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강은교칼럼] 영혼이 없는 ‘밥’

관련이슈 강은교 칼럼

입력 : 2018-12-09 20:46:53 수정 : 2018-12-09 20:46:5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도시락에 담겨진 어머니 손길 / 거대해진 학교급식에 사라져 / 비리투성이인 부실한 ‘밥’ 먹고 / 아이들 밥심 낼 수 있을까 걱정 요즘 요란하게 TV화면을 뒤덮는 ‘학교급식’에 관한 뉴스 영상을 보면서 ‘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아련히 한 시절이 떠오른다.

교실의 중앙에는 잿빛 난로 위에 가득 노오란 ‘도시락’이 올라앉아 었었다.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우르르 난로로 달려갔다. 저마다 자기의 ‘도시락’을 찾아 끼리끼리 동그랗게 모여앉아 반찬그릇을 꺼내놓았다. 그때의 ‘도시락’은 얼마나 맛있었던지. 기껏 달걀부침, 멸치볶음, 콩자반이 전부인 도시락이 대세이곤 했지만, 가끔 호박부침이라든가 소고기볶음 같은 반찬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무튼 그 도시락이 주던 묘한 연대(連帶)의 힘은 운동장으로 이어지곤 했다. 운동장 뒤편 단풍나무 길을 친구가 산 크래커라든가 파이 같은 것을 먹으면서 인생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며 걸으면 점심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곤 했다.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

그때 도시락에 담겨 있던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 간을 보는 어머니의 보드라운 손길 등 따뜻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모습은 호박부침에 얹혀 내게 얘기를 건네곤 했다. 넌 멋있는 피아니스트가 돼야지. 아니 과학자. 이걸 먹으면 잘될 거야. ‘도시락’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이어졌다. 그때 처음 생긴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여학생 휴게실에서 먹던 도시락, 대학교에 몸담으면서 나는 연구실에서도 옛날 도시락같이 생긴 스테인리스강 도시락에 계란말이를 싸와 먹곤 했다. 멋있는 시인이 돼야지, 멋있는 교수가 돼야지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도시락이 있던 점심시간이 언제부턴가 변했다. 우리의 사회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과정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영양사가 식단을 짠다지만, 일률적으로 아이의 쟁반에 놓이는 그 점심 먹거리에서 어찌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도시락’의 힘을 찾을 수 있으랴. ‘도시락’ 속에 있는 달걀부침은 그냥 달걀부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눈빛, 따뜻한 손길이 있던 말하자면 ‘꿈부침’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언제부턴가 학교급식 시장이 거대해짐과 비례해 없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런데 더 걱정해야 할 것은 오늘의 학교급식은 이 사회에서 가히 급식문화를 이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보았던 광경을 잊을 수 없다.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 젊은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젊은 엄마는 “얘들아 뭘 먹을래”하고 말했다. 아이들은 제각각 소리쳐 대답했다. “피자요, 치킨요.”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손을 들며 “집밥이요”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엄마는 순간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그날의 저녁식사는 간단히 피자 배달로 해결됐다.

이런 광경도 잊을 수 없는 광경의 하나이다. 꽤 잘산다는 집에 백일잔치 초대를 받았다. 식탁이 아주 예쁘게 차려져 있었다. 어떤 요리연구가가 차린, TV에 나오는 밥상 같았다. 밥도 연잎밥이었다. 식당에서 먹는 그런 연잎밥, 찌개나 국은 없었고. 누군가 찌개와 국을 찾자, 여주인의 조금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요리연구가가 차린 밥상이에요.” 모두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렇게 차리려면 꽤 돈이 들었겠는데요.” 그렇게 화려한 밥상이 그렇게 맛없을 수가 없었다. 돈을 씹는 기분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하긴 좀 비싼 급식이라고 해야 할까. 학교에서,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무수한 급식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집밥’이 먹고 싶다고 하는 시대, 이를 어떤 시대라고 해야 할까 하고. 학교급식이 이제는 ‘집 급식’으로 바뀐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요즘엔 급식시장의 비리투성이인 부실한 ‘밥’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과연 차세대를 힘있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먹는 것이 힘이라는데’라는 걱정까지 든다. 그 밥은 부실할 뿐만 아니라 따뜻한 영혼의 반찬들이 없지 않은가.

감히 이런 제의 아닌 제의를 해본다. 요리연구가가 차린 아름다운 밥상에 영혼의 요리연구가까지 참여할 방안은 없을까 하고. 그러면 우리의 사회는 보다 힘있어지리라고. 놀랍게 따뜻해지리라고.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