 유연성을 균형 있게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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