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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없이 친환경 인증 취소…유망 수출기업 존폐 기로 내몬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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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05 15:32:55 수정 : 2018-11-05 15: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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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업체 제시한 보고서만 보고 결정 / 인증취소 공문은 오타·오류 투성이 정부가 유아용 놀이 매트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별다른 기준 없이 친환경 인증을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 1위이자 유력 수출업체로 떠오르던 해당 기업은 별안간 고사 위기에 처했다. 인증 취소를 통보한 공문은 오·탈자와 오류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나는 등 관련 행정 처리 과정도 엉망이었다.
 
크림하우스프렌즈의 ‘스노우파레트 네이처’ 제품 시리즈 이미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지난해 11월 크림하우스의 이 제품군에 대해 디메틸아세트아미드(DMAc)가 정부에서 정한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며 친환경 인증을 취소했다. 크림하우스프렌즈 제공

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의원실 등에 따르면 환경부 산하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지난해 11월 크림하우스프렌즈가 생산하는 유아용 매트 제품에 대해 디메틸아세트아미드(DMAc)가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며 친환경 인증을 취소했다. 크림하우스 측은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인증 취소에 대해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일개 중소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장기화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어떻게 발생했고 진행 중인지를 짚어봤다.

◆인증 취소의 근거, 알고 보니 틀렸다

친환경 인증은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에 따라 시행된다. 이에 대한 업무를 위탁받은 기관이 기술원으로, 인증 취소의 근거로 삼은 것은 발포 합성수지제 매트 제품의 친환경 기준을 담은 환경부 고시 ‘EL327’이다. EL327은 2012년 말부터 도입 논의가 시작돼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됐다.

EL327에 따르면 해당 제품의 구성 원료로 UN의 GHS(화학물질에 대한 국제 분류·표시 시스템)의 H코드(the hazard statement code)에 오른 수천 가지의 물질을 원천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 고시상으로 H코드의 리스트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해당 제품을 생산하고자 하는 업체에서 수천 가지의 목록을 직접 구해 모두 확인한 뒤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기술원은 친환경 인증(EL327)을 부여할 때 H코드 리스트의 물질에 대해 직접 검사하지는 않고, 기업들이 제출한 서류로 갈음하고 있다. 한정애 의원이 이에 대해 질의한 결과 기술원은 “해당 사용금지 물질 개수가 2067개로 분석시간 및 실험비용 과다 등으로 시험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기준은 세계 최고로 강력하게 만들었지만 그에 대한 검증은 기업이 제출한 서류에 의존하는 셈이다.

기술원이 해당 제품의 친환경 인증을 취소하면서 밝힌 DMAc의 검출치는 157PPM과 243PPM이었다. 정부 기준치인 100PPM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정애 의원이 기준치를 100PPM(0.01%)로 잡은 기준에 대해 질의하자 기술원은 “북유럽 친환경 인증인 노르딕 스완 에코라벨 제도의 유사 제품군에서 설정한 기준을 준용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노르딕 스완 에코라벨의 DMAc에 대한 기준을 찾아보니 1000PPM으로 돼 있었다. 북유럽의 기준에 따르면 해당 제품의 DMAc 검출량은 기준치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었다.

◆대체 DMAc가 뭐기에

그렇다면 대체 DMAc란 무엇일까.

업계 및 학계에 따르면 DMAc는 기계 세척제 등으로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매다. 국내에는 이에 대한 유해성 및 위해성 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이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다.

다만, 유럽연합은 관련 규정(EU Regulation) 중 유엔 GHS(화학물질에 대한 국제 분류·표시 시스템)의 H코드(the hazard statement code)에 근거해 DMAc를 ‘태아에 유해 가능성이 있다(may damage the unborn child)’고 분류하고 있다.

‘국제 섬유 및 가죽 생태학 연구 실험협회(OEKO-TEX)’에서는 DMAc의 제한 수치를 500∼1000PPM으로 설정했고, 노르딕 친환경인증(ecolabelling)에서는 1000PPM(0.1wt%)으로 각각 정해놓았다. OEKO-TEX는 유럽 전역에서, 노르딕 친환경 인증은 북유럽 지역에서 각각 가장 신뢰도 있는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정애 의원실 제공
◆케미포비아 조장한 정부

크림하우스 제품에 대해 친환경 인증 취소가 이뤄진 뒤 크림하우스 측은 소비자들과 언론 등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했다. 판매금지가 아닌 인증 취소였지만, 친환경 제품이었던 만큼 실제 영향은 판매금지에 못지않았다.

사태 초기 당시 기술원 측은 “이번 사태는 경쟁업체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인해 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경쟁업체는 크림하우스와 1, 2위를 다투는 업체였다. 크림하우스가 인증 취소를 받자마자 자사 제품에 대해 ‘유일의 친환경 인증제품’이라며 집중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다.

한정애 의원실에 따르면 경쟁업체의 문제 제기는 단순 민원제기 차원이 아니었다. 해당 경쟁업체는 인증 취소가 이뤄지기 4개월 전인 지난해 7월 ‘크림하우스의 제품에서 UN GHS H코드에 해당하는 DMAc가 검출됐다’며 본인들이 직접 실험 의뢰한 결과를 기술원에 보냈다. 해당 자료에는 경쟁업체가 크림하우스의 제품을 구입해 실험을 어떻게 진행했고,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당시 기술원은 크림하우스의 인증 취소에 대해 “국민 안전을 위한 선제적인 조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증 취소 이후 경쟁업체가 제공한 결과에 대해 추가 검증도, 자체 별도 검증도 진행하지 않았다.

인증 취소로 인해 크림하우스의 공장 가동 정지 상황이 길어지자 크림하우스에 원료 등을 납품하던 협력업체들은 같은 제품으로 별도의 브랜드를 만들어 EL327에 따른 친환경 인증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DMAc에 대한 별도의 검증 없이 해당 친환경 인증이 부여됐다.

기술원에서 친환경 인증을 취소한 이유는 DMAc가 개별원료로서 검출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크림하우스 측은 DMAc가 제품의 개별원료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생산 기계를 세척하는 과정에서 일부 비의도적인 혼입이 있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제품에서 검출된 DMAc를 원료로 보느냐 여부에 따라 검출 방법 또한 달라진다.

◆인증 취소 통보 공문은 오류와 오타투성이

이러한 가운데 기술원이 지난해 11월 크림하우스에 보낸 공문이 오류와 오타투성이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인증 취소는 관련법의 시행령 제28조 제1항 제2호(부적합 제품의 유통)에 의해 이뤄져야 했지만 공문에는 ‘제1호(생산 중단 및 부도, 폐업 등의 사유)’로 적시돼 있었다. 가장 중요한 DMAc는 ‘DAMc’로 표기된 부분도 있었다.

게다가 적발 일시는 지난해 10월11일이 아닌 2010년 10월11일로 돼 있었다.

인증 취소 통보 공문 한장으로 기업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됐지만, 막상 해당 공문은 적발 일시와 근거 법령, 검출 물질명 등이 모두 잘못 표기돼 있었던 것이다.

◆행정소송 언제까지 장기화할까

한정애 의원실에 따르면 이번 사안 발생 이후 크림하우스의 피해 규모는 매출 부문에서만 100억원을 훌쩍 넘겼다. 또 올해 3월까지 자사 전체 직원 60명 중 15명이 퇴사했고, 부도 위기에 내몰린 협력업체에서는 직원의 4분의 3이 퇴사했다.

이러한 가운데 크림하우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경쟁업체가 친환경 인증 취소 직후 해당 내용을 맘카페와 포털 댓글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유포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경찰 수사가 수개월째 진행 중이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크림하우스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별도 조사가 진행된 결과 무해성이 입증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 대해 기술원 측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법원 선고는 지난달 5일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술원은 하루 전인 지난달 4일 변론 재개를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며 선고는 이번 달로 다시 연기됐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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