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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대중을 위한 예술’ 실천한 백남준을 회고하다

입력 : 2018-10-16 22:00:00 수정 : 2018-10-16 2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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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공유지 #백남준’을 키워드로/ 공유재로서의 예술의 의미·가치 표현/‘코끼리 수레’ 등 수십년전 유작 전시/ 사회 통찰 등 뛰어난 감각 돋보여/ 他작가·관객참여형 작품도 선보여/ 미술관 역할·기능에 비전 제시
옥인 콜렉티브
미술가, 음악가, 과학자, 철학가…. 백남준(1932∼2006)을 수식할 수 있는 말은 많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비디오 아티스트’다.

백남준은 무수한 소재 중 대중매체인 TV를 작품의 중심에 뒀다. 이는 “예술은 사유재산이 아니다”라고 말한 그의 철학과도 맥이 닿는다. 그는 1970년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이라는 글에서 당대 텔레비전 영상의 편향된 시각이 민족 간 소통을 저해하며, ‘비디오 공동시장’을 통해 세계의 문화를 자유롭게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예술은 많은 사람이 소통하고 나눔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다.

올해로 개관 10주년(10월 8일)을 맞은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런 백남준의 철학에 따라 미래 미술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 끝에 내놓은 것이 11일 개막한 개관 10주년 프로젝트 ‘#예술 #공유지 #백남준’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미래 미술관의 역할이 예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며, 미술관을 개인이나 미술관 직원의 것이 아닌 관객들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백남준을 비롯한 12명(팀)의 작가들이 ‘공유재로서의 예술’에 대해 탐구한 결과를 선보인다.
백남준 ‘코끼리 수레’(1999∼2001)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백남준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코끼리 수레’(1999∼2001)는 그의 미디어에 대한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코끼리를 탄 돌부처가 끄는 커다란 수레는 옛날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기, 축음기, 스피커 등 그가 기억하는 많은 통신기기로 채워져 있다. 이수영 학예사는 “미디어가 인류가 기억하고 공유해야 하는 무형의 공유재임을 말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데콜라주 바다의 플럭서스 섬’(1964)은 196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한 예술 공동체이자 예술 공유지 모델 ‘플럭서스’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백남준의 생각을 간결히 보여준다. 얼핏 보면 지도 같다. 유럽대륙을 닮은 이 지도 위에 백남준은 ’적대적 종족이 섞인 공간’ ‘원자폭탄과 그 희생자들의 무덤’ 등 문구를 적었다.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유머러스하면서 간결한 표현과 다문화적 감각이 돋보인다.

요제프 보이스(1921∼1986)의 사고체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업 ‘함부르크 흑판’도 함께 놓였다. 백남준과 예술적으로 교감했던 보이스는 예술이 지닌 정치적 혁명 가능성을 모색했던 독일 작가다. 아트센터가 올해 새로 매입한 ‘보이스 복스’(1961∼1988)는 백남준이 보이스를 추모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지난 1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10주년 아카이브 전시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2000년부터 서른두개 도시에서 진행된 ‘100% 도시’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리미니 프로토콜과 헬가르트 하우크, 슈테판 카에기, 다니엘 베첼이 한 팀으로 작업 중인 이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공간, 문화, 정치적 분리, 인구분포 등 도시의 통계를 통해 노령화, 복지, 이민 등 이슈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공연에 등장하는 100명의 시민은 해당 도시의 인구통계학을 대신해 구성됐다. 우리에게 익숙한 ‘100% 광주’에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문다.
정재철 ‘크라켄-또 다른 부분’(2018)

정재철 작가의 ‘크라켄-또 다른 부분’은 2013년부터 진행 중인 해양 오염에 관한 작업 ‘블루오션 프로젝트’의 연장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2018년 제주도와 신안 앞바다의 쓰레기를 채취하고 기록해 그 표본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바다 쓰레기를 바다 생물들을 위협하는 가상의 괴물 ‘크라켄’이라 칭하며 예술을 통해 바다라는 공유지의 비극을 고발한다.

안규철 작가는 설치작품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를 내놨다. 방에는 둥근 모양으로 파인 커다란 콘크리트 벽과 건너편에 설치된 작은 스피커가 전부다. 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독일 공습을 감지하기 위해 남부 해안지대에 구축했던 감청장치인 ‘사운드 미러’다. 처음 방에 들어서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둥근 홈에 다가가 귀를 대면 건너편 스피커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예술은 공유재, 미술관은 공유지’라는 모토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관객참여형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차분하게 참여하고 싶다면 시간을 반나절 정도로 넉넉히 예상하고 둘러보면 좋다.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개관 10주년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서지석 관장이 ‘예술은 사유재가 아니다’라는 백남준의 철학과 미래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용인=연합뉴스

서지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술관의 새로운 역할과 기능, 가치를 모색할 시기에 백남준아트센터가 그 비전을 한번 제시해 보려고 한다”며 “지난 10년의 백남준아트센터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백남준과 다 함께 사는 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 #공유지 #백남준’ 전시는 내년 2월 3일까지 진행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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