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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1심 판결이 공론 대상?… 법치 흔드는 ‘靑국민청원’[이슈+]

입력 : 2018-09-10 19:40:54 수정 : 2018-09-10 21: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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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만진 혐의로 징역 6개월 / 피의자 부인 “억울하다” 글 올려 / 나흘 만에 국민 25만명 동의 얻어 / 법원 “CCTV 보고 판단” 해명까지 / “스친 것 갖고 실형 과도” 동정론 / 네티즌 판사 신상 올려 ‘인신공격’ / “여론수렴의 장이 되레 갈등 증폭 / 靑, 삼권분립 위배 글 정리 필요” 강제추행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구형받은 남성이 훨씬 높은 징역 6개월 실형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성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단호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미투(Metoo·나도 당했다)운동’ 속에서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이 맞서고 있다. 구속된 남성의 부인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글을 올리자 나흘 만에 25만명이 공감을 나타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논란은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4단독 김동욱 판사가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던 한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쥔 혐의(강제추행)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검찰은 피해자 진술과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토대로 A씨를 정식재판에 넘겨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원은 나흘 만에 24만여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가 난 내용과 A씨의 언동, 범행 후의 과정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고 자연스럽다”며 “A씨가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용서를 구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초범인 점을 고려해도 범행 후의 정황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비교적 단순한 내용의 사건인데도 이례적으로 3차례 공판이 열릴 정도로 유무죄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다. 그 과정에서 A씨가 선임한 사선변호인이 사임해 부득이 국선변호인이 변론을 맡기도 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강제추행죄는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면 바로 재판이 끝나는데 공판이 3차례 열린 뒤 선고가 내려진 점으로 미뤄 A씨가 집요하게 무죄 주장을 펼친 듯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이 증인보호 및 비공개 재판을 신청하고 법정에서 증언도 했다.

검찰이 A씨를 약식기소가 아닌 정식재판에 넘긴 것도 그가 거듭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 출신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면 검찰은 벌금 구형이 예상돼도 정식재판에 넘긴다”고 말했다.

징역 6개월 실형 선고에 대한 법조인들 반응은 엇갈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에 대한 유죄 판단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과 CCTV뿐이다. 법무법인 윈앤윈 장윤미 변호사는 “판사가 유죄 심증을 굳힌 상황에서 A씨가 계속 무죄를 주장하자 엄중히 처벌한 것”이라며 “판사가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것은 이례적이다”고 평가했다. 반면 검찰 출신 김광삼 변호사는 “A씨가 피해자와 합의도 하지 않고 계속 무죄만 주장했다면 나올 수도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이 25만명의 동의를 얻자 법원은 해명에 나섰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관계자는 “담당 판사가 CCTV 전후 장면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충분히 판단해 유죄를 인정했다”며 “1심이 종결됐을 뿐이니 앞으로 2·3심에서 충분히 무죄를 주장하거나 관련 증거를 제출해 판단을 받을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보배드림 캡처
이번 논란은 국민 여론을 직접 수렴하기 위해 개설된 국민청원 게시판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세계일보 9월10일자 1·8면 참조>과도 무관하지 않다. 올 들어 ‘미투운동’ 정국 속에서 여성 중심의 지나친 엄벌이 이뤄진다는 남성들 인식이 A씨 부인의 글에 공감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확정되지도 않은 1심 판결을 청와대 청원 대상으로 삼고 담당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 나오는 것은 법질서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터넷상에는 김 판사의 얼굴 사진과 이력 등이 나돌고 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학과)는 “헌법에 따라 법관은 독립성을 갖고 재판해야 한다”며 “판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행정부에 청원하고 판사를 공격하는 건 법치국가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판사 신상을 털고 여론몰이를 하면 이후 항소심 재판부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느냐”며 “청와대도 청원 게시판에 삼권분립에 위반되는 글이 올라올 경우 (삭제 등)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염유섭 기자, 부산=이보람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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