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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문화 자긍심과 다문화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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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07 21:17:25      수정 : 2018-11-07 21:17:25
다문화 상황이란 사람들이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이나 행동방식이 여럿인 경우를 뜻한다. 외국인을 만나 대화하거나 행동을 관찰할 경우, 한국인의 가치관이나 행동방식 중 보편적이 아닌 것이 적지 않음을 절감한다. 어휘의 포괄 범위가 다른 것도 그 예다. ‘친구’라는 단어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개념이지만 한국에서처럼 ‘동년배’만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다. 영어의 친구는 한국어의 친구뿐 아니라 선배·후배, 심지어 선생도 포함한다. 문화 사이에는 우월·열등이 없고, 단지 ‘일치’와 ‘차이’가 존재할 뿐이므로 우쭐대거나 창피해할 일이 아니다.

이민자는 ‘출신국 문화’를 간직한 채 ‘이주국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이민자 개인의 문화 부적응이 심하면, 때로는 ‘문화갈등’으로 비화한다. 일례로 10여 년 전의 일을 든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아빠가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대학교수로 취업함에 따라 한 지방도시로 이주했다. 미국 학교에서는 교우관계·성적·리더십이 좋은 우등생이었으나, 한국 학교에서는 한순간에 문제아로 전락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아기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성장했으므로, 일상 한국어 구사는 문제가 없었으나 학교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고, 잘하던 수학 성적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중간고사를 보고 낮은 성적에 시무룩해 있었는데, 한 교과 교사가 성적이 낮은 학생의 손바닥을 매로 때리는 체벌을 가했다. 태어난 후 체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던 아이는 이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시험을 잘못 봐서 속상해하고 있는데, 교사가 자기를 때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는 집에 와서 부모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고, 부모는 ‘사랑의 매’라는 한국 문화를 아이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아이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고, 온 가족이 우울했다. 아빠는 이 일을 필자에게 호소하듯 털어놓았고,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로부터 1년 후, 그 아빠는 한국의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미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온 가족을 데리고 한국을 떠났다. 그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가진 우수 교수였으나, 아들의 장래가 자신의 경력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판단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국내 학교 교육 현장에서 이런 일이 완전히 사라졌을까. 옛날 이야기였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 귀국 자녀뿐 아니라, 결혼이민자의 중도입국자녀 등 유사 사례가 적지 않고, 학령기 아동·청소년의 문화갈등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주위 교육사회학, 이민 사회학 전공학자 몇몇에게 탐문하면서, 의외로 많은 아이가 현재 문화갈등에서 비롯된 아픔을 겪고 있음을 알았다.

이민자 사회통합 정책은 ‘국민 정체성’ 함양을 추구한다. 이민자에게 ‘한국어 교육’과 ‘한국 사회·문화 이해’만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민자가 ‘한국인’ 또는 ‘한국사회의 주민’이라는 자긍심을 배양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민자 사회통합 정책의 틀 안에서 다문화교육의 목표·내용·포괄범위 등을 재조정하는 것이 필수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문화교육에서 배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고, 한국 사회의 장래가 달린 사안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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