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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갈등조정→화해… '용서의 퍼즐' 맞추다 [범죄, 처벌만이 끝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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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6 08:00:00      수정 : 2018-10-22 19:23:07
“두 딸을 잘 키우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랍니다.”

2013년 9월 어느 날 두 ‘아버지’가 마주했다. 꼭 10개월 전 교통사고로 첫딸을 잃은 A씨, 그리고 그 딸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B씨였다. 한때 A씨는 휴대전화에 B씨 연락처를 저장하면서 이름 대신 ‘나쁜 X’이라고 적었다. “숨진 내 딸처럼 만들어주겠다”며 심한 욕설까지 퍼부었던 그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B씨를 ‘용서’하는 순간이었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이런 마법을 부렸을까.

◆딸을 앗아간 그에게 복수를 꿈꿨다

A씨 딸은 2012년 11월 경기도 김포시의 한 도로 위에서 트럭과 충돌해 목숨을 잃었다. 새벽 5시에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애를 떠나보낸 A씨는 몸과 마음이 모두 허물어졌다. 아내는 한동안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까지 받아야 했다. 부부는 가해자가 감옥에 갔다가 나온 뒤에라도 꼭 복수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사고를 낸 B씨는 배송기사였다. 그 또한 아침 일찍 배달할 물건을 실으러 차를 몰고 달리던 길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이어폰을 낀 채 무단횡단하던 A씨 딸을 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사고 후 택배 일을 그만둔 B씨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전락했다. 살길이 막막해지자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다. B씨가 아파트 난간에서 자살을 시도해 119구조대가 출동한 일도 있었다. A씨와 B씨는 화해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수사 과정에서 A씨가 거듭 ‘엄벌’을 요구하자 B씨는 홧김에 “새벽부터 아르바이트를 보낸 당신도 책임이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A씨한테 보냈다. 검찰이 시도한 형사조정도 불발에 그쳤다. 두 사람을 면담한 검사는 형사조정조서에 ‘양 당사자 의견 차이가 너무 심해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적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반성에 화해가 이뤄졌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B씨 재판은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열렸다. 마침 부천지원은 2013년 국내 법원 중 처음으로 형사사법체계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하던 중이었다. 한국비폭력대화센터,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 등 회복적 정의·갈등 조정 관련 민간단체 6곳이 조력자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형법 268조에 따라 B씨는 최장 5년의 징역형 실형 선고가 예상됐다. 법원은 “B씨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A씨 가족의 피해 복구가 힘들다”고 판단해 이 사건에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적용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2013년 7월로 예정된 선고를 일단 연기하고 피해자 유족 A씨와 가해자 B씨 간의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민간단체 비폭력대화센터가 피해자 유족과 가해자의 조정을 맡았다.

센터는 2∼3차례 피해자 유족과 통화·면담을 실시했다. 센터 관계자가 A씨에게 던진 첫 물음은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였다고 한다. 그러자 A씨는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가해자가 무릎을 꿇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면 만나겠다”고 다소 누그러졌다. 센터는 가해자 B씨와도 두 차례 만남을 가졌다. 센터는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 간 상황극을 보여줬다. 이에 B씨는 “피해자 아버지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게 됐다”며 “진정한 사과가 무엇인지 알았다”고 말했다.

마침내 2013년 9월 센터 상담실에서 두 사람이 대면했다. 5개월 전 검찰청 형사조정실에 만난 이후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이 자리에서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가 이뤄졌다. B씨가 딸만 둘인 것을 아는 A씨는 그에게 “두 딸을 잘 키우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덕담까지 건넸다. 그해 10월 법원은 B씨에게 실형 대신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경기도 김포시 한 골목에서 폐지 등 고물을 수거해 가족을 부양하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이웃집 여성 C씨를 과도로 찌른 가해자 D씨에 대해서도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C씨는 피해 복구를 위해 진정한 사과와 함께 가해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갈 것을 요구했고 D씨가 이를 받아들였다.

◆검경, 회복적 정의를 좇는다

2016년 2월 강원도 태백시에서 발생한 부자(父子)간 폭행사건에서도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가 이뤄졌다.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집에서 음주와 흡연을 반복하는 아들 E군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부자간 주먹다툼이 벌어졌다. 아들은 전국체육대회에서 복싱으로 금메달을 딴 경력이 있다 보니 아버지 F씨의 피해 정도가 컸다. 당시 F씨는 경찰에 아들을 신고하며 “아들이 죽든 내가 죽든 이제 모든 걸 포기하겠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사건 인지 후 지구대와 F씨 집을 오가며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를 시도했다. 이후 부자는 각자 피해 복구를 위해 아들은 금주와 금연을, 아버지는 음주를 자제하고 아들에게 욕설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 2016년 2월 아들과 주먹다툼을 벌인 아버지 A(가운데)씨가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With You’를 통해 할머니(왼쪽)와 함께 경찰관을 면담하고 있다. 그는 아들을 대면하기에 앞서 경찰관과 면담해 아들에 대한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강원도지방경찰청 제공
강원경찰청은 2015년부터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위드유(With You)’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간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 민간단체인 ‘비폭력평화물결’ 등에서 교육받은 경찰관들이 사건이 발생하면 출동해 조정에 나선다. 공식적인 사건화 이전에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 피해 복구 방안 등을 이끌어 둘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현재까지 강원도 전 지역에서 150건의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가 이뤄졌다.

검찰도 형사조정위원 교육을 강화해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금전배상을 앞세운 기존 형사조정 방식에서 회복적 정의를 통해 가해자는 진정한 반성을, 피해자는 피해 복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2016년 12월 경기도 용인시 법무연수원에서 전국 형사조정위원을 대상으로 1박2일간 회복적 정의 심화교육이 최초로 실시됐다. 교육에는 검찰 출신인 조균석 이화여대 회복적사법센터 소장(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과 민간단체인 이재영 KOPI 원장, 김선혜 갈등해결과 대화 대표 등이 참석해 실습 위주로 교육을 진행했다.
2013년 11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한 법정에서 상대방을 각각 모욕·폭행과 상해죄로 고소한 두 사람이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등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를 주관한 이들과 함께 모여 대화하고 있다.
법원 제공
◆갈 길은 아직도 멀다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로 모든 사건이 가·피해자 간에 화해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2012년 2월 부천시 한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으로 피해자 G씨가 심각한 뇌손상을 입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클럽 웨이터로 일하던 G씨가 해고를 당하고 가해자인 클럽 상무에 항의했다. 이에 격분한 가해자가 당구대로 G씨 머리를 내리치는 등 심하게 폭행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회복적사법 센터가 조정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피해자 측에서 가해자에 대한 지속적으로 엄벌을 요구하면서 대면 자체를 거부했다.

15일 법원에 따르면 2013년 부천지원이 시범사업으로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를 시도한 사건 10건 중 합의를 이룬 건 총 6건이다.

검찰 형사조정위원 교육을 담당하는 김재희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형사조정과정에서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조정위원들의 전문화교육이 중요하다”며 “조정위원들에게 회복적 정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유섭·김범수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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