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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어떻게 소비자의 돈을 훔치는가

입력 : 2018-09-29 03:00:00 수정 : 2018-09-28 2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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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독재시절 돈 되는 사업권 따내 성장/ 소유·경영 구분 안돼 혈족끼리 부 대물림/‘일감 몰아주기’로 상속 대비한 자산 증식/
일반 투자자에 돌아갈 수익 도둑질한 셈/ 현역 대기업 이사인 저자, 부의 세습 실태/그 피해 어떻게 소비자에 전가되는지 고발
김경진 지음/한울엠플러스/1만6500원
재벌과 부/김경진 지음/한울엠플러스/1만6500원


한국 내 재벌 기업들 ‘부의 대물림’은 다반사로 이뤄진다. 이웃 일본의 경우 부의 대물림은 간간이 목격되지만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재벌 기업들이 어떤 편법으로 부를 대물림하는지 잘 모른다. 현역 대기업체 이사인 저자는 재벌 내부 구성원만이 알 수 있는 재벌들의 교묘하고 지능적인 대물림의 실태를 고발한다. 그 피해가 어떻게 기타 주주나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들춰낸다.

흔히 재벌과 대기업은 혼용되지만 저자가 제시한 재벌의 조건은 세 가지다. 국내 재계 50위 이내에 들고, 가족 혹은 혈족이 지배하는 기업이면서 정부 지원 아래 성장한 대기업을 가리킨다. 한국 내 재벌은 거의 박정희정권 때부터 성장했다. 정부로부터 돈 되는 사업권과 낮은 금리 혜택을 받아 덩치를 불렸다. 한국의 재벌은 외국 재벌과 비교해 국내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개발독재 시절 해외시장을 개척해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공로도 있다. 그러나 시장 독점으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폐해도 적지 않았다.

외국 재벌과 달리 한국 재벌은 소유주와 경영자의 구분이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혈족에게 부를 세습하는 구조가 당연시되어 있다. 물론 소유주가 전문 경영인 못지않게 좋은 성과를 낸다면 별문제 없다. 하지만 소유자이자 경영인은 내 회사라는 인식이 강하고, 일반 임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 방만한 경영이 다반사였다.

재벌의 못된 경영 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들의 내부자 거래나 회사이익 가로채기 등의 불법, 편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재벌은 어떻게 소비자의 돈을 훔쳐가는가? 흔한 편법은 일감 몰아주기다. 상속세를 미리 축적하는 수법이다. 일감 몰아주기가 다반사인 분야는 정보통신 분야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기업은 정보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IT 분야 회사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삼성 SDS, LG CNS, SK C&C 등이다. 다른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매출은 대부분 계열사에 IT 서비스를 제공해 발생한다. 일감 몰아주기는 비재벌 기업의 일감을 빼앗고, 성장보다는 지배주주 이익에 골몰하기 쉽다. 이는 일반 투자자의 수익 중 일부를 재벌들이 도둑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감을 몰아주지 않았다면 재벌 기업의 주가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경우 소유주의 가장 큰 자산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이다. 소유자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의 가치는 1조4000억원 정도.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를 설립하고 일감을 몰아준 데에는 후계 구도가 감안된 자산 증식 수단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는 지배주주가 법의 허점을 이용한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여기에다 허술한 상속 증여세법, 공정거래법, 주주 제안제, 주주 대표 소송 제도 등 실효성 없는 제도들이 거들고 있다. 과도한 급여지급, 투자기회(또는 회사이익) 가로채기 등도 재벌에서는 일상처럼 벌어진다.

과도한 급여 수령은 부 대물림의 한 수법이다. 지배주주는 자신의 자녀나 친인척을 주요 경영진으로 앉혀 놓고 고액의 급여를 받도록 한다.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라고 보기 어렵다. 투자기회 가로채기도 흔하다. 예를 들어 지배주주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면 자신이 투자하고 불리한 상황이면 회사가 투자하도록 한다. 이런 행태들은 기업이 건전하게 돌아가는 고리를 단절시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가 하락으로 이어져 일반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지배주주를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하는 한 부의 대물림은 더욱 확산할 것이다. 기업들은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지배주주의 부를 증대시키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을 것이다.

일본 대기업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동일한 사례는 드물다. 소유권이 있는 지배주주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 경영인과 은행에서 파견된 임원들이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재벌도 우리처럼 정부 지원 아래 성장했지만 2차대전 패망 이후 해체되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이사회다. 지배주주가 전횡할 수 있는 근본 이유는 이사회가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법적 개선을 해야 한다. 첫째 이사들의 배임죄를 명확히 규정하고, 불법의 경우 그 증명의무를 지워야 한다. 둘째,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나 투자 기회를 가로챘을 경우 중범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 등이다. 2012년 공정위는 SK그룹의 SK C&C 일감 몰아주기를 적발했으나 고작 346억원 과징금에 그쳤다. 이에 대해 SK는 대법원의 전액 취소 판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수조원의 이익 올리는 재벌 기업들에게 이런 정도의 벌칙은 솜방망이다.

저자는 “지배주주의 손아귀에 있는 이사회 구성원들이 지배주주의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면서 “미국 엔론 사태에서 보듯이 분식회계 등을 저지른 경영진에 최고 24년형을 선고한 사례는 좋은 본보기다. 미국 기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배경”이라고 했다.

국내 허술한 벌칙 체계도 문제다. 수년전 폭스바겐자동차는 배기가스 조작 혐의로 적발되었다. 미국 법원은 21조원을 부과해 최종 5조원으로 합의를 봤으나, 한국은 당시 141억원 과징금에 그쳤다. BMW 화재사고가 주목되는 이유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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