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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 용포 입은 고종, 짧지만 강렬했던 ‘궁중 미술’

입력 : 2018-11-19 21:19:57 수정 : 2018-11-19 21: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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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 展/ 고종, 황권 강화하려는 ‘정치의도’ 담아/ 최초 초상 사진 ‘대한황제 초상’도 전시/ 화려한 금박 사용한 ‘해학반도도’ 출현/ 군복차림 호법신 등장 신원사 ‘신중도’/ 신식 군인으로 호국 하려는 바람 표출 보통 사찰의 법당 좌·우측에는 사천왕을 비롯한 여러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를 모신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신원사’에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신중도가 있다. 보통 장수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여러 신 중 대한제국 군복을 입은 신이 있다는 것. 쪽빛 상의에 태극무늬 선명한 견장, 오얏꽃이 중앙에 수놓인 군모를 쓴 모습이 지난 9월 종영한 tvN 인기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본군에 용감히 맞서던 대한제국군과 닮았다. 신식 군인의 강력한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바람이 담긴 근대기 미술작품의 중요 사례 중 하나다.

지금까지 대한제국 시기 미술은 일제강점기의 시작으로 여겨져 연구와 전시에서 소외된 측면이 컸다. 하지만 이 시기는 새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강해지며, 나아가 난세를 극복하려는 황실의 시도와 그 변화상이 미술에 역동적으로 담긴 때이기도 하다.

황제의 어진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황색 용포와 의장물이 등장한 고종의 어진. 20세기 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시기 미술에 대한 객관적인 조명을 통해 근대미술 역사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전시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를 덕수궁관에서 선보인다.

김규진, 변관식, 안중식, 채용신 등 대한제국 시기 대표작가 36명의 회화, 사진, 자수, 도자, 금속 공예 등 총 200여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으며, ‘대한황제 초상사진’, ‘곽분양행락도’, ‘자수매화병풍’ 등 해외 소장 작품들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1부 ‘제국의 미술’에서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발생한 미술의 변화를 살핀다.

황실의 번영 기원 화려한 채색과 금박을 사용한 ‘해학반도도’. 1902년 추정,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1897년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면서 궁중미술에도 변화가 생겼다. 규범성이 강하고 보수성이 짙은 궁중미술의 특성상 기본적으로는 조선 후기 전통이 지속됐지만, 제국이 된 국가 위상에 맞춰 새로운 양식들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고종 어진’에서는 이전 조선 왕들의 어진과 달리 황제가 된 고종의 지위를 반영해 황색 용포와 의장물이 등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어렵던 당시 상황 속에서 황권을 강화하려는 고종의 의도가 엿보인다.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 중인 ‘해학반도도’는 전통 조선 회화에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채색과 금박을 사용했다. 금분으로 쓰인 제발에서 임인년(1902년) 여름, 황실에 바쳐진 그림임을 알 수 있는데, 대한제국과 황실의 번영을 바라는 의미로 금박을 전면에 활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호법신이 된 대한제국군 대한제국 군인이 호법신으로 등장한 신중도. 1907년, 신원사 소장.
궁중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작품으로 국내 최초 공개되는 ‘곽분양행락도’, 신식 군복 차림의 호법신이 등장하는 ‘신중도’ 등도 1부에서 만날 수 있다.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은 고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 관련 사진으로 채워진다. 1880년대 초 서울 종로(당시 대안동)에 최초의 사진관이 설립된 이래, 어진이나 기록화 같은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을 사진이 대체하게 됐다. 이는 사진이 극사실성을 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법으로서 회화를 보완, 혹은 대체하는 차원으로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상황임을 보여주는 육군 대장복 차림의 ‘순종황제’, 김규진의 첫 고종 사진 ‘대한황제 초상사진’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는 고종, 순종시기 각종 공예품의 양상과 변화를 조명한다.

파리 만국박람회에 등장한 한국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한국관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알린 프랑스 ‘르 프티 저널’. 1900년, 이돈수 소장
고종은 근대화의 하나로 공예부문 개량을 추진했다. 특히 1908년 세워진 ‘한성미술품제작소’는 훗날 성격이 달라졌지만, 시작은 대한제국 황실이 전통 공예 진흥을 위해 설립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당시 공예는 미술공예와 산업공예로 나뉘었는데, 서구와 일본의 공예 개념, 제작기법, 표현방식 등을 수용하면서 변화했다. 대한제국 황실과 운현궁에서 사용하던 도자, 나전칠기, 목공예, 자수 등 각종 공예품 역시 전통적 양식과 외래 양식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고종 이래 강조되던 ‘구본신참’과 연결된다. 대표작으로 문양은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기법은 근대기 도입된 스탠실을 사용한 ‘백자운룡문호’, 김규진이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은 12폭 병풍 ‘자수매화병풍’ 등을 볼 수 있다.

마지막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에서는 과거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원 화가가 예술가적인 성격의 화가로 변모하는 양상을 조명한다.

조선시대 궁중 화가들은 그림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고종, 순종시기 도화서가 해체되면서 궁중회화 제작에 다양한 외부 화가들이 프로젝트 형식으로 참여하게 됐고, 이들은 전문 예술인 대우를 받았다. 이 시기에는 궁중회화임에도 화가가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남긴 작품들이 제작됐다. 풍속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채용신의 ‘벌목도’와 ‘최익현 유배도’, 근대기 사군자화의 대표작가 해강 김규진의 ‘묵죽도’ 등에서 그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때 화가들은 궁중회화를 제작하며 실력을 가다듬고 명성을 쌓았는데, 그 대표적 인물인 안중식, 조석진, 김규진이 ‘서화미술회’와 ‘서화연구회’를 세웠다. 그곳에서 양성된 화가들이 이후 근대 한국화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대한제국이 한국 근대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보여준 궁중미술은 이 시기 미술이 쇠퇴기의 산물이 아닌 변화를 모색했던 치열한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며 “이번 전시는 대한제국 시기가 어떻게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했는지 살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종을 연기한 배우 이승준이 가이드 투어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한다. 이승준의 가이드 투어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계속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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