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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가 선수를, 선배가 후배를…관행으로 덧칠해진 스포츠계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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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6 10:00:00 수정 : 2018-11-15 18: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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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멍든 체육계①] 끊이지 않는 운동선수 폭행
“나는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중학생 때 선배들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운동을 그만뒀다. 또 다른 친구도 중학교 때 겪은 상습폭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얻어 선수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폭행으로 유망한 선수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배들의 폭행으로 운동선수 생활을 그만뒀다는 대학생 노모(24)는 1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코치가 선수를 폭행하고 선배가 후배를 폭행하는 체육계의 악습이 없어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관행처럼 이뤄지는 체육계 폭행은 근절될 수 없을까. 운동부 코치, 선배 등 폭행 가해자들은 질서를 위해서, 팀워크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피해 운동선수들은 오히려 운동에 흥미를 잃어 기량을 펼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호소한다. 전문가들은 시스템 변화와 조기교육,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이 이뤄져야 체육계에서 행해지는 폭행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심석희 선수를 비롯해 쇼트트랙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가 조사를 받기위해 성남지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코치 폭행에 중학생 제자 숨져…폭행 피해엔 국가대표도 예외 없어

운동부 학생들에게 폭행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 9월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참가한 대전의 한 사립고등학교 야구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합을 주는 과정에서 2학년 한 선수가 1학년 후배의 신장을 손상시켰다. 피해 학생은 소변에서 피가 나오는 등의 증세로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전해졌다.

코치가 중학생 선수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2013년 10월 청주의 한 중학교 검도부 코치 K씨가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자신의 제자를 죽도와 목검으로 때려 숨지게 했다.

국가대표선수라고 예외가 되지 않는다. 지난 1월 평창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해 있던 쇼트트랙 대표 심석희가 선수촌을 갑작스럽게 이탈해 파장이 일었다. 선수촌 이탈 내막엔 조재범 전 코치의 폭행이 있었고, 두 사람은 14년 동안 사제관계로 지내왔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컸다. 조 전 코치는 1월16일 훈련 도중 심석희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2011년부터 2018년 1월까지 4명의 선수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신인 선수 안우진은 올해 신인 중 최대어로 꼽히며 넥센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야구 방망이 등으로 후배들을 집단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 3년간 국가대표 자격정지 징계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폭행 피해 후 운동에 흥미 잃어…전근대적 폭행 관행 근절돼야

실제 체육계 폭행 사건은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문제는 피해 선수들이 폭행을 당한 후 운동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폭력 근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폭력 관련 신고 및 상담 건수는 2011년 100건, 2012년 122건, 2013년 135건, 2014년 151건, 2015년 180건, 2016년 186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또 운동선수 100명 중 9명은 운동 현장에서 신체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지난해 대한체육회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인 ‘2016년 스포츠 폭력·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합숙, 훈련, 시합 등 운동 현장에서 신체폭력을 당한 운동선수가 전체의 8.7%에 달했다.

신체폭력 가해자는 지도자가 29.9%로 가장 많았고, 선배 22.9%, 친구 18.8%, 후배 18.5% 등의 순이었다.

폭력 가해자의 대표적인 명분은 ‘규율이나 팀워크를 위해서’였다. 신체폭력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지도자의 38.5%가 ‘규율 및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 22.7%가 ‘팀워크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신체폭력을 당한 뒤 피해자가 겪은 감정변화인데, 26.8%가 ‘인격적인 모욕감으로 당장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고 답했으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운동이 싫어졌다’고 답한 학생은 33.1%나 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년 전국 중·고등학교 남녀 학생 선수 1139명을 대상으로 벌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조사 대상의 78.8%가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폭력 피해의 영향에 대해선 56.4%가 “운동을 그만두고 싶게 만든다”, 18.4%가 “언젠가는 복수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학생은 20.1%에 그쳤다.

김 의원은 “정신력 강화를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스트레스 해소로 운동선수를 폭행하는 전근대적인 모습이 우리 체육계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때문에 많은 운동선수들이 운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있다”며 관계 부처에게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요구했다.

◆전문가 “시스템 변화와 조기교육,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 이뤄져야”

전문가들은 체육계에서 행해지는 폭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승리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시스템 변화와 조기교육의 필요성, 여기에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이 더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의창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1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체육계에 폭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첫 번째는 승리지상주의를 조장하는 스포츠 행정 시스템, 그것을 보상하는 시스템이 오랫동안 고착된 것에 근원이 있다”며 “예를 들면 국제대회 군 면제 등의 큰 보상으로 감독도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고, 코치나 선수들도 권위를 따를 수밖에 없다. 얻어지는 보상이 너무 크니까 감수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두 번째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라며 “어려서부터 폭력·불평등 등이 강압이라는 인식을 쌓아나가야 본인이 청장년으로 성장했을 때 이런 이슈에 대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데, 운동만 시키고 교육은 잘 안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바뀌더라도 꾸준히 기본적인 기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며 “정책의 일관성 있는 강한 집행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접적으로 빠른 효과를 보려면 이미 마련해둔 규정, 법률들을 강력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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