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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찬밥’ 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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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0 21:36:36      수정 : 2018-09-10 21:36:35
오늘날 형태의 육군사관학교는 이승만 대통령과 제임스 밴플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만들었다. 6·25전쟁 와중에 부임한 밴플리트는 연전연패하던 한국군을 점검하면서 근성 있는 장교 인력 부족을 파악했다.

그는 미 공병대 물자를 빼내서 사관학교를 짓도록 했다. 이 일로 미 의회 청문회에 서기도 했다. 전쟁 중이었지만 엄격한 학사관리를 명령했다. 교재와 교육 프로그램은 미 육사 관리관이던 두 사위의 도움을 받았다. 일부 육사 생도들을 태평양 건너 웨스트포인트에 보내 보강 교육을 시켰다. 시야를 넓히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대통령 3명, 국무총리 3명,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육군총장 등 70여명이 나온 배경이다.

태릉 육사는 미국인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1958년 3월 미 8군 장병들이 19만달러를 모았다. 6·25전쟁 참전 전우들의 뜻을 기리고 장교 배출 요람이 되라며 한국 최초 개가식 도서관을 지어 기증한 것. 첫 어학실습실도 미국의 원조로 지어졌다. 이 과정에서도 밴플리트의 역할이 컸다. 운동장에는 밴플리트 동상이 서 있다. 본관 입구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밴 플리트 장군이 육사를 설립했다는 동판이 붙어 있다. 밴플리트가 ‘육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이다. 한국을 무시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연결해주고 시각을 교정해준 사람도 밴플리트였다.

육사 위치는 한때 군작전 요지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지원병 훈련소가 이 자리를 차지했다. 광복 후에는 국방경비대의 제1연대 A중대가 선점했다. 불암산과 수락산 때문이다. 이제는 전철이 통과하고 큰 도로가 잇따라 뚫리면서 교통 요충지로 떠올랐다.

서울지역 택지 부족의 대안으로 육사 부지가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18홀 골프장을 포함해 45만평이다. 퇴역 장성들이 골프장에 드나드는 게 꼴보기 싫어 아파트로 덮어버리려고 한다면 어이없는 단견이다. 교육기관은 그대로 두고 체력장(골프장)만 활용도를 바꾸면 될 일이다. 교육 터전을 옮기면 전통과 구성원의 기개마저 사라진다. 한때 대통령을 셋이나 배출했던 육사! 출신 장성들이 요직 인사에서 ‘왕따’ 당하더니 집마저 잃을 처지에 놓였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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