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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전교 1등'… 무너진 내신 신뢰도 [뉴스라인]

입력 : 2018-11-12 21:34:52 수정 : 2018-11-13 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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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문제유출’ 수사 결과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A(53)씨와 쌍둥이 자매는 경찰 수사 내내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쌍둥이가 작성한 메모들이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시험지·정답 보관 및 관리가 허술했고 평소 유출 가능성이 있었으며 일부 과목 출제교사가 유출을 의심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12일 경찰이 A씨 부녀가 정기고사 문제와 정답을 유출했다는 핵심적인 증거로 ‘암기장’과 ‘접착식 메모지’, ‘시험지에 적힌 메모’ 세 가지를 꼽았다.

12일 경찰이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문제 및 답안지 유출사건의 증거물들로 제시한 접착식 메모지. 집에서 발견된 메모지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의 정답이 적혀 있다. 수서경찰서 제공
경찰에 따르면 쌍둥이는 A씨가 유출한 문제와 정답을 암기장에 적어두고 이를 가로 10cm·세로 3cm 크기의 접착식 메모지에 옮긴 ‘커닝페이퍼’를 시험 당일 가져갔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정답 숫자를 재빨리 외워 바로 시험지에 옮겨 적는 방식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봤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쌍둥이는 이런 식으로 지난해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올해 전교 1등을 석권한 2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까지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접착식 메모지를 커닝페이퍼로 의심한 근거와 관련, 문제지에 매우 작은 글씨로 정답을 적어둔 점을 들었다. 쌍둥이는 “시험을 치른 후 가채점을 위해 적었다”고 했지만, 굳이 깨알 같은 글씨로 써 놓을 이유가 없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경찰은 쌍둥이가 시험지에는 정답 20~30개를 가로·세로 2~3cm 크기에 써넣는 등 접착식 메모지보다 훨씬 더 작은 글씨로 써넣은 것도 감독관 눈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

시험문제를 낸 숙명여고의 한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문제유출이 의심되었다”고 진술했다. 쌍둥이 동생이 화학시험 서술형 문제의 정답으로 적은 ‘10:11’은 결재를 잘못 올렸던 수정 전 정답이었다. 쌍둥이의 물리 과목 시험지에는 정답만 적혀 있고 문제를 푼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도 않았다. 이들은 “암산으로 계산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경찰은 쌍둥이가 전교 1등을 한 올해 1학기 학원 성적은 중간 수준이었던 점, 모의고사 성적은 정기고사와 달리 하위권이었던 점, 수사가 시작된 후 2학기에 다시 성적이 떨어진 점 등을 쌍둥이가 문제를 유출해 시험을 봤다는 정황으로 파악했다.

쌍둥이 딸이 치른 시험지에도 해당 시험문제의 정답(빨간 원)이 깨알같이 작은 숫자로 옮겨 적혀 있다.
수서경찰서 제공
허술한 숙명여고의 시험지 관리실태도 함께 드러났다. A씨가 올해 4월20일과 6월22일에 시험지 금고가 보관된 교무실에서 초과근무를 하면서 초과근무 대장에 기록하지 않는 등 행정상 허점이 있었다. 본래 고사총괄교사만 시험지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도 교무부장이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는 교무부장 발령 전에는 해당 금고의 비밀번호를 몰랐지만 인수인계 과정에서 비밀번호를 알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부녀는 여전히 문제유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이 제시한 증거가 모두 정황 증거”라며 “실제로 문제를 유출한 장면을 포착한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재판에 대비할 가능성이 있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휴대전화 등에서 확인된 증거들이 더 있다”고 말했다. 사건의 최종 결론은 법정 공방을 거친 뒤 법원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 수사결과가 발표된 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 앞에서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숙명여고 교장, 교사의 성적조작 죄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입시제도 공정성 논란 재점화… 수능 위주 정시 확대 목소리 커


경찰이 사실로 결론 낸 숙명여고 정기고사 시험문제·정답 유출 사건의 파장이 거세다. 고교 내신의 신뢰성 논란은 물론 수시모집 위주의 대학입시 제도에 대한 공정성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다. 대입 제도의 근본적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보수성향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정시모집 확대 주장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경찰이 숙명여고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12일 교육계 안팎에선 “정도의 차이가 있거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런 일이 수두룩할 것”이란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학교 교사와 자녀 관계뿐 아니라 교사의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 등이 사교육업계에서 일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냐”며 “내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얼마든지 시험 문제와 답안이 유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중간·기말고사 기간에는 교사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학부모 백모(50)씨도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숙명여고뿐이겠냐”며 “특히 부모와 자녀가 한 학교에 같이 다니면 수행평가 점수든 뭐든 자녀에 대한 특혜가 공공연한 비밀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민감한 반응은 내신의 중요성이 커진 탓이다. 현재 고2 학생들이 치를 2020학년도 대입에서 전국 4년제 대학은 10명 중 8명(77.3%)을 수시모집으로 뽑는다. 수시모집은 교과성적(내신)을 주요 전형요소로 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비교과 영역까지 보는 ‘학생부종합전형’ 비중이 크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은 고교별 학력차 등을 감안해 학종 비중이 높지만 이마저도 일정 수준의 내신이 안 되면 지원 자체가 힘들다.

그런데도 상당수 학교의 시험지·답안지 관리 보안은 허술하기만 하다. 부모와 자녀가 한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지난 8월 기준 전국 2360개 고교 중 560개교(23.7%)에서 교원(1005명)과 자녀(1050명)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일부 교사나 학교 행정직원이 시험지·답안지에 손을 댔다가 처벌받기도 했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은 이날 “내신과 학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그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라며 “이 기회에 ‘깜깜이’ 학종보다 훨씬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능 위주의)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수시 축소·폐지’와 ‘정시 확대·100% 수능’을 요구하는 청원이 잇따랐다. 이들은 교육당국이 밝힌 폐쇄회로(CC)TV 설치를 비롯한 내신 시험지·답안지 보안 강화와 교사와 자녀 상피제 적용 등도 미봉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청윤·이강은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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