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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상대로 고소하려면 피해자 주소 기재해야?

입력 : 2018-10-20 16:23:49 수정 : 2018-10-22 16: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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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2019년 8월 5일, 저는 저를 성폭행하고 감옥에 간 범인에게 보복 살해당할 예정입니다.

정말로 죽고 싶은 날들이 많아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제 왼쪽 팔뚝에 새겨진 문신 밑으로는, 제가 눈물을 흘리며 그었던 칼자국이 선명합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제 인생이 이렇지 않았습니다. 3년 전인 2015년 4월까지만 해도, 저는 꿈 많고 발랄했던 21살 여대생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용돈을 벌기 위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직원들끼리 모여 회식을 했고, 술자리를 갖게 됐습니다.

원래 술을 잘 마시지 못했지만 그날은 분위기가 좋아 어떤 의심과 경계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제하지 않고 술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제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저보다 6살 많았던 남자 매니저가 저를 성폭행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정신을 차린 다음 날 아침에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는 사과는커녕 반성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웃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고소를 하게 됐고, 가해자는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징역 4년. 제가 입었던 상처와 고통에는 손톱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가벼운 형량이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가해자를 처벌하기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칼로 손목을 긋고, 입에 약을 한 움큼 털어 넣고.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냥 편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랬던 저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금의 희망을 찾았습니다. 이제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의 보복 걱정에 다시 죽고 싶어집니다. 가해자는 2019년 8월 4일 만기출소합니다.

너무 망상인 거 같다고요? 사서 걱정하는 것 같다고요? 가해자는 저의 집 주소, 주민번호, 전화번호를 모조리 알고 있습니다.

누가 알려줬냐고요? 바로 대한민국 법원이. 소송에서 제가 승소했지만, 판결문에는 제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가해자에게 전달된 판결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전 어떻게 살까요... 여러분, 제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근데 제가 왜 이런 두려움에 떨어야 할까요?

지난 1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저는 2019년 8월 5일 보복 살해당할 예정입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공개됐다.

위 내용이 바로 해당 게시물을 재구성한 것이다. 자신을 성폭행 피해자라고 밝힌 A씨는 두려움에 떨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의 출소일이 다가오며 보복 범죄를 걱정하는 A씨.

가해자에게 전달된 법원 판결문에 피해자의 집 주소와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주소는 어느 아파트의 몇 동, 몇 호인지 매우 세세했다.

결국 A씨는 개명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까지 준비하고 있지만, 보복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떨쳐지지 않았다.

A씨는 물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커지면서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의 집 주소와 주민번호 등을 가해자에게 보내는 법원을 막아주세요"라는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법원은 "민사 소송의 경우 원고와 피고를 특정하기 위해 현행법상 주소 기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범죄 피해자가 소송을 낸 경우 개인정보 노출을 막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올해 초 발의됐지만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다.

뉴스팀 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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