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전·현직 직원에 대한 엽기 행각으로 검찰의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장 내 '갑질'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일 양 회장이 실제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터넷기술원그룹 계열사 5곳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10월 양 회장이 과거 사무실에서 전직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자 지난달 5∼30일 특별근로감독을 벌였다. 당초 특별근로감독은 2주동안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부당노동행위 정황이 계속 드러나자 4주로 연장했다.
특별근로감독 결과 폭행, 취업 방해, 임금 체불을 포함한 46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이 적발됐다.
양 회장은 2015년 4월 개별 연봉 협상 과정에서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한 직원에게 콜라가 든 유리컵을 집어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사용자의 노동자 폭행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한다. 피해자는 남성으로, 유리컵에 맞지는 않았으나 이후 퇴사했다.
◆양 회장 갑질 못 이겨 퇴사…동종업계로 이직, 부정적인 말 흘려 결국 새 직장에서도 나와
양 회장은 같은해 12월 다른 직원이 퇴사해 동종 업계 회사에 취업하자 그 직원에 관한 부정적인 말을 그 회사 측에 했다. 회사를 떠난 직원을 음해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 직원은 새 직장에서도 퇴사했다. 이는 매우 죄질이 나쁜 취업 방해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용당국은 보고 있다.
양 회장은 여성 직원에게 직장 내 성희롱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국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으나 "신체적 접촉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이 회사를 방문해 여성 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도 이를 막지 않고 내버려 두기도 했다. 이밖에도 양 회장은 회식 때 직원들에게 생마늘이나 겨자를 강제로 먹이거나 과음과 흡연을 강요하기도 했다. 직원에게 머리 염색을 강요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항목 無…적발해도 사법 처리 불가
연장, 야간, 휴일근로수당 등 모두 4억7000여 만원에 달하는 임금 체불, 서면 근로계약 미체결 등 다수의 노동관계법 위반도 적발됐다.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는 안전보건교육 미실시 18건이 확인됐다.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과정에서 재직자들이 진술을 꺼려 조사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진술은 퇴직자로부터 나왔다.
노동부 관계자는 "직장 문화 자체가 매우 고압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양 회장의 계열사에는 노동조합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양 회장 계열사 5곳은 모두 소규모 사업장으로, 직원이 모두 합해 약 80명이다.

노동부는 양 회장 계열사의 노동관계법 위반 중 폭행, 취업 방해, 임금 체불 등 형사 처벌 대상에 대해서는 보강 수사를 거쳐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직장 내 성희롱, 근로 조건 서면 명시 위반, 안전보건교육 미실시 등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과태료 총액은 1억8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노동부는 추산하고 있다.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과정에서 구치소에 수감 중인 양 회장 본인도 조사했으나 그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앞으로도 양 회장 사례와 같이 직장 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항목이 없어 이를 적발해도 사법 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부는 양 회장의 여성 직원 성희롱을 포함한 직장 내 괴롭힘 여러 건을 적발했다.
◆직장 괴롭힘 방지법 국회 통과 '미적미적'
직장인 10명 중 3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6개월 이상 당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지난달 2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 감정노동자 보호와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지난 10월 노르웨이 버겐 대학의 '세계 따돌림 연구소'에서 개발한 '부정적 경험 설문지'를 이용해 1078명의 직장인을 상대로 설문 조사했다.
업무배제, 따돌림 등 22개 항목 중 주 1회 이상의 빈도로 6개월 이상 경험했을 때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로 분류된다. 조사 결과 피해자로 분류될 수 있는 응답자는 1078명 중 300명으로 27.8%에 달했다.
주로 발생하는 양상은 '나에 대한 가십과 루머가 퍼짐', '인격, 태도, 사생활에 대해 모욕 혹은 불쾌한 발언을 들음', '의견 무시당함', '병가·휴가·여비교통비 등 합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도록 압력을 받음' 등이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국회에서 직장 괴롭힘 방지법이 개념과 정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며 "자유한국당은 사업주들의 주장을 대변하지 말고,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개정안은 처벌규정이 없어 오히려 추가 보완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학적 인사관리로 직장서 퇴출…사측 "직원이 사표냈을 뿐 해고 아냐"
유럽이나 일본 등 해외에선 이미 조례나 관련 법을 만들어 직장내 괴롭힘을 명확하게 규율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 처벌할 법적 대응 방안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와 노동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지난 9월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발의된 7건 관련 법안이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직장 내 괴롭힘은 기술의 발전과 노동 방식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서비스형 산업 구조 확산에 따른 감정노동 종사자 증가로 고객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괴롭힘이 확산되고 있고, 유비쿼터스 노동(시간이나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노동)의 확산으로 근로시간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상시적 업무 지시 문제 등도 괴롭힘의 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사내하청,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비전형근로 확산으로 사업장 내에서 고용 형태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대우 사례들도 잇따르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23조(해고제한) 또는 제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방식으로 가학적 인사관리를 통해 노동자를 직장에서 퇴출 시키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항이 근로기준법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급 인턴,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등은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특별법 제정해 범죄 행위로 규율해야"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입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만드는 방안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산재 유형에 명시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시켜 감정노동 보호의 연장선상에서 체계적 대응을 모색하는 방안, 특별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범죄 행위로 규율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형사처벌 규정들에 나타난 제재 대상과 행위가 명확한 것인지, 직장 내 괴롭힘 처벌이 현실에서 작동할 것인지 등 입법적 대응에 대한 일반적 의문들이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명확하게 규율울 정하고 있으며, 각국의 문화와 근로관계, 노사관계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고용 문제에 있어서는 '고용권리법'을 적용하고,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과 구제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단일법령이나 규정을 개정하기 보다는 현행 '민법', '일반균등대우법', '경영조직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적 문제에 대응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직장 내 우위성에 따라 발생하는 권력형 괴롭힘(파워하라) 이외에도 △성적 괴롭힘(세쿠하라) △모성 괴롭힘(마타하라) △인종 괴롭힘(레이하라) 등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일본정부는 2012년 '직장 내 따돌림·괴롭힘 문제에 관한 원탁회의 워킹그룹'을 설립해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 판단기준 등을 제시하고 이 기준을 통해 예방·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 산업재해보상 및 관련 소송에서 활용하는 등 체계적으로 입법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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