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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탄광으로 명성 떨친 동토… 이젠 쇠락의 그림자만 [극동시베리아 콜리마대로를 가다]

입력 : 2018-11-13 03:00:00 수정 : 2018-11-12 20: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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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슬픔이 서린 도시’ 수수만 / 연평균 영하 15도 툰드라 고산지대 / 자원 풍부해 한때 1만8000명 거주 / 경제적 가치 다하자 인구 25%로 뚝 / 4만년 전 살았던 아기 매머드 ‘디마’ / 온전하게 냉동된 채로 1977년 발견 / 한국 과학자들 복제작업으로 재현 중 / 최근엔 온난화로 여름에 홍수 생기고 / 광활한 초지엔 침엽수·활엽수도 서식 / 순록들마저 먹이 찾아 북쪽으로 떠나
서울을 출발한 지 6일째, 얼어붙었던 도로가 녹으면서 질펀해진 콜리마대로를 하루에 400㎞ 이상 달려왔다. 우스트-네라에서 수수만으로 가는 길은 비까지 내려 자동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콜리마대로 탐사단 일행은 답사하는 도시마다 현지 관계자들과 세미나가 예정돼 있어 매일 밤늦도록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애초 계획엔 수수만을 그냥 지나치기로 했으나 이동 거리와 시간상 하룻밤 묵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 무렵 수수만에 도착했을 때 쇠퇴하는 도시를 찾은 기진맥진한 우리 탐사단을 이곳 아이들이 신기하게 바라봤다.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영업 중인 식당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현지 신문 ‘고르냐크 세베라’ 소속 기자의 개인 아파트에서 허기를 채웠다. ‘고르냐크 세베라’는 1939년에 창간돼 광업을 대변하는, 마가단주 서부지역의 자존심이었다. 에스키모(이누이트)인으로 수수만에 살고 있는 이 기자는 수수만에 대한 기사를 매주 송출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였다. 수수만은 너무 춥고(연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15도) 채굴의 경제적 가치가 다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이주를 독려하면서 초래하는 주민들의 생활고와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개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는 공공 인프라, 노년층이 많은 인구 구성,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하는 유년 세대 문제 등을 현지 주민의 입을 통해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수수만은 공업, 농업, 수렵, 관광 등 어느 분야에서도 새로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쇠락하는 도시다.

수수만을 찾은 또 다른 이유는 이곳에서 발굴되고 있는 매머드 화석의 존재였다. 2007년 ‘러시아자연사박물관’전, 2012년 ‘러시아야쿠트맘모스전’이 서울에서 열려 러시아 매머드는 생소하지 않다. 수수만의 키르길랴흐강 하구에서 온전한 상태의 매머드 사체가 1977년 우연히 발견됐다. 흠집 하나 없는 몸통을 4만년이나 그대로 간직한 생후 6개월 난 새끼 매머드 ‘디마’는 과학자들에게는 경이로운 선물이었다. 씹던 풀이 소화도 되기 전에 냉동된 아기 매머드 디마 이야기는 영화, 문학, 노래의 소재가 됐다.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그대로 얼어붙은 디마의 기념 동상은 야쿠츠크에, 몸통은 모스크바 박물관에 있다. 자신의 고향 수수만에는 이렇다 할 흔적이 없다. 다만 이곳에서 발굴되고 있는 완벽히 보존된 냉동 매머드는 야쿠츠크에서 수행되고 있는 한국 과학자들의 매머드 복제 작업으로 재현되고 있다. 매머드 복제가 성공한다면 지구 생태계는 어떻게 될까? 과학자들의 예견은 다양하지만 그 상황을 직접 닥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난해한 질문이다.

에벤어로 ‘초원의 큰 눈보라’를 뜻하는 수수만은 오래전에는 에벤족이 살았으나 점차 야쿠트인들이 에벤인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정착했다. 수수만이 러시아인들에게 알려진 지는 100년 남짓이다. 이곳에 금광, 탄광이 개발되면서 도시 가치가 높아졌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1959년 1만3000명, 1991년 1만8000명까지 거주했다. 수수만의 인구는 올해 4800명에 불과하다. 공업, 농업, 수렵, 관광 등 어느 분야에서도 새로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쇠락하는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녹슨 중장비를 보면서, 애잔함이 밀려왔다.
마가단에 가까이 이르자 도로공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죄수들이 강제 노동을 했던 악명 높았던 강제수용소 ‘굴라크’와 한때 금광을 찾아 자발적으로 동토의 불모지를 찾았던 사람들 모두 죽거나 떠났다. 현재 남은 이들 역시 버려진 빈집과 가재도구를 보면서 떠날 궁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수수만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가단주의 금 채광 중심도시다. 1936년 ‘수수만 굴라크’가 세워지고 1937년 이 수용소를 중심으로 금광이 개발됐다. 소련의 가장 큰 죄수 수용소 가운데 하나였던 ‘서부노동수용소’ 관리청이 1949년부터 1956년까지 수수만에 있었다. 수수만은 죄수들의 혹독한 강제 노역의 중심지였다.

아픈 역사를 딛고 1980년대 말까지 수수만은 금과 석탄의 풍부한 채광지로 이름을 날렸다. 광공업 기업뿐만 아니라 경공업, 식료품 기업들도 들어섰으며 문화, 교육 면에서도 수준 높은 도시였다. 아직도 ‘수수만졸로토’ 등 금 채굴 기업들이 수수만의 주요 산업을 형성하고 있지만 채금이 여의치 않으면서 도시는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우스트-네라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수수만에 도착했다는 이정표를 보고서야 수수만에 진입한 지 알 수 있었다.

수수만은 툰드라 중에서도 고산지대이다. 수수만에서 지구 온난화 피해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기온 상승으로 이 지역 생태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광활한 초지는 침엽수뿐만 아니라 활엽수까지 들어서는 지대가 됐다. 이끼류와 풀, 낮은 관목이 살았던 대지는 강수량이 많아지면서 점차 수목이 무성해지고 있다.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 이제는 홍수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2017년에는 홍수로 도시가 큰 피해를 보았다. 툰드라 지역에 자라는 이끼 ‘야겔’이 주식인 순록도 먹이를 찾아 더 북쪽으로 떠나고 있다. 러시아어로 ‘나무가 없는 땅’을 뜻하는 툰드라에 초지가 줄고 나무가 자라면서 순록도 떠나고 있지만, 이 도시의 침울한 현실에 뭔가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를 기원했다. 대자연의 변화로 수수만강, 인디기르카강의 풍부해진 수량, 무성해지는 삼림도 수수만의 희망으로 작동하길 고대한다.
표상용 한국외국어대 노어과 교수

수수만을 출발해 다음 목적지 야고드노예로 향했다. 이틀 연속 내리는 비는 콜리마대로를 흠뻑 적셔 도로는 빙판길처럼 미끄러웠다. 시속 80㎞로 달렸던 자동차는 40㎞의 속도도 내기 힘들었다. 계속 튀는 흙탕물은 차 외관을 흙빛으로 도장했다. 2시간 정도지나 좀 더 동쪽 해안, 마가단에 가까워지면서 도로 사정이 좋아졌다. 차를 깨끗이 닦아내자 차창 너머로 버려진 마을이 드문드문 보였다. 버려진 마을은 북동시베리아의 적막한 산과 어울려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갑게 침묵하고 있었다. 비구름이 가시고 여름 햇살이 내리쬐자 폐허로 변한 또 다른 작은 도시가 넓게 나타났다. 멸망한 고대 문명의 유적지 같은 모습으로 흐릿한 색깔과 퀴퀴한 냄새가 느껴졌다. 폐허도시 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동행했던 현지 에벤인 바르바라 교수가 위험하다며 우리를 말렸다.

표상용 한국외국어대 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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