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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즈쿠리로 개발붐 막은 주민들… ‘공생문화’ 꽃 피우다 [젠트리피케이션 넘어 상생으로]

골목길마다 전통·예술로 도시 재생 / 최소 100년 넘은 가옥들 즐비 / 리모델링으로 ‘공생 통한 발전’ / 외국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 / 1989년 아파트 신설 계획에 단체 행동 / 마을 보존 위한 협력 필요성 인식 계기 / 2000년 협의회 출범… 마치즈쿠리 활기 / 인근 도쿄예술대 있어 미술인 등 거주 / 주민 생활 곳곳 ‘예술의 향기’ 스며들어 / 민·관·공 힘 모아 ‘살고 싶은 마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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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0 13:00:00      수정 : 2018-11-23 16:12:05
일본 도쿄 지하철 닛포리역에서 내리니, 차 한 대 지나다닐 수 있는 너비의 반듯한 길을 따라 3층 이하의 낮은 주택들이 넓게 펼쳐진다. 신주쿠, 긴자, 시부야 등 전형적 메트로폴리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도쿄다. 이 마을 이름은 야나카. 인접한 네즈, 센다기와 함께 ‘야네센’ 지역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사찰, 박물관 등이 밀집한 인근의 유명 관광지 우에노에 비해 야나카는 비교적 한산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주택가이지만, 골목을 걸으며 찬찬히 살펴보면 현대식 주택 사이로 지은 지 100∼200년 된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거대한 박물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도쿄예술대학과 가까워 예로부터 예술친화적이었던 야나카의 골목 곳곳에서 소규모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휴식을 위해 ‘카야바 커피’를 찾았다.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 2층 다다미방에 자리를 잡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담소를 나누고,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독일어를 쓰는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카페 내부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야나카의 랜드마크인 ‘카야바 커피’는 1916년 지어진 2층 목조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원래 사탕과 우유를 팔던 가게를 1938년 카야바 이노스케가 인수했고, 그의 딸이 물려받아 카페로 운영했다. 그가 2006년 세상을 떠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마을 공동체와 지역 단체의 도움으로 새 주인을 만나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야나카에서는 카야바 커피처럼 오래된 나무집을 고쳐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1930년대 술집으로 운영되던 목조건물을 개조해 만든 도쿄바이크는 자전거를 빌려주고 간단한 식음료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내부에 옛 술집 간판이 그대로 남아있다.
◆전통과 현대, 예술이 공존하는 야나카

옛날 집을 살피며 골목을 걷다 보면 1층에 비해 2층이 현저히 낮은 집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상인은 무사를 내려다보지 않는다’는 관청의 금제가 있던 에도 시대(1603∼1867)나 메이지(1868~1912) 초기의 건축 양식을 따른 것이니, 최소 100년은 넘은 집들이다.

여러 집이 한데 모인 ‘사쿠라기 아타리’는 1930년대 지어진 것을 2015년 리모델링한 뒤 야나카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났다. 현재 빵집과 수제 맥줏집, 레스토랑 등이 입점해 있는데, 전통적이며 아기자기한 느낌이 매력적이어서 젊은 일본 여성들과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든다.

일반 가정집보다 조금 큰 규모의 2층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지붕은 최근에 올린 것으로 보이지만, 문과 기둥, 창틀 등 전체적 양식이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인다.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연립주택으로 현재 세 가구가 거주 중이며 1층에 작은 미용실이 영업 중이다.

야나카 마을 초입에 위치한 다이토역사도시연구회 사무실에서 이시하라 아키코 이사장이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야나카 입체 지도를 살펴보면 건물 하나를 빼놓고 모두 3층 이하의 낮은 층고를 유지하고 있다.
이외에 1930년대 술집의 분위기를 살린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도쿄바이크’, 옛 일본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하나레’, 지역 펀드를 통해 최근 문을 연 밥집 ‘덴자에몬 메시야’ 등과 많은 일반 가정집들이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해 야나카 고유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야나카 골목의 또 다른 특징은 마을 곳곳에서 미술관과 갤러리, 미술 관련 상점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이토 역사 도시 연구회’ 이사인 나카무라 이즈루씨는 “인근에 도쿄예술대학이 있어 1870년대부터 야나카에 예술대 학생과 미술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거주했고, 주민 생활에 예술이 녹아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1700년대 만들어진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현대미술 전시장 ‘스카이 더 배스 하우스’ 입구에는 목욕탕 시절 사용하던 커다란 양철물통이 아직 남아있다.
◆‘마치즈쿠리’로 마을 지킨 주민들

야나카가 처음부터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은 아니다. 70, 80년대 개발 붐이 일고, 원주민들이 도심으로 떠나면서 이곳에도 젠트리피케이션 위기가 있었다. 새로 유입된 주민들이 화재에 취약하고 불편한 옛날 집을 아예 부수고 새로 짓거나 주차장으로 만드는 일이 늘어났다.

‘야나카 고유의 모습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하던 중 1989년 9층 아파트 신설 계획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주민들은 오랜 기간 아파트 사업자를 설득했다. 사업자는 ‘야나카 지키기’ 취지에 공감해 계획을 수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야나카 사람들은 마을 보존을 위한 협력과 전문성의 필요를 절감하게 됐다. 이후 ‘마치즈쿠리’가 활기를 띠면서 2000년 ‘야나카 마을 만들기 협의회’가 정식 출범했다.

내부의 목조 뼈대를 살려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 하나레는 불편함 없이 전통 가옥을 체험할 수 있다.
마치즈쿠리는 한국의 마을 만들기, 마을 가꾸기와 비슷한 개념이다. 주민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골목 가꾸기, 축제 개최 등부터 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 기업·지자체와 파트너십을 통한 사업 진행까지 마을의 대소사를 주도적으로 이끈다.

야나카 주민들은 폐쇄적인 보존보다는 ‘공생을 통한 발전’에 가치를 두고 마치즈쿠리 활동을 펼쳤다. 원주민들은 새로운 주민이나 사업자가 유입되면 마을 활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고 설득해 함께 마을 고유의 문화를 지켜나간다.

임대 사업자도 새로운 임차인 선정 시 집 관리와 마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거주자와 점포를 엄선한다. 그 결과 현재 야나카 주민 90% 이상이 마치즈쿠리에 참여하고 있다.

메이지시대 지어진 2층짜리 연립주택에는 현재 세 가구가 살고 있으며 1층에서 영업 중인 미용실 입간판이 입구에 서 있다.
야나카 마치즈쿠리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과 공·민·관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는 먼저 나서 사업을 주도하기보다 주민과 지역 단체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쪽에 무게를 둔다. 도쿄도와 다이토구가 2004년 야나카 지역을 통과하는 도시계획도로 사업을 발표했다가 2015년 폐지한 이유도 ‘야나카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었다.

전통 주택 리모델링과 빈집 유지 및 임대 등 사업을 담당하는 민간비영리단체 ‘다이토 역사 도시 연구회’와 인근 도쿄대, 도쿄예술대가 지역 개발 자문 역할을 하는 ‘야나카 학교’ 등 단체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마을 사업을 지원한다. 그 덕에 야나카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고유의 개성을 더욱 뚜렷이 다지며 발전해가고 있다.

옛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사쿠라기아타리. 내부에 빵집, 카페, 수제맥줏집, 레스토랑 등이 있어 관광객과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시이하라 아키코 ‘다이토 역사도시연구회’ 이사장은 “예전엔 개발되지 않은 변두리 마을로 인식됐던 야나카가 지금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살고 싶은 마을’로 거듭났다”고 자신했다.

도쿄=글·사진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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