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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칼럼] ‘혼자 의식’과 ‘끼리끼리 소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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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09 21:31:47 수정 : 2018-09-09 21: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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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족·혼밥이 자연스런 요즘/ 스마트폰 속 역시 ‘나 혼자의 공간’/ 명절 풍경도 ‘개인 플레이’로 변모/
‘끼리끼리’라도 함께하는 세상을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이 잔뜩 생겼다. 마트에 가보면 혼자 사는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한 먹거리가 가득하다. 그릇도 1인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혼자 식사를 하는 혼밥족을 위해 칸막이 쳐진 식탁이 마련돼 있다.

한때는 컴퓨터가 혼자 사는 방법을 제공하더니, 이젠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 넓은 세상이 축소돼 그 작은 몇 센티미터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스마트폰의 온갖 기능은 삶을 농담거리로 만들 지경이다. 아마 거리를 걸어가다가 깜짝 놀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마주 오는 사람이 나에게 무엇인가 말하는 줄 알고 “네에?”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 사람은 못 듣고 지나간다.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있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고개를 숙인 채 혼자 빙긋이 웃기도 하고 소리 내 말하기도 한다. 

강은교 동아대 명예 교수 시인
얼마 전엔 기차를 탔는데 누군가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의 1시간 이상을 그 친구는 전화에 매달려 있었다. 참다 못해 소리 나는 쪽을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다보았다. 전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고 나자 그 친구는 이번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 졸리네. 이제 그만하자. 자꾸 졸려….” 이윽고 그 사람은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다. 게임을 했던 모양이다. 아니 채팅방에 들어갔었나? 어느새 종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방, 방은 접속의 공간이다. 꿈과 나의 접속, 상상과 나의 접속, 나의 방에서는 모든 것이 실현된다. 공주의 꿈도, 왕자의 꿈도. 스마트폰에 마련된 ‘나 혼자의 공간’에서는 익명이 허락된다. 익명이므로 책임질 필요도 없다. 막말이 튀어나온다. 뿐만 아니라 요즘 스마트폰의 기능 중에는 셀카가 있으며, 셀카에서는 주름은 물론 잡티도 지워준다. 모두 예쁜 영화배우가 된다.

나 혼자의 공간 하고 보니 올해 7살인 셋째 손녀의 일이 생각난다. 작년 추석의 일이었던가. 손녀가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서명해주세요.” 공주가 그려져 있는 A4용지이기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서명을 해주자, 사위에게로 갔다. “아빠, 서명해주세요.” 사위도 얼른 서명했다. 마지막으로 손녀는 딸에게로 갔다. “엄마아….” 딸도 무심히 서명했다.

순간 아이는 종이를 흔들며, “야호,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하고 즐겁게 소리지르며 다락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어른들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모두 백지수표에 사인한 셈이었다. “이제 그 방은 내 방이에요, 나만의 공간, 그 방에 들어가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해요.” 기가 막혔다. 7살짜리가 ‘나만의 공간’이라니.

딸에게서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았어요. 셋째가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이유를요. 친한 세 친구들을 불러서 파자마파티를 할 거래요.”

그렇다. ‘혼자 의식’은 묘하게 ‘끼리끼리 의식’으로 변한다. 단절과 소통이 오늘의 ‘혼자 의식’ 속에는 함께 있다. 혼자 의식, 또는 혼자 살기의 양면성이라고나 할는지.

추석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혼자 의식’이 ‘귀찮이즘’과 결합하면서 가족끼리 모여 간단히 외식한다든가,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해외여행을 한다든지, 어른도 여행을 떠나버린다든지, 성묘라든가 차례의 행사는 가급적 줄이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조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르신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많이 강구한다. “이제 제사는 그만두자, 혼자 하자니 너무 힘들구나,” 할머니부터 선언하기도 한다. 장례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납골당은 옛날 같은 가족모임, 또는 음식 차림을 불가능하게 한다.

올 추석은 혼자이되 같이하는 그런 방법을 강구했으면 싶다. 신가족여행이라는 방법도 괜찮지 않을지,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하는 ‘따로따로’의, ‘끼리끼리’의 여행이 아니라. 잔치 개념의 어떤 형식은 어떨까. 하긴 이 모두 재원 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이긴 하지만.

강은교 동아대 명예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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