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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위대한 지성의 삶과 업적

마커스 초운 지음/김항배 감수, 장정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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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7 03:00:00      수정 : 2018-11-16 15:04:45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주와 물질, 시간과 공간의 특성과 구조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일반 대중에게 설명한 유쾌하고 친절한 과학자였다.
‘블랙홀’ ‘루게릭병’ ‘인간승리’, 현 시대의 아이콘이자 가장 유명한 과학자 스티븐 호킹을 이르는 말들이다.

호킹의 타계 직후 영국 BBC가 발간한 책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각 분야 전문가 견해와 사진을 통해 호킹의 삶과 업적, 인간적 면모를 살펴본다. 영국의 과학전문 잡지 ‘뉴사이언티스트’의 우주론 자문위원인 저자 마커스 초운(Marcus Chown)은 극한의 장애를 이겨낸 인간 승리의 전형으로 묘사한다. 호킹은 잘 알려진 대로 아인슈타인 이래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로 꼽힌다. 저자는 블랙홀, 무경계 우주, ‘호킹복사’ 같은 학문적 성과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루게릭병 환자의 삶도 소개한다.

호킹은 194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갈릴레오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300주년이 되는 날이다.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대학 졸업 후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옮겨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지만 1963년 초 병에 걸렸다. 운동신경질환의 일종인 ALS, 일명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이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 선고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호킹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1985년 여름 폐렴에 걸려 기관절개술로 목소리마저 잃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컴퓨터 음성합성기로 의사소통에 성공했다.

1974년 사상 최연소 왕립학회 회원이 되었다. 1978년 이후 영국 과학자로서는 최고 영예이며, 뉴턴이 거쳐간 케임브리지대학 루카시안 석좌교수를 맡았다.

블랙홀에 관한 이론 등 학문적 결실이 집약된 첫 걸작은 ‘시간의 역사’다. 1988년 딸의 학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집필한 대중 과학서이다. 1000만부 이상 팔리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누구보다도 충만하고 알차게 생을 살았던 그는 지난 3월 14일 타계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아이작 뉴턴과 다윈의 곁에 안치되어 영면에 들었다. 76년을 살았다.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유독 주목되는 것은 블랙홀 이론이다. “물질은 시공간의 휘어짐을 결정하고, 휘어진 시공간은 물질의 운동을 결정한다.” 블랙홀은 1915년 11월 아인슈타인이 베를린에서 전 세계에 공표했던 일반상대성이론의 결과물이다. 1990년대 천문학자들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아이슈타인이 밝혀낸 초대질량 블랙홀을 확인했지만, 이에 대한 성질이나 특성은 규명하지 못했다. 거의 모든 은하의 중심에 존재한다는 블랙홀을 이론화한 것은 호킹이었다. 블랙홀 이론은 블랙홀 발견 못지않은 충격을 가져왔다. 블랙홀에 떨어지는 물체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불귀점인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 근처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는 것. 일종의 새로운 창조가 벌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간은 우주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수백억년 우주의 삶과 달리 인간의 수명은 100년 남짓에 불과한 찰나의 순간이다. 100년의 시간 틈바구니 속에서 사람들은 지적 생명체로 우주를 이해하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법칙들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때로 인간은 우주의 실체를 잘못 이해했다. 이른바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는 과정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저 먼 곳의 은하가 점차 눈앞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우주는 계속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과정을 규명한 책이 걸작 ‘시간의 역사’다.

그는 자신의 몸이 자유롭지 않은 것에 실망하지 않았다. 장난기 넘치는 유머를 건네며 우주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시해왔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비가역적인 상태로 넘어가는 임계점에 가까워져 있다”며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인류가 다른 항성에 도달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브레이크스루 이니셔티브’(Breakthrough Initiative)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또한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인공지능(AI)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며, 결국 대체될 수 밖에 없다”면서 일론 머스크 등과 협력하기도 했다.

호킹은 외계인이나 AI의 발명, 통제불능 상태의 컴퓨터 바이러스, 온난화 등 지구촌 현안에 관해 걱정했다. 그러나 인간은 미래의 도전을 극복할 것이라 믿는 낙관주의자였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호킹은 지구를 대표하여 블랙홀 속으로 떠난 과학자다. 그는 우리에게 장구한 시간의 역사를 짧게 알려주었다”면서 “위대한 지성의 짧은 인생에 대한 거대한 기록을 읽을 시간”이라고 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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