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가정폭력 피해 '쉼터' 왔는데… 사회는 '문제아' 낙인 [청소년 氣 살리자]

관련이슈 청소년 기 살리자

입력 : 2018-11-17 16:00:00 수정 : 2018-11-17 14:26:1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9) 가정 밖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 사회의 보호 필요하지만… / 집 밖 떠도는 청소년 36만~40만명 추산 / 쉼터 전국에 130곳… 3만여명 수용 불과 / 시설 턱없이 부족… 연고지 이용 쉽잖아 / 세상 편견이 더 무섭다 / 시설 보호받는데 ‘불량청소년’ 손가락질 / 주민들 “집값 내려간다” 쉼터 조성 반대 / 지원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시선 더 시급
하영(14·가명)이의 머리에선 자꾸 냄새가 났다. 하영인 샴푸를 머리카락 끝에만 발라 머리를 감았다.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머리 감는 법을 몰랐다. 하영이는 4살 때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택시기사인 아버지는 일 때문에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하영이를 맡겼다. 아버지와는 일주일에 두 번만 만날 수 있었다.

여덟 살이 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울산의 한 가정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지낸 1년간은 고등학생인 언니에게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하영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자신을 키워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돼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다. 아버지는 집에만 오면 술을 마셨다. 먹을 게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많았다. 몸을 깨끗이 씻는 방법을 몰라 제대로 씻지 못했다. 학교 친구들은 하영이를 외면했다. 중학생이 되자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폭행이 심해졌다. 매일 밤 술을 먹고 하영이를 때렸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하영이의 눈앞에서 자해하고, 자살 시도까지 했다. 악몽 같은 날이 계속되던 중 담임 선생님이 하영이의 몸에 난 상처를 봤고, 그날부터 청소년쉼터에서 생활했다. 머리 감는 법도 처음 배웠다. 

◆갈 곳 없는 ‘가정 밖 청소년’ 보호시설 턱없이 모자라

하영이 같은 ‘가정 밖 청소년’은 전국적으로 36만∼4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가정 밖 청소년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실종아동과 19세 이하 가출인 신고 통계의 10∼20배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사회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가정 밖 청소년을 보호하는 ‘청소년쉼터’는 세 종류로 나뉜다. 1∼7일 머무는 ‘일시 쉼터’와 3∼9개월 머물 수 있는 ‘단기 쉼터’, 1년 단위로 3년까지 머물 수 있는 ‘중장기 쉼터’다. 이곳에서는 이들을 보호하며 가정이나 사회 복귀를 지원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청소년쉼터는 일시와 단기, 중장기를 모두 포함해 2013년 103곳에서 2015년 119곳, 올해 130곳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가정 밖 청소년들을 모두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013년 1만5242명이 찾았던 청소년쉼터에는 지난해 두 배가 넘는 3만1197명이 찾았다. 쉼터에 재입소하는 사례도 해마다 는다. 정원보다 입소자들이 많은 경우도 허다하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에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56개의 쉼터가 있다. 부산과 대구, 전북, 경남, 전남 등지에는 각각 5∼6곳에 불과하다. 가정 밖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적절하게 할 수 있도록 지역별 맞춤형 쉼터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도 단위 지역에서는 보호기간에 맞는 쉼터에서 생활하기도 쉽지 않다. 경남에는 모두 5개의 쉼터가 있는데 일시 쉼터는 창원에, 여자 단기 쉼터는 김해에, 여자 중장기 쉼터는 진주에 있다. 돌아갈 곳이 없지만 학교가 있는 지역의 보호시설을 이용하는 것조차 어렵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아동자립지원단을 통해 보육청소년 정책을 총괄한다. 부모가 없는 보육시설 청소년이 만18세가 지나 독립하면 5년간 추적·지원하는 시스템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주택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쉼터 청소년은 법적 보호자가 생존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가정 밖 청소년=불량 청소년’ 편견에 또 상처

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가정 밖 청소년에게 ‘불량 청소년’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고 상처를 준다. 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닌다. 부모의 폭력으로, 방임으로 고립돼 있다가 주변의 도움으로 쉼터에서 보호받게 된 것뿐이다.

울산의 주택가에 있는 여자 단기 청소년쉼터에 현판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곳에 쉼터가 들어서기 전 주민들은 쉼터 조성을 반대했다. 한 주민은 쉼터가 들어서면 집값이 내려간다며 자신의 집을 팔고 이사까지 했다. 김현주 여자 단기 청소년쉼터 소장은 “동네에서 흡연하는 청소년을 본 주민이 당연한 듯 쉼터로 항의한 일도 있다”며 “쉼터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안 입소 청소년의 친구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에게 ‘같이 놀지 마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가정에서 고립돼 사회가 보듬어야 하는 아이들이 사회의 편견에 다시 상처받고 고립된다. 피해자인 아이들이 왜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지원정책보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시선과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단 한 명의 어른”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정서적 지원과 함께 가정에도 통합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인생에 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민자 울산대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에게는 학습에 관한 멘토링과 ‘어떠한 어른으로 커야 한다’는 가이드라인 제시 등 보다 고차원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인적 인프라를 갖추고 보호시설과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가정으로, 부모에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며 “가족상담과 부모교육을 통해 부모와 청소년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