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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내린 순백의 대지 … 푸른 생명을 뿜어내다 [극동시베리아 콜리마대로를 가다]

입력 : 2018-10-16 03:00:00 수정 : 2018-10-15 21: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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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극한의 마을’ 오이먀콘 한디가에서 서둘러 극한의 마을 오이먀콘으로 향했다. 오이먀콘에 속해 있는 톰토르에는 오이먀콘 마을과 베르호얀스크 마을 두 곳이 있다. 톰토르에 약 1200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그중 오이먀콘 마을에는 약 5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사하공화국 수도 야쿠츠크에서 시작되는 콜리마대로는 태평양 연안 마가단까지 이어진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스탈린에 의해 건설된 옛 콜리마대로는 현재 도로와는 많이 다르다. 스탈린 시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도로 확·포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콜리마대로에서 아직 옛 도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톰토르 가는 길이다. 애초에 콜리마대로는 한디가에서 톰토르를 거쳐 마가단으로 이어지는 길이었으나 톰토르 북쪽에 있는 우스티네라 근처에 대규모 사금광이 개발돼 그쪽으로 우회하는 새로운 도로가 개통됐다. 톰토르를 거치는 옛 도로는 거의 확·포장돼 있지 않다. 현재 모든 물류는 톰토르를 거치지 않고 새로 건설된 우스티네라 쪽으로 우회해 마가단으로 운송된다.

톰토르 오이먀콘 마을 앞에 펼쳐진 들판. 짧은 여름을 맞은 소와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옛 도로 중 사람이 살고 있는 톰토르까지는 그나마 개·보수해 차량과 물류가 이동 가능하지만 톰토르에서 마가단으로 이어지는 옛길은 개천이 범람해 도로가 끊겨 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그 길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탐사단이 톰토르를 방문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옛 도로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톰토르가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톰토르의 오이먀콘 마을은 1959년 공식적으로 영하 71.2도를 기록했다. 1959년도 기록이라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지난 1월 영하 62도까지 떨어진 것을 보더라도 이곳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재난 영화 ‘투모로우’에서 뉴욕시를 강타한 추위가 영하 60도였다.

오이먀콘 마을로 가는 길은 콜리마대로에서 벗어나 160㎞를 들어가야 한다. 옛 콜리마대로여서 폭과 도로 상태는 매우 열악했다. 차량 2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 6m의 도로라 시속 70㎞ 미만의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오가는 차량이 한두 대밖에 없어 사하공화국이 도로에 대한 투자를 뒷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한디가는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에 있으며 알단강을 끼고 있다. 한디가를 떠나 콜리마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 사하공화국의 광활한 평원을 가로막는 베르호얀스크 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길게 누워 있다. 그 웅장한 베르호얀스크 산맥 안에 톰토르가 있다.

톰토르 가는 길은 옛 콜리마대로로 스탈린 시대 때의 모습이 남아 있다. 도로 폭은 차 한 대가 달리기 좋은 정도다.
톰토르 지역은 베르호얀스크 산맥 중간 분지에 있고, 고도가 740m로 혹독한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9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겨울은 다음해 6월까지 이어져 일 년 대부분이 겨울이다. 여름은 두 달 정도로 평균 기온은 영상 13도다. 짧은 여름 동안 영구동토층 표면이 잠깐 녹아내린다. 이 지역 영구동토층은 여름에 지표면에서 30∼50㎝, 깊게는 2m 깊이까지 녹는다. 베르호얀스크 산맥은 여름이 짧은 전형적인 ‘타이가 기후’를 보인다. 여름 동안 키작은나무와 초원이 펼쳐지며 푸른 초원에는 소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이 지역 주민들 중 일부는 순록을 치고 있어 여름에는 북쪽으로 순록을 몰고 가 겨울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순록의 먹이는 말이나 소가 먹는 풀이 아니라 눈 밑에서 자라나는 야겔이라는 하얀색을 띤 이끼다. 여름에는 북쪽으로 먹이를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다.

톰토르에는 한여름임에도 미처 녹지 못한 얼음이 그대로 남아있다.
한디가에서 출발한 일행은 웅장한 베르호얀스크 산맥을 넘어 톰토르에 진입했다. 베르호얀스크산들은 여름철임에도 정상 부근에 잡초조차 없는 헐벗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산 능선에는 흰 눈이 군데군데 보이고 그 아래로 순록의 먹이인 야겔 이끼가 하얗게 덮여 있다. 험하지 않은 계곡 사이로 도로가 이어져 있었고 도로를 달리는 중 가끔 컨테이너 운반 화물차와 승합차를 볼 수가 있었다. 

톰토르 오이먀콘 마을의 극한의 기온 영하 71.2도를 기념하는 조형물. 이 지역이 추운 이유는 톰토르가 고산지대인 데다가 분지여서 대기 상층부의 찬 공기가 내려앉아 머물기 때문이라고 한다.
톰토르의 오이먀콘에 도착해 마을 중간에 있는 민박집에 투숙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민박집으로 많은 외국인이 거쳐 갔다고 한다. 작년에도 한국인들이 자고 갔다고 하고 집 안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남기고 간 선물과 사인 등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민박집 주인은 가정식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순록고기와 말젖으로 담근 전통 음료 ‘쿠무스’, 생선 등 전형적인 시베리아식 음식들이었다. 식사 후 집 밖에 준비돼 있는 러시아식 사우나도 경험할 수 있게 불을 지펴놨다.

톰토르 오이먀콘 얼음동굴. 산 중턱에 동굴을 뚫어 관광객들을 위한 얼음조각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다음 날 주민들이 산기슭 얼음동굴로 우리를 초대했다. 영구동토지대인 이곳의 기후로 땅을 파면 거기는 천연 냉동고가 된다. 민박집 바닥을 열고 지하로 들어가니 지하 천연 냉장고가 있다.

야쿠트 전통복장을 입은 오이먀콘 주민들이 주술적 제례를 진행하고 있다.
산 중턱에 동굴을 뚫어 관광객들을 위한 얼음조각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50m 가까이 뚫려 있는 동굴에는 곁가지처럼 수십 개의 얼음방들이 있고 방마다 얼음조각들이 진열돼 있었다.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작품에서 동물들의 모양 등 다양하다. 오이먀콘 주민들은 한국인들을 위해 야쿠트 전통복장을 하고 주술적인 토착 의례도 진행했다. 나쁜 잡귀와 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의식이다. 준비된 줄에 색색의 노끈을 묶는 매듭짓기를 하면서 소원을 비는 의식도 진행했다.

주민이 500명밖에 안 되는 톰토르에는 비행장이 있다. 이 비행장은 2차 세계대전 때 알래스카에서 발진해 야쿠츠크로 가는 미국 수송기와 전투기들의 중간 기착지였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강대국은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에 맞선 연합국이었다. 소련은 시베리아 깊숙이 미국의 수송기와 전투기의 착륙을 허락했다.

김선래 한국외국어대학교 연구교수
톰토르도 콜리마대로 건설과정에서 있었던 강제노동수용소의 비극을 담은 지역이다. 톰토르를 출발해 우스티네라를 향해 가는 도중에 길가에 있는 호수에 잠시 정차했다.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아늑해 보이는 그 호수에 콜리마대로를 건설하다 죽은 노역자들의 시신을 수장했다고 한다. 호수는 지금도 그들의 유골을 품에 안고 있다. 톰토르 중학교 교장의 의지로 1992년 톰토르 지역 문화박물관이 세워졌다. 박물관 안에는 스탈린 시기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는 내용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얼마 전 이들을 애도하는 기억의 종도 설립되었다. 극한의 마을 오이먀콘에도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김선래 한국외국어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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