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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마리아인은 죽었다"… 도움에 인색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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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30 06:01:00 수정 : 2018-10-30 11: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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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불의에 눈 감은 시민들②] 시민 모두가 공모자 지난 2016년 8월 택시 기사 이모(62)씨가 차량 운행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다. 하지만 당시 택시에 탑승했던 승객 2명은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택시 기사가 쓰러져 있던 운전석에 꽂혀 있던 열쇠를 빼내 트렁크 문을 열고 골프가방 등 자신의 짐을 꺼낸 뒤 현장을 떠났다. 뒤늦게 이모씨는 다른 시민들의 신고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택시 기사를 구하지 않은 승객들은 처벌을 받았을까. 해당 승객들은 도덕적으론 비난을 받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현행법상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경우를 처벌하는 법률조항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민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의사마저 주저하는 구급 활동

선행이 불이익으로 돌아올까 도움주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8월 회원 1,631명을 대상으로 '응급의료법 개정 및 제도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진료시간과 진료 외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 요청이 왔을 때 요청에 응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4.7%가 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같은 설문 결과는 지난 5월 봉침을 맞은 한 교사가 사망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허리에 통증이 있던 초등학교 교사 A(38)씨는 한의원에서 봉침을 맞은 후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뇌사 상태에 빠진 후 결국 숨졌다. 유가족은 사고를 낸 해당 한의사를 상대로 9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해당 소송에는 사고가 난 한의원과 같은 건물에 있는 가정의학과의원 원장도 포함됐다. 도움 요청을 받은 가정의학과 원장이 A씨에게 항알레르기 응급치료제를 투여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응급처치를 시행했다는 게 이유다.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시민들. 연합뉴스

지난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가정의학과 의사의 경우 선한 의지로 응급진료를 도운 것뿐인데, 오히려 가해자가 된 셈"이라며 "이처럼 선한 사마리아인들에게 면책을 주지 않으면 아무도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돕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관련 법 개정을 촉구했다.

◆제자리걸음인 ‘착한 사마리아인 법’

프랑스, 폴란드,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은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해 놓았다. 성서에 보면 강도를 만나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한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나온다. 즉 법은 자신과 제3자의 특별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을 구조하지 않았을 때 이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있지만 이를 착한 사마리아인 법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면책 또는 감면해주는 내용인데 도움을 주다 발생한 피해를 덜어줄 뿐,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것을 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구조 여부는 개인 의지” vs “구조는 최소의 의무” 팽팽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국내 도입을 두고 팽팽하게 찬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도덕적-윤리적 영역을 법으로 강제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반면,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 세태에서는 도덕적 부문에도 법률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해야 할 법적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측은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구조의무는 개인의 인간성이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최소한의 법적 의무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김상겸 동국대(법학) 교수는 “구조나 신고 의무를 부과하려면 구체적인 상황들까지 파악해서 법에 담아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서 지금 하지 못하고 있다”고 국내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형법과 관련된 법은 법이 명확해야 한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맞아야 한다”며 “예를 들어 노인이 쓰러져 위험에 처해있을 때 신고자가 옆에 있었는지, 노인이 위급한지를 알았는지 등 확실히 알기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목격한 상황이라면 형평성 문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히려 착한 사마리아인 법으로 예상치 못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법의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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