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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도 남궁인 비판…“공론화 지점 없고, 중요한 직업윤리 등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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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1 16:50:12 수정 : 2018-10-22 10: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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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PC방 살인사건 파문 확산
문화평론가 정지우(사진)씨는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해자 담당의였던 남궁인 교수가 당시 상황과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을 상세히 공개한 것에 대해 “그 글은 그를 통해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면 안됐다”고 비판했다.

정씨는 공익적인 이유에서, 공적인 담론을 위해서라면 정보 공개가 허용될 여지가 있지만 “그의 글에서 그런 명확한 공론화 지점을 읽어내지 못했다”며 “그는 어떤 감정적인 문제를 위해 지나치게 중요한 것을 희생시켰다”고 직업윤리 문제 등을 지적했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앞서 지난 19일 끓어오르는 분노와 죄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며 당시 상황과 함께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 등을 공개해 국민적인 공분을 자아낸 바 있다.

◆정지우 “글 공개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문화평론가이자 <분노사회> 저자인 정씨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궁인 작가의 글이 대단한 화제가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일은 근래 있었던 여러 이슈들 중에서 내게 가장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정씨는 우선 “개인적으로 나는 끔찍하고 적나라한 묘사, 그에 수반되는 자극적인 감각과 노골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철저한 취향의 문제인데, 그런 글들이 힘들고, 불편하며, 그렇게 삶에 유의미한 선물이 된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사건이 발생한 강서구 PC방 앞에 꽃다발과 편지 등이 놓여있다.김경호 기자

그는 그러면서도 “나는 나의 불편함이나 불쾌함,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서라도,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이번에 남궁인 작가가 쓴 글은 그 자극적이고 적나라하며 유려한 묘사를 통해 무엇을 실현했을까? 혹은 무엇을 희생시켰을까”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씨는 그런데 남 작가가 글을 쓴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며 “그가 그러한 글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무엇을 실현하고자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라고 되묻고 “세상에 이렇게 악마같이 잔인한 존재가 있다니 절망스럽다 ─ 우울증이나 심신미약으로 처벌이 경감되는 법체계가 잘못되었다 ─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지 못한 것에 죄책감이 든다, 나아가 죽음을 늘 목도해야 하는 이 직업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 ─ 이 안타까운 존재에 관해 모두가 함께 공감해주면 좋겠다 ─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자연스럽지 않다”며 여러 가능한 대답을 검토한 뒤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공론화 지점 없어…감정적 문제 위해 중요한 윤리 등 희생시켜”

정 작가는 “잔인한 강력범죄는 매일같이 벌어진다. 더군다나 범죄 중에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기반에 두고 있거나, 사회적인 약자에게 행해진 것이 너무나 명백하여 반드시 문제시되어야 하는, 담론이 되어야하는 범죄들이 너무나 많다”면서도 “그런데 이 범죄에는 그런 공론화의 여지가 있는 지점이 없다”고 진단한다.

그는 “또한 의사로서,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윤리의식을 고민할 상황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말했듯이, 이미 청년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했고, 사실상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며 “여기에도 공론화되어야 할 지점이 없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아니면 '심신미약'을 처벌감경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법체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훨씬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결국 그는 자기가 겪은 경험의 절망스러움, 인간의 잔인함, 개인적인 분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는 공론화의 글쓰기라기보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문학적인 글쓰기가 아니었나 한다”고 분석한다.

그는 그러면서 “그러한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를 위해, 피해자의 죽음을 그렇게 상세히 공표해도 되었을까? 만약, 그가 경찰이었으면 어땠을까?”라고 경찰의 예시를 들며 비판한다. 즉 “이는 일단 수사비공개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지만, 윤리적으로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공익을 대변한다는 수사기관의 특성상 더 그렇게 여겨지겠지만, 나는 범죄현장을 목도한 의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적 치유나 토로를 위해, 특정될 수 있는(누구나 알 수 있는) 어떤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 그가 어떤 식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참하게 난도질당했는지를 마음대로 공표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고 “특정 직업인은 자기가 겪은 사건을 스스로 견디고 침묵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그러한 공표가 대단히 공익적인 이유에서, 공적인 담론을 위해서라면 허용될 여지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의 글에서 그런 명확한 공론화 지점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는 어떤 감정적인 문제를 위해 지나치게 중요한 것을 희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어쩐지 글쓰는 사람의 양심이나 감정이 상당히 여러모로 얽히게 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개인적인 감정이나 취향을 넘어서, 나의 양심을 걸고 나는 그 글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라며 “그 글은 그를 통해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에 나오면 안됐다”고 글을 맺었다.



◆남궁인 “모든 상처는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춰”

남 교수는 앞서 지난 19일 끓어오르는 분노와 죄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며 당시 상황과 함께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 등을 인터넷에 자세히 공개한 바 있다.

남궁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함구하려고 했지만, 국민적인 관심과 공분이 모아지는 가운데 입을 열게 됐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사건 당일인 지난 14일) 일요일 아침 팔과 머리를 다친 20대 남자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침대가 모자를 정도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며 “상처가 너무 많았다. 복부와 흉부에는 한 개도 없었고 모든 상처는 목과 얼굴, 칼을 막기 위했던 손에 있었다”고 했다.

남궁 교수는 이어 “얼굴에만 칼자국이 30개 정도 보였고, 모든 자상은 칼을 끝까지 찔러 넣었다. 모든 상처는 칼이 뼈에 닿고서야 멈췄다. 얼굴과 목 쪽의 상처는 푹 들어갔다. 양쪽 귀가 다 길게 뚫려 허공이 보였다. 목덜미에 있던 상처가 살이 많아 가장 깊었다”며 “너무 깊어 비현실적으로 보였고, 인간이 인간에게 하기 어려운 범죄”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가해자가 미친 사람인 것은 당연하고, 20대 초반의 청년이 극렬한 원한이 있을까 의심했을 때 말다툼으로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을 찌른 것이라 경찰의 설명에 모든 의료진 입에서 욕설이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남궁 교수는 의료진들과 현장 CCTV를 보며 더 경악했다며 “이미 현장에 온 몸의 피를 다 쏟아내고 왔던 것”이라며 “무력한 사회에 분노와 죄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궁 교수는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그 개인의 손이 집어든 것이다.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심신미약자의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것이라는 게 더욱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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