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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한국인의 나이 위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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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5 22:39:26 수정 : 2018-12-05 22: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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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군의 계급, 직장의 직급 등 사회적 위치를 기준으로 종합적으로 평가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나이’가 중요한 기준으로 추가된다. 사회학자들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기 이전 수직적 사회질서를 규율하던 ‘신분’ 대신에 ‘나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본다. 근대 교육제도가 도입되고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동년배가 동시에 학교 입학·수학·졸업, 직장 입사·승진·퇴직하는 일련의 과정이 만들어졌다. 즉 나이가 개인의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본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족 내 서열 기준이었던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원리가 전 사회로 확장됐다.

쌍둥이도 서열을 매기는 가족 내 질서 기준이 사회로 확장되면서 동년배 사이에서도 누가 생일이 빠른지를 따지게 됐다. 한국인은 처음 만나면 대부분 나이를 물어보고 위계를 설정하거나, 여의치 않은 경우는 상대방의 나이를 마냥 궁금해한다. 말할 나위 없이,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이 만나서 맺는 사회적 관계에서 ‘나이’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영어나 현지어로 소통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이 만나 한국어로 소통하며 맺는 사회적 관계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어 ‘친구’는 영어 ‘프렌드’(friend) 중국어 ‘펑요우’(朋友)와 의미가 상통하지만 그 포괄범위는 명백히 다르다. 중국어 ‘펑요우’는 나이 위아래 10년까지를 포괄하고, 영어 ‘프렌드’는 아예 나이 기준이 없다. 한국어의 친구와 선배·후배를 합한 범주는 ‘펑요우’와 포괄범위가 비슷하나 ‘프렌드’보다는 협소하다. 필자가 외국인 대상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조선족 동포의 경우 다른 나라 출신 외국인보다 친구 수가 유독 적은 이유를 찾다가 발견한 사실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동년배로만 ‘친구’ 관계가 형성되는 한국문화를 신기해한다. 상호 관심사가 같고 호감이 있으면 나이와 무관하게 ‘프렌드’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서열을 설정하고, 존비법을 사용하는 문화를 낯설어한다. 존댓말은 상대방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단어와 접미사를 문장에 적절히 배치해야 하고, 반말은 다른 단어와 접미사를 사용해야 하는데, 외국인에게 그것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외국인은 ‘프렌드’나 ‘펑요우’ 사이에서도 존비법이 사용되는 언어 환경이 여전히 어색하다. 그들은 한국어의 존비법이 개인이 점하고 있는 사회적 지위의 상하관계를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장치라는 점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전통사회 가족 내에서 장유유서가 나름의 기능을 했다면 현대사회에서 나이 기준으로 개인 간 서열을 설정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형제자매는 수평적 관계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수평적 관계를 맺은 개인으로 구성되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나이 차별주의’에 따른 사회적 폐해를 없앨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프렌드’보다 매우 협소하게 정의되는 ‘친구’의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권력’이 되기도 하지만 ‘멍에’도 되는 양날의 칼이다. 외국인이라는 사회적 거울을 통해 한국문화를 성찰해본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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