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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문화재청장 "문화유산은 남북 공존의 증거…보편적 공감대 형성 관건"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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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3 19:45:35 수정 : 2018-11-13 19: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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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만월대 공동발굴 8차 들어서 / 관심 큰 철원성 유적 DMZ내 있어 /남북간 지속적인 협의 필요한 사항 /상시적 실무협상 통로 만들고 싶어 / 가야사 복원 긴 호흡 가지고 나갈 것 / 안내판 교체·암각화 보존대책 추진 / 근대, 지금의 우리를 규정하는 시기 / 다시 한번 돌아볼 계기 만들기 최선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국정감사 기간인 지난달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과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 후삼국시대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철원성 유적을 찾는 길이었다. 남북한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철원성 공동발굴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엿새 후인 25일 정 청장은 여야 의원들과 함께 전남 목포의 원도심에 남아 있는 근대유산을 돌아봤다. 이 자리에서 ‘목포 근대역사문화 공간 재생 활성화 시범사업’ 추진 상황을 보고했다.

지난 8일 세계일보와의 만남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며 직접 강조한 두 가지는 이렇다. “문화유산을 통한 북한과의 교류는 제 소신이며,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근대유산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근대유산을 기폭제로 삼아 지금의 대한민국을 규정하고 있는 게 너무 많은 ‘근대’를 되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국회의원들과의 현장방문은 함께 현장을 둘러보며 남북 문화재 교류, 근대문화재 정책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사안을 보는 각론의 차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정 청장이 전한 당시의 분위기는 좋았다. DMZ에서는 “세계적 유적으로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목포에서는 “이런 곳이 다시 없는 것 같다”는 감상을 들었다고 한다.

취임 2개월을 조금 넘긴 정 청장이 짊어지고 있는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이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행보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을 둘러보며 두 가지 이슈 외에 문화재 안내판 개선,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가야사 연구, 문화재청의 해묵은 과제인 반구대암각화 보존 대책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두루 들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문화유산이야말로 남북 5000년 공존의 증거”라면서 “이를 통한 북한과의 교류는 소신이자, 진심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지난달 평양을 다녀왔다. 분위기가 어떻든가.

“2004년 북한 고분벽화 조사차 방북한 적이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확연하게 온도차가 느껴지더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은 5000년을 같이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같이 산 5000년을 증언하는 게 문화유산이다. 북한에서 새로운 유물을 발굴하고, 그것이 북한에 있다 해도 다 ‘우리’의 것이다.”

―문화재 교류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나.

“(고려 왕궁인) 개성의 만월대 공동발굴은 현재 남북한 조사단 60여 명이 모여 8차 발굴을 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다는 보고를 받았다. 남북한이 각각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인류무형유산 등재 권고 결정을 받은 씨름은 공동 등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관심이 큰 철원성 유적은 DMZ 내부에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고 지뢰 등의 위험요소가 있어 관계부처, 남북한 간의 지속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청장 취임 이후) 현장을 많이 다녀보고 있는데 철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북한과의 교류는 정치 상황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공유하는 게 많은 문화재 분야라도 안정적으로 이어갈 방법이 없을까.

“상시적인 실무협상 통로를 만들어 보고 싶기는 하다. ‘우리끼리 문화유산만 갖고 이야기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통로라고 할까. 하하하. 가령 개성에 사무소 하나 만들고 상시적으로 발굴을 이어간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곳이 생기면 거기서 문화재 이야기만 하겠나. 영화, 문학, 무용, 미술 등 문화 각 분야에서 급한 게 있으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정 청장은 크낙새(천연기념물 197호) 알을 북한에서 가져다 경기도 남양주 광릉에서 인공 부화하는 것을 협의 중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성사가 된다면 천연기념물까지 교류의 한 매개체가 되어 남북한의 접촉면이 더욱 다양해지게 된다.

문화재 안내판 개선과 가야사 연구 확대는 문화재청의 발등에 떨어진 과제다. 국민들의 문화재 향유, 한국사 인식 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데다 문 대통령의 관심과 지적에서 본격화된 정책이기도 해 관심이 크다.

“한국사가 삼국 중심으로 연구돼 가야사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면이 있었다. 가야문화권 문화재 조사·연구와 정비로 가야사를 재정립해 고대사의 한 축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올해 3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을 호남 지역 가야유적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 542호)에 올렸다. 가야사 연구 확대는 영호남 화합의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최근 호남 지역에서 가야와 관련된 의미 있는 발굴이 있었다.”

―대통령의 관심이 커 속도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이런 작업은 서두르면 부작용이 크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분들께 천천히 하시라, 긴 호흡으로 멀리 보자는 말씀을 계속 드리고 있다.”

―안내판 개선에 대한 관심도 크다.

“문화재청이 일상에서 가장 먼저 챙겼어야 할 일을 이제껏 방기해왔던 측면이 있다. 안내판 9800여 개를 전수조사했고 궁릉과 고도의 것은 연말까지 개선을 완료하려 한다. 내년에는 3000개 이상이 바뀔 것이다.”

―개선의 핵심이 무엇인가.

“눈높이다. 관람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가장 보편적이며 흥미를 끌 수 있는 단어와 문장으로 짧고 굵게 표현하는 것이 목표다. 영문 안내판의 경우엔 한글 안내판 내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많은데, 외국인들은 한국사에 대해 잘 모르지 않나. (한글 안내판 내용을) 똑같이 번역하는 게 아니라 영문 안내판 내용은 따로 작성할 필요가 있다. 그간에 안내판 문구는 전문가 중심으로 작성됐다. 이번엔 문화재 애호가, 교사, 학생 등으로 시민자문단을 구성했다. 다음달쯤에는 예전과 비교해 달라지는 모습을 국민들께 구체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낙연 총리를 통해 경북 청도의 운문댐 물을 일부 끌어와 울산시에 공급하고, 대신 울산시의 식수공급원인 사연댐 수위를 낮춰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됐다. 침수로 인한 암각화 훼손을 사연댐 수위 조절로 막겠다는 것으로, 문화재청과 학계, 문화재 단체 등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예전에 비슷한 안이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결론이 난 적이 있었다.

―암각화 보존대책 논란이 해결될 수 있을까.

“(올해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의 해결의지가 확고하다. (이전과 달리) 수위 조절에 대해 유연한 입장이고,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 준비를 시작할 테니 도와 달라는 부탁도 하더라. (운문댐 물을 끌어오는 방안을 다루는) 연구 용역에 대해 (예전과 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으니) 자신하지 말라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이번에도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생태제방 건설 같은 방법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 때는 다른 걸 생각해봐야 한다. 고민을 하고 있다. 울산시와 울산시민들의 오랜 노력, 고민을 끌어안을 방안을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한다. 암각화 보존대책 논란이 오래됐고, 그간에 (당사자인)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할 이야기는 다했다고 본다.”

정 청장이 근대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먼저 이야기한 것은 인터뷰가 정리될 즈음이었다. 문화재라고 하면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의 것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어 근대와 관련된 유물, 유적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등록문화재 제도를 두어 보존하고 있으나 지원대책이 부족했던 면도 있다. 그러나 근대 문화재는 활용도가 높고, 현재의 우리 모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도 많아 그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문화유산과 관련한 시기를 근대에 주목하고 싶어요. 근대라고 하면 지난 100년 정도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의 우리를 규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앞으로 문화재청에서 할 일 중에 근대와 관련된 것들이 많을 겁니다. 근대문화재의 역사를 소개하고, 속살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인식이 별로 없어) 근대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걸 쉽게 없애 버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활용이든, 발굴이든 혹은 복원이든 문화재를 기폭제로 근대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려 합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와도 관련된 것이 많아 보편적 공감대를 만들기가 쉽지는 않겠으나 자꾸 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담=김신성 문화체육부장
정리=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1961년 서울 출생 △무학여고, 고려대 △1988년 서울경제신문 문화부 △1995년 한겨레신문 문화부 △2008년 중앙일보 문화데스크 △2012년 JTBC 스포츠문화부장 △2013년 국립현대무용단 이사 △2014년 문화재청 궁능활용심의위원 △2018년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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