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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추상 경계 넘나들며 들춰낸 기억의 조각들

입력 : 2018-12-01 03:00:00 수정 : 2018-11-30 20: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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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선·하지훈 ‘혼합풍경’전 29일까지 / 전통적 방식 통해 모호한 의식 표현 / 이질적 잔영 발견하고 구체화 시도 구상과 추상, 실재와 부재, 기억과 상상 등 혼합된 경계의 모호함에서 오는 혼란을,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스스로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서촌 더 트리니티 갤러리(대표 박소정)에서 29일까지 선을 보이는 전현선·하지훈의 2인전 ‘Blended Landscape 혼합풍경’ 전이다.

두 작가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전통적인 ‘그리기’ 방식을 통해 혼합된 기억의 풍경들을 표현했다. 작가가 가진 기억의 조각을 캔버스 위로 꺼내어 나열하고 기록하며 해소해나가는 과정을 겹겹이 쌓인 레이어(Layer)를 통해 보여준다. 
전현선의 ‘나란히 걷는 낮과 밤 18’

전현선의 풍경은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부분적으로 수집해서 한 화면 안에 배치·구성하는 형식이다. 화면 속 무심하게 놓인 도형들과 사물들은 기억을 빗대어 표현된 요소들이다. 안과 밖이 서로 교차되어 튕겨 나오고 시공간이 뒤섞인 듯한 혼란스러운 사건의 인과관계가 나열되기도 한다.

작가는 작업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현재의 판단들과 잠정적인 결론들은 순간적이고 번쩍여서, 쉽게 잊혀진다. 흐르는 물 위에 지은 집처럼 불안해서 금방 떠내려가 버리고 만다. 그림 속에서는 그 모든 것이 잠시라도 정착할 수 있다. 이해된 것보다는 이해되지 않은 것들이 받아들여진다. 보류된 확신 또한 그림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리기라는 행위는 작가에게 일종의 메모였던 셈이다.

전현선은 수채화물감과 아크릴미디엄을 혼합하여 캔버스 위에 페인팅한 후 바니시로 마무리하는데, 캔버스에 수채화 물감을 메인으로 사용해 만들어낸 작가만의 고유 터치감은 젊은 나이에도 자신의 총체적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작가는 인물과 풍경 요소를 생략한 채 기본적인 도형의 형태로만 담아내는 새로운 변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서사적 요소가 생략된 채, 이미 그가 즐겨 쓰던 화면 속에서 회자된 도형들이 중심이 되는 연작이다. 
 
하지훈의 ‘gemstone isle 32’

자연을 모티브로 삼은 하지훈의 풍경은 형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아니라 화려한 색감의 붓터치와 덩어리로 이뤄진 풍경이다. 선과 면의 중첩이 만들어낸 하나의 ‘보석’ 또는 ‘빙하의 조각’, ‘섬’과 같이 느껴지는 풍경은 과거에 그가 경험했던 기억의 흔적들을 더듬어가는 행위이다. 배경과 이미지를 구분 짓는 아웃라인을 제외한 덩어리의 표현은 우연한 요소들에 따라 변화한다. 화려한 색채만큼이나 강렬함이 느껴지는 굵직한 선, 기억의 조각들을 퍼내어 올린 듯 나이프로 처리해낸 면, 손으로 화면을 비벼내 뭉개진 또 다른 면들은 각각 속도감과 에너지를 발하며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작가는 말한다. “과거 사건들의 무대이자 배경이었던 풍경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감정과 뒤섞여 의식 속에 모호하게 남는데, 나는 이러한 이질적 잔영과 낯섦을 발견하고 이것을 구체화시키려 한다. 자연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대상의 단편적인 사실이 아닌, 대상의 이면이나 기억과의 연관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림 속 풍경은 개개인의 경험만큼 보일 것이며, 낯섦의 경험과 감정이 가시화된 이미지를 통해 공유되길 바란다.”

전시회를 기획한 최신영 큐레이터는 “두 작가의 2018년 신작 25점과 맞닥뜨리다 보면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기호와 인생관, 삶을 관통해오며 체험한 기억들과 미래에 대한 신념에 의해 다양한 울림을 전달받게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일, 월요일은 휴관하고 관람료는 무료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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